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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Oct 16. 2023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오스트리아로 가는 야간열차

나의 첫 유럽여행의 마지막 일정



14.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을 없애고 싶어서 과감히 선택한 유럽행.
내가 여행의 끝에서 얻은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이 글과 함께 추천하는 음악

Ludwig van Beethoven - Piano Sonata No.8 - II. Adagio Cantabile

1799년 가을 빈의 에더 출판사에서 출판된 [비창 소나타]는 내가 2022년 여름에 느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잘 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Xocen2bd4




26. JULY. 2022.




야간열차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오운




야간열차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폐쇄공포증 때문에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다행히 쌍둥이의 정성으로 우린 겨우 3인실의 야간열차를 예매할 수 있었다. (당시 예매 시기가 늦어서 거의 다 매진이었다) 결국 우리는 비엔나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가능하면 우리 방에는 우리만 예매했길 간절히 바랐는데, 아쉽게도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외국 분이 객실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자리인 3층으로 올라갔는데, 대화를 통해 출장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류애가 가득 찼을 무렵이었던지 불을 꺼도 괜찮을지 물어보면서 동시에 굿나잇 인사를 하고 싶어서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고 기분 나쁘진 않겠지.



"Have a goodnight"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오스트리아의 만남이 시작됐다. ©오운




객실의 불이 꺼지고, 한국에서부터 다운로드해 온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틀었다.


영화는 기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 대한 이유 모를 이끌림을 거부하지 않고, 빈에서 내려 하루동안 서로에게 집중하던 시간을 담았다. 화려한 영상 편집이 아닌 오히려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떨림이 잘 전달되어 왔다. 원테이크로 무수한 대화들을 내뱉던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어린 날의 청춘이 우리와 같은 호흡으로 전달되어 왔다. 엄청난 서사가 들어있지 않음에도, 그들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낭만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답지 않게 감성적인 감상평을 메모장에 연달아 적은 후에야, 다음 날을 위해 휴대폰 화면을 껐다. 그런데 새벽에 잠을 계속 깬다. 창 밖으로 번개가 쳐서 그런지, 한동안 열차도 멈춰있었다. 계속해서 잠에서 깨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시차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결국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인가 보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오스트리아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꼬질꼬질한 상태인지만 짧은 관광을 즐기기로 했다. ©오운




비엔나는 전날의 취리히처럼 관광목적이 아닌, 한국으로 가장 편하게 돌아갈 수 있었던 도시라 방문했으므로 우리에겐 고작 1.5일 정도의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당시에는 코로나 엔데믹 전이었기 때문에 PCR 검사까지 통과해야만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던 터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비엔나 중앙역에 도착하여 숙소 체크인이 될 때까지 숙소 카운터에 짐을 보관하고, 꼬질꼬질한 상태인지만 짧은 관광을 즐기기로 했다. 비엔나 PCR 검사를 무료로 받을 곳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곤, 아무 정보도 없이 왔던 터라 급하게 구글맵을 켜서 주변 명소를 검색해 본다. 그렇게 정해진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특유의 웅장함이 돋보였다. ©오운




이탈리아어로 '경치가 좋다'는 뜻의 가진 궁전인 만큼, 비가 와서 안개로 주변이 뒤덮인 상황이었음에도 벨베데레 궁전 특유의 웅장함이 돋보였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도시였다는 게 한눈에 이해된 순간이랄까?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함과 거대한 규모의 웅장함이 강조되었던 건축물에서 그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가 얼마나 힘이 강했는지 느껴졌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운영 중인 벨베데레 궁전. 사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큰 정보 없이 무작정 숙소 주변이라 찾았던 곳이었던 만큼 내부가 그렇게 멋있는 줄도 모르고 미술에 큰 조예가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외부만 조금 보다 걸음을 돌렸다. 지금 이 글을 적기 위해 처음으로 내부 사진을 보았는데 이렇게 허망할 수가! (이것은 스포이지만, 나는 그해 겨울 비엔나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때도 내부를 구경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비엔나의 무드를 그대로 담은 듯한 멋진 카페가 눈에 띄었다. ©오운




