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 2풀트 out 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2풀트 in 자리에 앉은 서현과 가까워졌다. 서현은 10년 된 오케스트라의 창단 멤버였고, 바이올린 전공을 준비하는 딸을 둔 학부모였다. 그녀는 연습 내내 유진의 활을 유심히 관찰하며, 마치 그녀의 연주 리듬에 맞추려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서현의 행동이 유진에게 전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뿌듯함이 들었다.
서현은 자주 유진에게 말을 걸며 칭찬했다.
“유진 씨, 악보를 정말 빨리 읽으시네요. 덕분에 많이 배워요.”
서현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고, 유진도 그런 그녀에게 호의를 느꼈다. 두 사람의 연주는 함께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현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전히 유진의 활을 보며 연주를 따라가려 했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습 중 서현은 종종 유진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 말투는 부드럽기보다는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너무 어려워서 소리 내기 힘드네요. 그렇죠?”
서현은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마치 유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서현은 오케스트라에서 10년을 보낸 창단 멤버로서 그 위치와 경험을 내세워 유진에게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유진은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매번 서현의 집요한 눈빛에 마주치고 말았다. 결국, 유진은 언제나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네, 너무 어렵네요. 저도 이 부분은 잘 못 하겠어요.”
그 순간마다 유진은 마치 자신이 작아지고,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서현의 얼굴에 드리워진 미소는 친절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비교 의식과 경쟁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 미소가 더욱 선명해질 때마다, 유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점점 더 위축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연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유진은 스스로를 위로하듯 묻곤 했지만, 서현의 행동은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연습 중에도 서현은 끊임없이 유진의 연주를 의식했고, 그럴 때마다 유진은 자신이 서서히 밀려나는 듯한 고립감을 느꼈다.
서현의 경쟁심은 날카롭게 드러났고, 점차 그녀의 행동은 거칠어졌다. 유진은 그 심리적 무게에 짓눌리며 점점 더 기운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자리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서현과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그 결심은 점점 흐려져 갔다. 자신감마저 서서히 잃어가며, 유진의 마음은 피로와 좌절로 가득 찼다. 하지만 정기 연주회가 다가오자, 그녀는 오직 자신의 연주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