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3일 차 _ 연돈, 산방산랜드, 보통청춘기록실
육아 휴직 연차가 된 나는 매일 남편의 퇴근을 기다린다. 일에 찌들어 아빠 왔다! 하며 목소리는 밝게 내지만 어깨는 처져있고 뒤따라서 아후~ 오늘 지하철 진짜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는 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면 남편에게 이것저것 함께 하자고 말하기도 뭐 한 상황이다. 그래도 남편은 본인 씻을 때 아이를 같이 씻기거나 설거지 정도는 같이 한다. 어쩔 때는 피곤 저려져서 '미안 나 씻고 자야 될 것 같아'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그저 남편이 집안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사람과 떨어져 있은지 10일이 넘어가니 그가 그리웠다. 너무 그리웠다. 최측근인 육아 메이트가 이제는 등장해야 될 시기가 왔다. 남편은 긴 휴가를 냈다. 평일 3일을 냈고 토요일엔 일이 있어 1박을 타 지역에서 하 후 일요일 저녁에야 도착했다. "아빠 왔다!" 하는 목소리에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튀어나갔다. 제주로의 퇴근이 남편도 좋았는지 밝은 목소리와 쭉 뻗은 허리! 초롱한 눈빛까지 신나는 퇴근길이었다. 남편의 방문으로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유라의 가족이 구조대 느낌이었다면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 느낌이었다. 그동안 군인이 엄마의 체력으로 정신력으로 버틴 나에게 '이제 내가 왔으니 걱정 마'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도착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가 책임지는 '원맨쇼'였다. 운전, 아이 돌봄, 일정조율, 짐 나르기, 분리수거 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다. 하지만 남편이 나타나자 상황은 단숨에 역이 됐다. 나에게 치우쳐져 있던 가족의 균형이 비로소 수평이 되며 안정을 찾은 것이다.
"여기 차키요" 남편이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차키를 유라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제주살이 동안 우리가 타던 차는 내 차였고, 남편이 오면 그 차는 당연히 남편차가 될 터였다. 문제는 유라였다. 남편이 오면 우리 가족끼리 다닐 시간이 많아질 터, 유라는 꼼작 없이 집콕 신세가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남편이 오기 전, 나는 유라의 운전면허증까지 챙겨 렌터카를 미리 빌려두었다. 남편이 공항과 숙소를 오갈 때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유라가 사용하는 거다. 그 결과, 나도 유라도 모두 자유를 얻었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온 남편은 제주도 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했다. '연돈'이었다. 연돈은 서귀포 시에 위치해 있었다. 차로 2시간 거리였다. 새벽에 텐트를 쳐놓고 웨이팅을 한다는 기사를 봤던 터라 먹는 건 불가능하다 했다. 하지만 평일이었고 웨이팅 방법이 많이 개선되어서 시도해 볼 만하다는 후기가 있었다. 가게 오픈은 12시이고 웨이팅 오픈이 10시
였다. 9시쯤 출발해서 10시 웨이팅 오픈에 도착하자 했다.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웨이팅을 웨이팅 하는 걸 생각 못한 거다. 한정 메뉴인 치즈돈가스를 먹으려면 8시 이전, 점심시간에 먹으려면 8~9시에 와야 한다고 한다. 아침에 너무 여유를 부려 정작 도착은 11시 4분에 했다. 그래도 오픈전에 왔다며 웨이팅 기계에 번호를 입력했다. 화면에 뜬 숫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웨이팅 192팀. 우리 가족의 식사 예정시간은 오후 4시였다. 뜨악스럽다었다.
나 정말 파워 P 맞네. P는 절망은 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찾을 뿐. 바로 옆을 보니 볼카츠 테이크아웃이 있다. 그런데 직원분을 보니 어? TV에서 보던 사장님이다! 내적 반가움을 뿜었지만 아는 척은 하지 못했다. 너무 바쁜 사장님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손은 빨랐지만 눈은 퀭하고 얼굴엔 미소가 없다. 너무 힘들어 보였다. 장사가 잘되도 좋지는 않구나 싶었다. 아무튼 차선책으로 받아 든 볼카츠를 들고 차로 향했다. 남편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그럼 그냥 먹지 말자 괜찮아하는 거다. 다음에 제주 오면 근처 숙소 잡아서 그때 먹자 했다. 일할 땐 J, 집에서는 P인 남편이다. 그래도 연동 앞에는 와봤다며 '우리 이제 어디가?' 한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네이버 지도앱을 켠다. 근처 별표 표시에 함께 가면 좋은 곳을 보니 산방산랜드가 눈에 보인다. 효린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표시해 뒀던 곳인데 거리가 멀고 아이 둘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엄두를 못 냈었다. 남편이랑 왔으니 가보자 했다.
