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대리 Mar 19. 2024

너의 퇴사를 거절한다

난 대표고 넌 직원이야, 아무 데도 못 가!

며칠 전, 대표와 면담을 하면서 나는 입사한 지 1.5개월 만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회사와의 조율 혹은 타협에 대한 의사도 없었고, 가능하다면 대체자를 구하는 것에 적극 협조하여 빠른 퇴사를 희망하고 대화를 시작하였다. 당장 맡은 업무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거니와 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기 전에 빠른 조율을 희망하고 있었다. 






-나 : ( 업무회의 종료 후) 저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대표 : 아니 왜! 너네 정말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건데!? 왜 나가려고 하는데?!

-나 : 일단 제가 퇴사하는 이유는 세 가지예요. 출퇴근 시간이.. (말을 자름)

-대표 : 아니 그거 모르고 입사했어?! 이제 와서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 :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업무 외에 제가 하는... (말을 자름)

-대표 : 그것도 하루 이틀 아니고 원래 해오던 건데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내 사직서를 찢어버렸던 대표도 있었지만 이렇게 학생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대표는 또 처음이었다. 마치 연인 사이에 헤어짐을 인정할 수 없어서 분개하는 모습이었다. 


세 번째 이유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말한다고 한들 달라질 리도 없었다. 실제로 직접적인 퇴사 사유는 '회사에 대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실제로 회사의 경영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한 달은 더더욱 신뢰에 대한 회복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퇴사한다는 직원에게 이렇게 감정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우는 대표를 보니 소위 말하는 기가 빨렸다. 더욱 대화를 이어갔다면 당장에라도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무섭거나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결정이 옳았음에 더 힘을 실어주는 대표의 행동을 보면서도 한 달 반 대표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로 대체자를 빠르게 구함과 동시에 퇴사에 대한 결정은 이후에 다시 얘기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되었다.  *거의 종결이 아닌 대표를 달래고 대화는 종결되었다. 


나는 같은 여성으로서 대표를 존경했다. 워킹맘으로서 해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자신만의 힘으로 온전히 사업을 일궈온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을 해 본 결과 존경치에 대한 기준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도의적, 사회적, 양심적 그 모든 것에 대한 기준을 다 무시하고 '돈'만 준다면 모든 할 수 있는 그런 직원을 필요로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직원들의 대부분이 퇴사를 결심했음에도 대표의 감정적인 대응에 퇴사가 번번이 취소되고 번복되는 곳이라는 걸 입사를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어렵사리 최근 퇴사가 결정된 타 팀의 팀장은 3개월의 장기적인 싸움 끝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그 마저도 6개월간은 동종업계에 이직하지 않는 도의적인 조건으로 퇴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처사였다. 그리고 그 악감정은 퇴사를 이야기하는 나에게로 전해졌다. 나의 퇴사 선언에 대한 대표의 행동은 참 '무례했다'. 직원으로서 나는 대표에게 '예우'를 다했고 배려를 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업무에 대한 무책임과 퇴사를 하는 나의 결정이 대표에게 큰 스트레스라며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대표를 만났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회사는 개인의 성장을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받은 만큼 이상의 일해야 하고, 받은 만큼 이상의 성과를 내야 본전을 찾는 곳이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 간의 예의와 배려이다. 


<멜로는 체질>에서 싱글맘 '한주'가 입사한 회사의 대표는 히스테릭하고 철저히 성과주의이면서도 싱글맘 한주의 사정을 절대 호락호락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주의 우직함과 업무 능력을 높이 사고 타인의 앞에서도 내 식구를 챙기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심지어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만큼은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이 일을 왜 하고 싶은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한다. 


실제로 직원들이 회사에 바라는 건 여타 다른 대기업만큼의 복지와 연봉 외에 인간적인 대표와의 커뮤니케이션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그 말 한마디에 퍽퍽한 회사 생활을 더욱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된다. 떠나는 직원을 보내는 것이 아프고 힘들지만 결국 사람의 연이라는 건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퇴사하는 직원에 대한 예우는 생각보다 남아있는 직원들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곧 그 예우는 내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전 09화 미안하다 알아보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