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야 저기 바바"
제주의 운전사였던 내가 조수석에 있던 유라에게 자주 한 말이다. 그 말을 할 때면 유라는 스마트폰으로 향하던 시선을 차창밖으로 바꿨다. 전방주시를 해야 하는 나에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제주의 풍경은 내가 왜 그토록 제주에 오고 싶어 했는지 알려주었다. 자연. 어딜 가든 초록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공간은 그 자체로도 쉼표였고, 다시 숨을 고르게 하는 신호였다.
내가 운전을 하게 된 건 단순히 유라보다 운전경력이 많아서였다. 그리고 짐을 많이 싫어야 해서 SUV였던 내 차를 가져갔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운전을 전담했다. 운전을 전담해서 힘들지 않았냐고? 전혀! 오히려 좋았다. 한 시도 놓치지 않고 운전하는 내내 내 머릿속에 제주를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온 내 머리에 저장된 것들을 사진을 찍어 둘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뒤에 아이 셋, 옆은 오랜 친구가 있다. 당연히 좋은 건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한 곳에 타고 있다. 각자의 머리에 저장시켜야 한다. 졸리면 자고 싶고 배고프면 먹고 싶은 것처럼 제주를 달리면서 내가 본 제주의 풍경을 각자의 시선으로 저장시켜야 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유라는 왜 핸드폰을 보고 있지? 좋은 풍경을 보면 좋을 텐데 했다. 물론 핸드폰만 계속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근데 이 궁금증이 해결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남편의 방문이었다. 남편의 방문 내내 운전대는 남편이 쥐었다. 내가 유라가 된 것이다. 내가 조수석에 앉아보니 유라가 더 고생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남편의 방문이 없었다면 제주의 풍경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긴 유라를 이해 못 했을 거다. 내가 운전을 하고 있으니 일정 체크, 이동하는 곳의 운영시간, 후기 확인, 뒷자리 아이들 챙기기 등 모두 유라의 몫이었던 거다. 제주살이 초반에는 운전을 하는 내가 유라보다 조금 더 고생한다 생각했다. 물론 내가 자처한 일이기에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군인인 내가 유라보단 체력은 좋다.라고 세뇌를 시켰다. 또 그렇게 보이고 싶었기에 묵묵히 운전을 했다. 괜히 나 군인이잖아 체력 좋아! 하면서 허세를 떨었던 것이다. 허세를 내려놓고 유라와 동등한 자리에 앉게 되니 더욱 느끼게 됐다. 조수석에 있으면 제주를 더 많이 못 보겠구나 했던 거다. 그래서 남편이 떠난 이후에는 더더욱 유라를 많이 불렀다. 좌측을 보세요. 우측을 보세요. 하면서 초원에 풀을 뜯는 말이 등장했을 때도, 언덕을 넘는 순간 도로 끝에 보이는 바다가 등장했을 때도, 다양한 오름이 등장했을 때도 계속 계속 유라를 불러댔다. 그중 제일 많이 불렀던 건 한라산의 웅장함에 압도될 때였다.
특히 구좌읍에서 조천읍으로 넘어오는 1132 지방도로에서 만나는 한라산은 볼 때마다 저기 바바를 외쳐댔다. 숙소를 들어가려면 무조건 지나야 하는 길이었고 외출 후에 복귀하는 시간이 보통 5시 이후였기에 해가 쓱 지면서 붉은빛을 띠며 보이는 모습은 또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여기에 하루의 피로를 가득 안은 채로 터덜터덜 집에 들어가는 길에 보는 한라산은 너의 피로를 내가 다 안아 줄게 하는 느낌이었기에 더욱 함께 보고 싶었다.
또 자주 불렀던 건 도로의 끝에 바다가 펼쳐질 때였다. 웬만하면 해안도로로 다니려고 노력했다. 네비가 알려주는 곳은 큰길이 많았는데 굳이 옆 골목으로 빠져나와 바다를 옆에 끼고 달렸다.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뿌리치고 핸들을 꺾으면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의 그 아름다움을 나만 만끽할 수 없었다. 유라와 아이들 모두 불러댔다. 돌쟁이 꼬맹이들은 자고 있을 때가 많았고 뒷좌석 가운데 앉은 효린이는 차 앞유리를 통해서 볼 수 있었기에 차 안의 3명은 우와~를 연발했다. 탁 트인 관경이 우리의 입도 트이게 한 순간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 효린이는 빨리 바다에 가고 싶다 차에서 언제 내리냐를 이야기했고 유라는 핸드폰을 들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눈에 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차의 블랙박스도 백업해 둘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제주 한 달살이가 거의 끝날 때 생각이 났는데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한달 살이 이후 보름 살이 할 때는 까먹지 않고 멋진 풍경이 있는 곳을 갔던 날이면 백업을 해두었다. 제주도의 풍경을 최대한 눈에 담고 그때의 감정을 가슴에 새겼다. 그날의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누며 제주의 추억이 배로 늘어나는 시간들이 계속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