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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r 19. 2024

폰부스는 하나 만들어주세요

제 통화는 소중하니까요 

며칠 전, 공유오피스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다. 


늘 단독 건물이나 오래된 빌라의 사무실로만 다니다가 멋들어진 공유 오피스로 회사를 옮기고 보니 나름대로 회사 생활에 윤택함이 한 결 더해진 것은 사실이다. 고용인의 입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출입증 카드만 있으면 오픈 라운지 어디에서든 작업을 할 있고, 어느 곳에서든 자유로이 커피와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폰부스'가 존재한다. 


우리 회사가 배정받은 사무실 바로 앞에는 폰부스가 위치해 있다. 그래서 우리 오피스가 아주 조용하다면 폰부스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통화를 본의 아니게 다 들을 수가 있다. 며칠 전에는 선거 유세 전화에 분개한 타 기업의 직원분께서 '저는 마케팅에 동의한 적이 없는데 지금 어떻게 전화하신 거죠?'를 시작으로 고소, 고발 그리고 사과까지 받아내면서 격정적인 통화를 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모든 폰부스가 방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통화의 자율을 지킬 수 있는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폰부스의 중요성을 몰랐을 때에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업무를 하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마치 민원전화처럼 통화가 길어지거나 혹은 난색을 표하는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사무실 안에서 모든 이들이 내 통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나는 그때마다 정말 민망하기도 하지만 제발 나 혼자 이 통화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어느 밀폐된 공간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었다. 아마, 일을 하다가 직면하는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통화에 있어서 어느 사무실이든 안전하게 통화가 이루어져야 할 공간제공은 이제 필수이다. 





폰부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동녹음'이다. 


오래도록 갤럭시를 사용하다가 아이폰으로 넘어갔다. 아이폰 특유의 감성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맥북, 아이패드의 호환성을 생각하면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백 번 천 번 맞다. 하지만 나는 '자동녹음' 기능 때문에 다시 갤럭시로 넘어왔다.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클라이언트와 긴박한 '조율'이 들어갈 때에는 채팅보다는 전화가 빠르고 그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예민함이 느껴지면서 조율에 대한 승낙 여부가 재차 확인되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어쩌다 이러나 녹음본이 없이 잘 통화하고 업무를 진행했음에도 예민하고 바쁜 클라이언트가 '내가 언제 그랬어?!'라는 태도로 나오면 그때 아주 슬프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나는 더러 이러한 일들이 잦았기 때문에 중요한 통화들은 필히 파일로 뽑아두기도 한다. 


그 외에도 바쁜 와중에 메모를 해야 하거나 지금 당장 집중하지 못하는 전화는 어느 정도 바쁜 상황이 일단락되면 다시금 녹음본을 들으면서 정리를 하고 업무를 리마인드 할 수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나의 기억력 대신에 나를 도와줄 플랫폼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스마트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자동녹음은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내가 애용하는 비즈니스 기능이기도 하다. 


클라이언트의 고성이든 비밀스러운 스카우트 제안이든 동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든 우리는 우리의 전화 프라이버시를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취약한 기억력과 나를 지키기 위한 기록은 우리 시대의 필수불가결한 비즈니스 잇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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