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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iltonian May 13. 2024

불안한 삶 그냥 걸어가기

한국에서 돌아온 후로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며 잘 지내다가, 다시 불안해졌다. 몇 년째 답보상태로 남아있는 메인 프로젝트, 논문에 대한 압박감, 나의 관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늘 뒷전으로 밀리는 진로에 대한 리서치, 연애와 결혼, 모든 것들이 나를 압박하고 있다. 내가 유학 중인 대학원생이라 그런 걸까 싶었지만, 둘러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고민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인생을 꾸려가는 모든 어른들의 불안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럴 때마다 패기 넘치던 내 모습을 기억해내려고 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최선을 다해서 할 것이라고 외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애써 이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은 진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했을 때 따라오던 좋은 결과를 다시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진정성 없이 결과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서부터 이미 탈락한 걸까.


힘들었던 모든 과정을 거쳐 많이 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내 삶에 바라는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다. 내 기준에 따르면 연구에 진척도 못 내고,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렸으며, 회피형 애착도 극복하지 못한 나는 한참 기준미달이다. 의외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상당히 통제적이었다. 우울증을 지나온 후로 나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 같다. 고통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닳기도 했다. 더 이상 닳고 싶지 않아서 겁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수는 없다. 


순례길을 걸을 때 궂은 날씨가 무서운 순간들이 있었다. 하늘은 어둡고 비는 내리치고 그런 날엔 길에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잠시 멈춰 쉬기도 했지만, 그냥 내 우비와 고어텍스 신발과 지팡이를 믿고 걸어간 날들도 있었다. 걸어보니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웠다. 순례길의 모든 어려운 길이 그러했다. 뙤약볕에서도 빗속에서도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걸어가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러니 햇빛도 비도 그냥 맞으며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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