숙소 체크인을 위해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궁전으로 향할 때는 초행길이라 긴장을 한 탓인지 이렇게 멀리 온 줄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비엔나의 무드를 그대로 담은 듯한 멋진 카페가 눈에 띄었다. 비엔나까지 왔는데 비엔나커피는 한 잔 마셔야 되지 않겠나?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들어간 카페에는 비엔나커피가 팔지 않았다. (어리둥절) 친절한 점원을 앞에 두고 비엔나커피만 타령할 수 없었기에 급하게 따뜻한 카페라떼를 주문한다. 비엔나커피가 유명하니, 웬만한 커피는 다 맛있지 않을까? 아아.. 나는 아직 런던에서 마신 바닐라 라떼를 잊을 차례가 아닌가 보다. 비엔나에서 먹고 있는 이 커피는 생각보다 조금 아쉽다.





그런 아름다운 장소들을 동네 산책 다니듯 지나치다니.. ©오운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급히 우리의 비엔나 방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비가 아직 추적추적 오고 있어 파리에서 입었던 볼드모트 우비를 쓴 채였다.


관광 생각은 크게 없었던 우리였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중간에 참 많은 관광명소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관광타임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는 참 아쉬운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냥 그곳을 구경하지도 않고 지나가기만 하면서 '우리 그럼 여기 다녀왔다고 할 수 있는 거지?' 하며 껄껄거렸다. (비엔나에 다녀온 후, 이곳들을 다시 검색하다 우리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아름다운 장소들을 동네 산책 다니듯 지나치다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봤으면 비엔나 토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구글맵만 보며 지나다녔다)


그중에 하나였던 호프부르크 왕궁. 당연히 멋진 사진을 찍었겠지 하고 지금 앨범을 뒤져보니 사진은 없고 영상이 딱 하나 남아있는데, 신고 있던 운동화 뒤쪽이 너무 아프다며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운동화 뒤쪽을 살펴보는 영상뿐이다. 심지어 내가 몇 번이고 봤던 뮤지컬 <엘리자벳>의 황후 Sisi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초상화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도 큰 관심 없이 지나쳤다. 세상에나!


P.S. 쌍둥이가 나와 발 사이즈가 꽤 차이가 나는데도, 자기 슬리퍼를 선뜻 빌려주고 내 운동화를 본인이 신었다. 역시 언니는 언니다! (쌍둥이는 모를 자신의 칭찬)




우리는 과감히 공연 티켓을 구매했다. ©오운



관광보다 중요했던 우리의 본 목적은, 바로 PCR 검사였다. 이곳에 도착해 검사를 받기 위해 여권과 보여줘야 할 정보들이 있는데 미리 준비한 덕에 누구보다 빠르게 처리하고 음성이란 자랑스러운 결과까지 받았다. 실내에서는 꼭 마스크를 낀 보람이 있었군.


참, 하나 빠뜨린 이야기가 있다. 검사를 받으러 가던 중, 길거리에서 궁중 음악가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오늘 저녁에 있을 클래식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 절대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그 길을 지나가는데 안타깝게도 한 사람에게 붙잡혀 꽤 오랜 시간 공연에 대해 설득당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까지 왔는데 이 정도면 슬쩍 눈감고 공연을 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우리는 과감히 공연 티켓을 구매했다.


다행히 클래식 음악 업계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이 있었던 나라서, 조금은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는 척하며 일명 호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사진은 버블티를 사러 간 쌍둥이를 기다리며 옆 통로에서 남겼던 기록. ©오운




공연을 보기까지 아직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다. 잠시 후, 런던에서부터 버블티 타령을 하던 쌍둥이 눈에 버블티 집이 눈에 띄었나 보다. 프랑스 니스에서 자신만 원하는 음료를 마시지 못했다며 그동안 나에게 엄청난 원망을 쏟아냈던 쌍둥이였기에 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짐을 들 테니 버블티를 먹어라!"라고 말했다. 입꼬리가 내려오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내 쌍둥이는 그 가게에 들어와 수많은 소녀들을 뚫고 버블티를 사 왔다.