남편의 방문기간에도 장마였기에 여전히 하늘은 흐렸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놀이공원 가기에 오히려 좋아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비가 살짝 와서 시원했고 산방산에 구름이 쫘악 걸려있어 신비로운 뷰가 연출되었다. 그 뷰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탔다. 놀이기구에는 '단 한 분의 고객도 기꺼이 태워드립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정말 바이킹에 탄 인원이 한두 명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많은 놀이 기구 중에 바이킹만 가동되고 있었다. 산방산 바이킹은 가수 페퍼톤스가 타고 영감을 받아 노래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은 바이킹. '파도가 빛나는 가장 높은 곳 신나게 소리도 질러볼 거야'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정말 바이킹을 타고 파도가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산방산 바이킹은 페퍼톤스 노래 가사처럼 멋진 풍경도 자랑하지만 멘트가 예술이었다. 탑승 전에 탑승객의 이름, 사연 등을 물어보는 듯했다. 지성과 미모를 자랑하는 자연미인 000 만세!, 산방산 기운 받아 취업할 000 만세!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 말투가 너무 재밌었다. 파도가 정말 보이는지, 재밌는 멘트 나도 받고 싶어서 효린이를 설득해 바이킹을 타러 갔다. 효린이 키가 다행히 통과가 돼서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고새 직원분이 교체돼서 멘트는 못 들어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효린이의 인생 첫 왕 바이킹을 함께 탄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산방산랜드에는 즐길거리가 참 많다. 레일바이크, 동물 먹이 주기, 네덜란드 바이크 타기 등 자연 놀이터 입장은 5000원이다. 가격대비 너무 좋은 공간이었는데 비가 온 날이면 진흙밭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체크하고 가기 바란다. 장화를 신고 간다면 마구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 놀이터에서 원탑은 단연 레일바이크였다. 우리 가족이 전세를 내고 탔다. 다만 안전요원이 없기 때문에 셀프로 안전을 챙기면서 타야 했고 썰매 정리도 모두 셀프였다. 레일 썰매를 타면서 다시금 남편의 존재에 감사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이곳에 왔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땀에 절고 두 아이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느라 멘털이 나간 상태의 녹초가 되어있을 내가 눈에 훤했다. 남편과 함께한 산방산 랜드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효린이 호진이 모두 즐거워했다. 우리 가족이 제주의 놀이동산(물론 B급 감성 낭랑했지만)을 찐하게 누릴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점심 먹는 것도 잊은 채 놀다가 '엄마 배고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봐도 제주스러운 식단이다 하는 집을 찾아 나섰다. 제주도에 오면 꼭 바다 돌고래를 봐야겠다 생각했어서 돌고래 성지에 위치한 식당에 갔다. 근데 웬걸.. 운영도 안 하고 날씨가 너무 흐려 돌고래도 못 보게 된 거다. 여기저기 헤매다 점심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차에서 낮잠을 자주어 배고픔을 포효! 하는 아기 짐승들을 마주하는 것은 피했다. 다음 예정지는 사진관이었다. 가는 길에 간단하게 식당에 들러 옥돔구이, 전복뚝배기로 입안에 제주를 담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이들도 정말 잘 먹어주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진관은 제주스러움을 가득 담은 사진을 가성비 있게 찍어주는 곳이었다. 같이 근무하던 군무원분이 제주 여행 다녀오시고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는데 너무 예뻤다. 그때 물어보고 정보를 얻었던 곳이다. 사진관 이름도 낭만 터지는 네이밍이다. '보통청춘기록실' 제주도에 오면 전문 사진가에게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또 제주 바다가 보여야 하며 작가와 별로도 만나서 해변가로 이동하는 번거로움은 없는 그런 사진 촬영을 원했다. 그것을 충족해 준 것이 '보통청춘기록실'이었다. 실내, 실외 촬영이 모두 가능했던 곳이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사진관 바로 뒤에 용천수가 나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날씨요정인 내가 빛을 발휘했다.
사진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비가 왔는데 실내 촬영을 마치고 밖을 나가니 비가 싹 그친 거다. 이런 행운이! 여기서 행운은 끝이 아니다. 보통청춘기록실은 군인, 경찰, 소방관, 제주도민에게는 무료로 인화를 1장 더 해주는 이벤트가 있는 거다. 그리고 사장님이 아이들을 너무 이뻐하셔서 테스트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그것도 무료로! 정말 행운이 가득한 날이었다. 남편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날이다.
먹고 싶었던 곳에 웨이팅이 길어 먹지 못해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고 계획이 틀어져도 바로 수용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거기에 운전까지 하는 나의 든든한 평생 메이트. 체력은 자고, 쉬면서 회복이 됐지만 아이와의 24시간이 길어지며 터져가던 멘털을 붙잡아준 건 유라가 아닌 남편이었다.
팁.
1. 연돈 방문 점심시간에 먹고 싶다면 웨이팅 등록을 위한 대기는 8시 이전 추천
저녁쯤 먹는다면 등록 대기 없이 30분 정도 현장 대기 수 먹을 수 있음. 단 요일별 상이
2. 산방산랜드 이용 시 페퍼톤스의 바이킹을 먼저 들어보고 탑승해 보시길
3. 비가 온 날이면 장화를 신고 방문하기 여름 방문 시 모기가 있으니 모기기피제 준비하기
4. 제주도 스냅사진을 찍는다면 보통청춘기록실 청춘사진관 추천. 원색, 검은색보다는 화이트, 파스텔계열의 복장을 추천 시밀러룩 느낌으로 색감이나 소재만 맞춰서 입는 것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