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뚫고 나가는 우리

제주살이 11일 차 _ JDC낭

by 다씽

제주살이 날짜를 잘못 잡아도 너무 잘못 잡았나 보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문으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 지 11일째다. 그동안 맞이한 제주의 아침은 날이 흐려도 아침이네 하는 밝음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심상치 않다. 어두컴컴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유라와 아침회의를 했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는 종일 내리지만 비의 확률이 오락가락했기에 자칭 날씨 요정의 자신감으로 이 정도 예보면 우리 나가자 했다. 왜냐? 이틀 전에 집콕을 하며 체력은 회복됐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네이버 지도를 켰다. 제주살이 준비를 하며 아이와 갈 수 있는 공간 중 무료 이용공간을 체크해 뒀었다. 그중 한 곳인 JDC 낭으로 가기로 했다. JDC낭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JDC라는 단어는 면세점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역 사회 환원 차원에서 이런 문화시설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덕분에 제주도민도 여행객도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었다.


숙소 밖으로 나가자마자 비는 생각보다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괜히 나왔나 할 정도로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했다. 거센 빗소리보다 집콕을 하며 들을 '엄마', '으앙~'소리가 더 힘들었기에 목적지를 향해 힘껏 액셀을 밟았다. 가는 동안 너무 심한 폭우에 안전 안내문자가 왔다. 이걸 본 유라가 혹시 여기 운영안 하는 거 아냐? 하는 거다. 이런 철저한 녀석.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운영은 한다고 했다. 가는 길에 식사가 애매해서 김밥을 사 먹기로 했다. 한 달을 살면서 점심을 김밥으로 먹는 경우가 참 많았다. 동선 상에 김밥 집을 검색하고 미리 예약 전화를 한 후에 잠시 정차하면 유라가 후다닥 가지고 오는 방법이었다. 궂은 날씨, 갈까 말까 하며 평소보다 늦어진 외출로 허기가 져서 나, 유라, 효린이만 먼저 식사를 해결했다. 서아와 호진이는 이동시간과 낮잠시간이 겹쳐 아주 쿨쿨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 자고 있었다. 그래서 JDC 나이에 가면 짜 먹는 이유식을 먹이자 했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는 길에 다행히 비가 소강상태를 보였다. 우리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간 곳은 A동이었다. 건물의 둥근 형태로 구조 특이했다. C동을 찾아 헤맸다. 토요일에 방문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잠겨있는 곳도 많았다. 난감했다. 제주 아빠의 책임감으로 잠시 기다리라 하고 C동을 찾아 뛰었다. 역시 발품이 최고다. 입구를 찾았고 열리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 유라와 아이들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드디어 폭우를 뚫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JDC낭은 크게 3곳으로으로 나뉘어있었다. 별마당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책장과 계단식 독서 공간이 있는 책 읽기 공간, 제주 곶자왈과 오름을 테마로 한 잔디밭 같은 실내 놀이터, 프라이빗하게 가족끼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캠핑 테마의 가족 쉼터가 있었다. 놀이공간을 보자마자 효린이는 너무 좋다며 뛰어 들어갔고 아직 아장아장 걷는 서아도 엄마손을 잡고 놀이 공간으로 향했다. 호진이는 나에게 안겨있었는데 놀고 싶었는지 내려달라고 뻗대길래 내려주니 엉금엉금 기어 누나 있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해방이다!'를 속으로 외쳤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러다 건물 기둥에 JDC낭 이라고 큼직하게 적힌 게 보였다. 오기 전부터 이곳의 이름인 걸 알곤 있었지만 낭이 뭐지?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의 설명이 적혀있는 벽이 있었다. 그곳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낭'은 제주방언으로 '나무'라는 뜻으로 때론 어릴 적 놀이공간 혹은 만남의 장소로 쓰였던 곳 이기도합니다.라고 적혀있는 거다. 아 나무라는 뜻이구나 하나 배웠다.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걸 고려해서 제작한 벽보였을 것 같았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돌쟁이 녀석들 밥을 먹지 않은 게 생각나서 이유식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떡 하니 쓰여있는 글씨가 보인다. '음식물 반입금지 쾌적한 환경을 위해 모든 음식물의 반입을 금지합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애들 밥 못 먹었는데... 하며 관리자 분에게 아이들 이유식을 먹일 수 있는 공간이 없냐고 여쭸다.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였다. 쾌적한 환경을 위한 조치 임은 이해가 가지만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 수유실 같은 공간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쉬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저귀를 갈아야 했었는데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것이 아닌 화장실로 가는 복도 한편에 파티션 하나 있었다. 파티션에는 A4용지에 출력된 기저귀 갈이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파티션 안에는 낮은 테이블, 식당의자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기저귀 갈이대가 전부였다.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 너무 아쉬웠다. 이유식, 기저귀를 하는 아이들이 방문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지 않나 싶었다. 결국 우리는 교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복도에 소파로 나가서 이유식을 먹였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창 밖을 보니 이거 집에 갈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비가 오는 거다. 얼마나 거센지 내리막일에 물길이 형성돼서 내려가고 있었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굵기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빗방울이 떨어지며 튀어 오르는 물에 바지 단이 다 젖을 정도의 비였다. 비가 잦아들 때까지 더 머물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엔 도서공간으로 이동했다.


넓은 계단형식으로 되어있는 공간으로 아이들이 조금 위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의주시하며 도착하니 아주 높은 책장에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제주에 오면서 짐을 줄이고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갑자기 만난 책이라 그런지 효린이는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열심히 읽었다.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라 내심 뿌듯했다. 또 이곳은 사진 찍기도 참 좋았다. 가득 있는 책이 멋진 사진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유라가 안 보이는 거다 왜 그런가 했더니 호진이보다 2개월 빨리 태어난 서아는 걸음마를 넘어 계단 오르기 경지에 이른 거다. 계단 오르기를 너무 좋아하는 서아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하며 나가려는데 효린이가 입구에 보이는 그물놀이로 뛰어드는 거다. 이거 조금만 하고 가면 안 돼? 하길래 그래 그러자 하고 아주 신나게 놀아주었다. 재미있게 놀아주니 다른 아이들도 같이 놀면 안 돼요? 하며 몰려드는 거다. 그곳에서 뜻밖에 역할을 맡았다. '놀이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거다. 이곳저곳 밟으며 내 뒤를 따라오는 거다. 그물놀이라 뒤를 따라오다 넘어지기도 하고 넘어진 친구 옆을 지나면 튀어 오르기도 했다. 까르르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두 아이가 부딪혀 울기 시작하는 거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역시 과하면 안 된다니까. 결국 놀이의 끝은 울음소리와 함께 종료되었다. 효린이에게도 우리 이제 많이 놀았으니 집에 가자고 했다. 효린이도 실컷 놀아 땀이 범벅이 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갈 때가 되니 비가 그쳤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를 한다면 꼭 가볼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폭우를 뚫고 도착한 낭. 나무가 우리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줬던 거다.





JDC낭 은 네이버 지도에 검색하면 시에는 JDC세미양빌딩으로 검색해야 한다. 별도의 지도 등록을 해두지 않은 상태다. 세미양빌딩은 근처 오름이 세미양오름(삼의악오름)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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