이 사진은 버블티를 사러 간 쌍둥이를 기다리며 옆 통로에서 남겼던 기록.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 ©오운




빗물에 거의 다 찢어진 종이백을 겨우 손으로 막고, 버블티에 신난 쌍둥이가 추천했던 맛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엔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를 만큼 애매했던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는데, 그 와중에 내가 시킨 맥주 주문이 잘못 들어간 모양이다. 나에게 와서 맥주 사이즈를 잘못 알고 더 큰 사이즈의 컵에 맥주를 따랐는데 괜찮냐는 것이다. 우리가 시킨 음식 중, 감자튀김이 제일 맛있었는데 맥주가 더 커졌다니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그곳에 나와 시내를 마저 돌아다니는데 음악의 도시, 비엔나 답다. 여기저기서 공연이 한창이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





이렇게 낭만적인 도시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오운




비가 하루종일 내리려나 했는데 오후 7시가 넘어가니 서서히 해가 비춘다. 8시 클래식 공연을 앞두고 급하게 맑아진 오스트리아를 담기 위해 바쁜 눈과 손을 장착했다. 사실 비가 왔을 때는 카메라는커녕 점점 더 찢어지는 종이가방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낭만적인 도시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카메라를 들걸 그랬다. 고작 이틀밖에 머물지 않을 도시였지만, 덕분에 동유럽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히 커졌던 시간들.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노부부들의 시선이 그 빛보다 더 반짝인 탓에 행복했던 거겠지. ©오운




공연장으로 향하던 중에 만난 어느 한 공원. 이 사진은 요즘같이 선선함이 느껴지는 가을 느낌이 난다. 물론 당시에는 여름이었지만, 프랑스나 스위스에 겪은 더위는 한 풀 꺾인 모양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땐, 수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뛰어놀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유럽에서 2주째 봐온 풍경이라 이미 익숙하다. 그 행복 속에서 눈을 감고 멍하니 있다 노부부가 서로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그들의 오랜 우정과 사랑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들어 무척이나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비가 그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빛이 유난히 따스했고,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노부부들의 시선이 그 빛보다 더 반짝인 탓에 행복했던 거겠지.




오늘 공연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알려주기엔 충분했다. ©오운




빈 오페라하우스가 가장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운영 중인 시즌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오늘 방문한 공연장은 바로 '콘체르트 하우스'였다. 챔버 오케스트라 공연이었기에 비교적 소규모로 진행되는 클래식 공연이었다.

실내는 크지 않았지만 잔잔한 웅장함이 느껴지는 걸 보아하니, 오늘 공연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알려주기엔 충분했다.


어느새 불이 꺼지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켜졌다. 공연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어, 말이 조금 길어질 예정.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왠지 모를 울컥함이 목 안을 울렁였다. 공연 직전까지만 해도 너무 피곤해서 곧장 숙소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말이다.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의 공연이었고, 공연 중간중간에는 지휘자와 연주자의 코미디 연기도 곁들여졌다. 덕분에 클래식 공연에 큰 관심이 없던 쌍둥이도 흥미롭게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정신 사나운 아이 때문에 공연에 온전히 집중하긴 어려웠지만, 보호자들이 그 아이를 잠재우려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았기에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 부매니저로서 공연을 진행한 적도 있기 때문에 더 신경 쓰였다)


지휘자의 얼굴 표정이 다 보인다. 표정 근육 하나하나를 모두 써가며 연주에 몰입한다. 모든 감각의 전달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까지도 연주를 하듯이 집중하게 된다. 그의 체력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쇼맨십이 재밌다. 인위적으로 만든 재미가 재미로 느껴질 때도 있구나. 공연을 바로 이래야지..


우와, 아는 클래식 음악이 있다. 예전에 클래식 전공자 언니들이 내가 가요를 흥얼거리듯 30분이나 넘는 클래식 음악을 모두 외우고 있어서 신기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다행이다. 괜히 시간만 허비한 게 아니었다.


