시간을 달리는 MZ 공무원

시간을 달릴 수 있다면

by 김촉

7년 전의 나에게

임용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공무원 시험을 포기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살아온 과정에 의하면 2017년의 나에게는 공무원 시험이 최선이었고, 기어코 시험에 합격해 똑같이 지금의 근무지를 희망 근무지로 적어 넣었을 것이다. 또한 임용 후에 7년 간의 순간들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을(아직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 또한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후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7년 간 이 조직에서 적응하며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7년 전 3월 첫 출근을 하는 나에게 꼭 하나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회사를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세대차이를 느끼고, 그동안 학교에서 배워왔던 진보적인(?) 지식에 비해 현실의 조직은 훨씬 보수적이겠지만, 사람들도 분위기도 모두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것들은 아니다. 너무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너무 잘 보이려고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도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하여 나를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기나긴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회사는 어쩌면 그저 임금체불이 없고, 신분보장이 되는 특징을 가진 게 장점일 뿐인 숱한 직장 중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일주일짜리 뉴질랜드 가족여행을 가야 하니 휴가를 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후로 코로나19를 지나 비행기삯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너는 아직까지 뉴질랜드를 가보지 못하고 있다고.


너는 2018년 뉴질랜드 여행을 선택하지 못한 것 말고는 다른 모든 상황에서 항상 합당한 선택을 해왔고, 지나치게 회사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래서 점점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그러므로 많은 날들을 꽤 잘해왔다고 말하고 싶다.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너의 멋짐을 결국에는 인정하게 된다고.

이상한 과장, 이상한 팀장, 이상한 주무관

요즘 MZ들은 왜 공무원이 하기 싫어졌을까. 노량진에서의 인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멀쩡히 다니던 직원들이 그만두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니던 회사에도 책임이 있다.(피할 생각 마시라!) 얼마 전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교육의 일환으로 초대받은 소설가 김영하 작가님이 공무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비저블(Invisable)에 대해 다룬 책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문제가 생기면 찾게 되고, 그제야 드러나는 사람들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이런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은 다른 누구보다 주변 동료의 인정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직원들이 이 내용에 공감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공무원이라면 당신도 아마 공감할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생면부지 민원인의 칭찬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옆 자리 주무관이나 팀장, 부서장의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훨씬 기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옆 자리 주무관이나 팀장이나 부서장이 인정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이상한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은 하나둘 그만둘 것이고, 결국 조직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남아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7년간 근무하면서 직급에 관계없이 수많은 직원들과 푸념을 나누고 있자면 우리는 종종 '일은 힘들어도 사람이 괜찮으면 버틸 수 있다.' 혹은 '일은 힘들어도 괜찮은데, 사람이 이상한 건 못참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회사에서 어려운 업무를 하는 것과 근무성적평정에서 한참 밀려나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람 간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공무원 조직은 좋은 사람들을 유치하고 구성하여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통해 잘 버틸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의 장점은 신분보장이 된다는 것이며, 이는 다르게 말하면 좋은 사람을 한번 뽑아 놓으면 그 회사는 그의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사람들을 계속 잘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원 복지도 신경 써야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신규 직원이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차원에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가 신규일 때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공무원 조직의 아쉬운 점인데, 신규 직원에게 은근슬쩍 기피업무를 맡기는 것부터 그만둬야 한다. 회사를 1~2년 다녀보면 알게 된다. 회사에는 기피 업무가 있고, 선호 업무가 있으며, 그에 따른 기피 부서와 선호 부서가 알음알음 존재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선호 업무를 하는 선호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고, 기피 부서에는 가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기피 부서의 모자란 인원을 누군가로 채워야 하는데, 결국 그 자리에 앉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직원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 내가 처음 근무했던 부서에서 내가 처음 맡았던 업무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기피 업무 설문조사에서 순위 TOP3 안에 늘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업무였다.


공무원 조직은 뉴비에게 관대해야 한다. 거대한 숲처럼 시시각각 조용하고 치열하게 굴러가는 공무원 세상에 어느 날 날아든 신규직원은 그저 ‘던져지기만’ 했을 뿐이다. 막상 업무를 하고 있자면 서로 자기 일만 하기 바빠 아무도 뉴비를 챙길 수 없으므로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신규 직원들을 배려해야 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임용 전이나 직후에 연수원에서 신규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며칠짜리 교육은 사실 실제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연수원에서는 실전 악성민원 응대를 할 수 없고, 다양한 만큼 자세하기도 한 각 부서의 세세한 업무 하나하나를 미리 배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직원에게는 실질적으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며,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데 치열한 민원처리 부서에 바로 투입되어 열정과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물론 직장이 학교나 훈련소는 아니라지만, 공무원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생각으로 온 사람들에게 그의 근무 예정 기간 30년 중 초반 몇 개월의 적응 기간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AI 세상에 어서 오세요

오늘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있자니, 요즘 청소년 친구들은 챗GPT에 고민상담을 한다고 한다. 13세 이상만 사용이 가능함에도 엄빠 아이디를 빌려서라도 상담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엄빠 아이디를 빌린 어린이에게 챗GPT가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단다. AI는 어느새 우리 삶에 만연하여 상담의 영역까지 들어와 있다. AI 프로그램이라고 해봤자 그동안 사용하던 검색엔진 대신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인가 싶었는데 얼마 전 주거래 은행에서 상담원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AI상담원이며, '조만간 님의 적금이 만기 되는데, 상담이 필요하시면 자세히 상담을 해주겠'단다. 내가 신규 시절 만났던 숱한 악성 민원 상담도 AI가 대체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악성 민원인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차피 과태료는 내셔야 하고, 그것이 힘드시면 전화로 인신공격을 하며 따질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담은 서면으로 이의신청서를 제출하셔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기 위해서 불쌍한 신규 공무원들이 희생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공무원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시대에 어떤 계기든 공무원이 되기로 선택한 소중한 신규 직원들이 기피 업무인 악성 민원 상담 업무만은 피할 수 있기를, 부디 불쌍한 신규 공무원을 AI가 구원할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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