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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소민 Oct 25. 2024

하모니의 중심

3장

몇 주가 지나고, 세컨 바이올린 파트의 1풀트 in 자리에 앉던 단원이 갑작스레 결석하는 일이 생겼다. 그 자리가 비자, 수석은 연습 전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1풀트 in 자리가 비어 있는데, 누구든지 앞에 앉으세요.”


* 지휘자를 기준으로 1풀트부터 자리가 시작된다.
* 두 사람이 한 개의 악보를 함께 보며, 무대 쪽에 가까운 사람이 OUT, 안쪽에 앉은 사람이 IN이다.




그러나 세컨 바이올린 파트는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 각자 “오늘은 연습이 부족해서요”라며 고개를 숙인 채 핑계를 댔고, 누구도 앞자리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악보만 쳐다보는 단원들의 모습이 마치 보이지 않는 무거운 공기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유진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혼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다들 앞자리에 앉기를 꺼리는 걸까?


그때, 수석의 시선이 유진에게 향했다.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묘한 기대감이 서린 표정이었다.


“유진 씨, 오늘 앞자리에 앉아주세요. 이 자리는 정말 공부가 잘되는 자리예요.”


수석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수석의 다정한 말에 유진은 당황했지만,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다. 망설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누구도 그녀 대신 나서지 않았다. 결국 유진은 천천히 악기를 들고 앞자리로 이동했다.


앞자리에 앉자, 연습실의 분위기는 단번에 달라졌다. 모든 소리가 마치 유진의 귀에 직접적으로 꽂히듯 또렷하게 들렸고, 지휘자의 손짓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확실하게 보였다. 앞자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이전에 뒷자리에 앉았을 때의 편안함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휘자의 손끝에 반응해야 하는 즉각적인 긴장감과 책임감이 유진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무게가 오히려 그녀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유진은 악보 속 음표 하나하나에 몰입했다. 활을 움직이는 자신의 손끝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듯한 순간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유진은 조용히 악기를 정리하며 연습실을 나서려 했다. 그 순간, 몇몇 단원들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유진 씨가 오늘 앞자리에 앉아서 정말 좋았어요. 저희가 악보를 놓쳤을 때 유진 씨 활을 보며 따라갈 수 있었거든요.”


그들의 말에 유진은 순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저 수석의 요청에 따라 앞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다른 단원들이 자신의 연주를 보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유진은 그 말을 듣고 마음 한편에서 뿌듯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약간의 부담감도 몰려왔다. 여전히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연주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연주를 바라보는 눈들이 생겼고, 책임감이 커진 것이다.


그 후로 유진은 자연스럽게 2풀트 out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앞자리에 있던 단원들은 “유진 씨 활을 보며 연습하고 싶어요. 정말 큰 도움이 돼요”라며 흔쾌히 자리를 양보했다. 이제 그 자리는 유진에게 새롭게 주어진 자리였다.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연주하겠다는 유진의 다짐은 서서히 희미해졌고, 그녀는 단원들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위치에서 책임감을 짊어진 채 연주를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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