공연 관계자로 있었던 시간이 긴 탓인지, 연주만큼이나 관객들을 보게 된다. 눈을 감고 웃으며 음악을 음미하는 관객을 따라 공연을 감상해 봤다. 뭔가 더 크게 와닿는 것 같기도 하다. 지휘자를 따라 마음속으로 손을 흔들었더니 음악이 더 잘 느껴진다. 지식과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도 필요하구나. 이곳은 비교적 밝아서 공연에 집중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집중이 안된다기보단 다른 관객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다.


참, 제법 후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공연장에서 나오자마자 후기를 메모장에 남겼기 때문일 거다.




어쩌면 도망친 게 아닐지도 몰라. ©오운




공연에 마음이 빼앗겨 동화 속에 들어와 있다, 사람들의 마스크를 보자 곧바로 떠올려진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에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냐고. 오랫동안 일했던 공연계를 떠나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지만, 내 표정에선 막연함과 두려움이 보였던 모양이다. 덧붙여 뮤지컬을 좋아해서 어떤 공연일이든 시작해 보자고 한 일이 클래식 공연이었는데,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 업무까지 담당할 정도로 경력이 쌓였지만 생각만큼 클래식 공연에 정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항상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나에게 해준 고마운 말이, 이 공연장을 떠날 때 다시금 떠올랐다.


'너 정말 대단하다.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열정과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그걸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포기할 수 있었던 건 다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어쩌면 도망친 게 아닐지도 몰라. 어떤 일이든 너는 잘 해낼 거야.'




최대한 오스트리아를 즐겨보겠다며 다시 밖으로 허겁지겁 나왔다. ©오운



다음날 드디어 한국 가는 날이다.

고작 5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최대한 오스트리아를 즐겨보겠다며 다시 밖으로 허겁지겁 나왔다.


집 앞에 있는 일식집 테라스에 자리를 차지하고, 쌍둥이와 밥을 먹으며 이번 여행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인터뷰가 영상으로 남아있어 글을 위해 오랜만에 영상을 켰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질문(쌍둥이)과 답변(본인).


Q. 당장은 생각나지 않을 만한 곳

A. 니스에서 사진을 참 많이 남겼다. 더위를 정말 잘 타는 나라서 그 자리에서 덥다면서 사진도 안 찍고 가만히 있었다면 지금 엄청 후회했을 텐데, 해볼걸 다 해봐서 당장은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Q. 내가 가장 잘했다 싶은 것

A. 스위스 피르스트에서 트로티바이크를 너무 잘 탄 것 같아. 사실 너(쌍둥이)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여행에서 혼자 있을 때라 이런저런 생각을 자유롭게 많이 할 수 있어서 유럽여행에 대한 실감이 났다. 바이크를 탈 때, 처음으로 카메라 없이 다녀야 했고 눈으로 이 모든 걸 담아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독 그 상황에 집중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빈 오페라하우스를 뒤로 하고 찍은 사람들의 사진. ©오운




빈 오페라하우스를 뒤로 하고 찍은 사람들의 사진. 놀랍게도 오페라하우스를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싶어 피사체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뒤쪽 배경이 오페라하우스였다.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이 무척이나 멋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짧은 일정 탓에 못 보고 가는 게 너무나 아쉽다. 그래서인가. 나는 그해 겨울, 다시 비엔나를 찾아서 오페라하우스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극적으로 카페에 들어갈 차례가 됐다. ©오운




이곳은 카페 자허. 어제 방문한 커피로 이 비엔나 이미지를 굳힐 수 없으니, 다시 한번 도전하기 위해 빈 3대 커피인 카페 자허로 발걸음 했다.


명성에 어긋나지 않게 웨이팅이 한창이었다. 한국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이는 걸 보니 명소가 맞나 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라곤 볼드모트 우비 밖에 없는데, 심지어 숙소에 두고 왔다. 이 정도 비면 맞아도 된다고 유럽 낭만에 젖어 그냥 나왔더니,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극적으로 카페에 들어갈 차례가 됐다.




