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큐베이팅 사무실로 인사를 오셨던 한 스타트업의 임원 분이 계셨다. 어떻게 스타트업으로 전향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력을 굳이 묻지 않아도 정갈한 양복 매무새와 차분한 태도 그리고 깔끔한 매너는 한눈에 보아도 임원급으로 '모셔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다. 실제로 글로벌 대기업에서 굵직한 임원급으로 계시다가 정년을 앞두고 스타트업의 자문 겸 이사, 총괄자리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들어왔는데 해당 스타트업 대표님과 나이차이가 무려 30세였다. 심지어 몇몇 임직원들과는 정말 부모님 나이뻘로 띠동갑을 넘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적응을 하시려나?' 싶은 궁금증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잘 적응하셨고, 마치 영화 < 인턴 > 속 벤 휘테커처럼 언제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을 잘 적응해 내셨다. 아마,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한 문화가 아닐까 싶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경험'과 '인사' 다. 앞 단의 글들에서도 강조되는 내용이듯이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들은 젊기 때문에 유연하지만 젊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고 인사이트가 늘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몇몇 기업에서는 은퇴한 혹은 경험이 많은 노련한 시니어를 C레벨로 채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채용에는 신입만큼이나 어렵고 핸디캡이 존재한다.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만큼 수직적 구조가 더 편한 시니어들에게 수평과 자율 그리고 개성을 존중하는 스타트업의 분위기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린(Lean) 하는 경영방식 속에서의 조합은 현실적으로 시니어에게도 스타트업 대표와 구성원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 <인턴>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며 힐링 영화로 불리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아주 이상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린 스타트업 방식은 시장에 제품을 빠르게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다시 제품에 반영하는 방식
모든 스타트업에서 시니어를 채용했을 때, 위의 케이스처럼 훈훈한 사례만 발생하지 않는다.
채용 시점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 서로서로 윈윈 하자는 취지를 다지며 서로의 성장을 돕기로 하지만 실제로 스타트업 세상으로 들어온 시니어들 눈에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어려울 수 있다. 젊은 사람들과 협업하며 얻는 시너지도 좋고 인정도 좋고 자신의 경력을 마음껏 가르쳐주는 자율적인 환경은 좋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아마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는 스타트업의 상징인 후드티와 청바지의 OOTD,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솔직한 성향, 수평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도드라지게 내는 적극성 등등 모든 것들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기성세대가 배워오고 쌓아왔던 직장 내 가치관과 현재 스타트업의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자연스러운 갈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어(기성세대) 에게 우리는 배울 수 있는 자문과 조언이 분명 존재하고, 젊은 세대의 크리에이티브한 역량 역시시니어(기성세대)에게는 환기와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시너지를 위한 '합'을 맞춘다는 것은 세대를 뛰어넘어 문화를 뛰어넘어 간극이 존재하는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