우리의 첫 번째 유럽여행이 더 연장되지 않음을 알렸다. ©오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물론, 점원들까지 멋진 유니폼을 입어 그들의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자허 토르테 케이크와 자허 멜란지 커피를 시키고 유유히 이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짙은 레드 인테리어와 곳곳에 걸린 초상화들이 커피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초콜릿케이크를 먹으니, 살짝 새콤한 맛이 어우러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겉면에 살구잼을 발랐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매년 12월 5일을 '국제 자허토르테의 날'이라고 지정한 만큼 자부심 있는 디저트다.


그러나 이런 고고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카페 밖은 여전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집에 갈 수 있을까? 오늘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수많은 걱정과 불안이 겹쳐 커다란 구름을 만들고 있는데, 그 구름이 먹구름을 막았나 보다. 다행히 비가 그쳤고, 우리의 첫 번째 유럽여행이 더 연장되지 않음을 알렸다.




우연히 노부부가 마주 잡은 손 사이로 벨베데레 궁전을 담을 수 있었다. ©오운




숙소로 돌아가기 전, 한번 더 벨베데레 궁전을 찾았다. 우연히 노부부가 마주 잡은 손 사이로 벨베데레 궁전을 담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다시 비엔나를 찾게 된다면, 이 벨베데레 궁전에서 나의 추억도 꼭 쌓아봐야지.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찾아 중앙역으로 향했고, 공항에 도착하니 금방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는 만석이었지만, 다행히 우리 옆자리만 비어 있다. 대한항공을 탄 덕분에 오랜만에 비빔밥도 먹고, 누워서 쉬며 한국에 도착했다. 아주 좋은 마무리다. 여행 자체도 물론 좋았지만, 역시 마지막 기억이 좋으면 전체의 미화가 더 빠르게 잘되는 법.




덕분에 요즘 들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고백하듯 '꼭 나와 유럽으로 여행 가자'라고 더 자주 말하곤 한다. ©오운




다음 글을 쓰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비엔나 여행, 아니 나의 첫 번째 유럽여행이 이렇게 마쳤구나.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하면서 사실 나는 하루도 유럽을 잊은 적이 없었다. 1년도 더 지난 여행을 아직까지도 떠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여행에 아직도 빠져 살구나 싶을 것 같아서 조금은 조심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너무 많은 소스가 남아있어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대나무숲처럼 브런치를 찾았더랬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가 유럽에서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을 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요즘 들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고백하듯 '꼭 나와 유럽으로 여행 가자'라고 더 자주 말하곤 한다. 내 글과 사진이 여러분의 여행 결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라며!


비엔나로 향하는 야간열차에서 잠이 오지 않아 끄적였던 메모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가 두려움을 뚫고 이 여행을 결심한 덕분에 얻은 것들에 대한 글이다.







'<비포 선라이즈> 영화를 보고, 야간열차에서

After watching the movie Before Sunrise, on the night train


- 나는 종종 과거에 사로잡혀있다. 특히 마무리가 아쉬웠던 과거의 인연들에 나를 자책하며 마음 아파하는 날들이 많다. 그런 인연들은 나쁜 인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내가 가끔 웃음 짓게 되는 그런 과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지 말자. 그때의 나도 진심으로 살아갔던 거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겠지. 내내 유럽여행에서 느낄 거란 생각했던 특별한 행복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역시나 행복했나 보다. 현실의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감상하며 행복했다. 이젠 그걸 한국에서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겠구나. 남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보는지보다, 나는 내가 어떻게 나의 삶을 채워 나갈지에 더 집중하고 싶다.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것이니 한 발 한 발 매일 나아가면 된다. 지치지 말자. 좋아하는 것들을 쌓아 큰 원심력을 갖자. 나는 낭만을 꿈꾸는 사람이고, 지금의 나도 빛나고 있다. 상관 쓰지 말고 내 삶을 내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나의 취향이다. 나는 풍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들의 일상이 특별한 순간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유럽 풍경 속에서 나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을 보곤 이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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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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