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타 부서의 투자 심사역님의 퇴사 소식은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보통 액셀러레이터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혹은 이끌어 온 자금으로 우수한 스타트업을 자체 발굴하여 자체 투자하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내부적으로 투자를 심사하는 투자심사역을 따로 두기도 한다. 우리의 분야는 의학 쪽이라서 약사, 의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소위 말하는 '사' 자 영역에서의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이 대거 심사역으로 포진되어 있다. *늘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평범한 사람임에도 업무를 할 때 나오는 그 바이브는 평범함의 영역이 아님을 느낀다. 그저 대단히 존경스럽다.
인자하고 침착한 심지어 능력까지 겸비한 심사역님의 퇴사 소식은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도 꽤나 큰 충격이었는데 더 나아가서는 퇴사를 앞두고 심사역님과 친해지는 바람에 더더욱 마음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에서도 대표님에게도 우리 직원들에게도 아쉬움 그 이상의 공백으로 벌써 다가왔다.
스타트업 세상에 와서 '퇴사'와 '이직'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몸소 느끼게 되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나의 남동생만 보더라도 이 녀석은 스타트업 개발자의 세상으로 들어와 불과 2년 만에 포지션도 변경하였지만 회사도 스타트업-중견기업-스타트업 등 자유자재로 6개월 안에 이직과 퇴사를 밥먹듯이 했다. 물론, 그 모든 퇴사와 이직에는 이유가 있었다.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늘 본인만의 회사 기준과 문화 그리고 적절치 않은 요소들로 이루어낸 결정으로 백수가 되더라도 컴퓨터 앞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켜 이직을 이뤄내는 성장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가 있었다. 혈육인 동생도 그러한데 남은 오죽할까..
공유 오피스에서 스타트업과 자주 소통하며 많이 보는 풍경은 지난주에 있던 마케터가 없어지고, 엊그제 나와 회사의 성패를 논하던 개발자가 바뀌어 있는 빠른 이직과 퇴사의 흐름이었다. 오늘 실패를 하더라도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성공을 위해 달려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인사를 잃었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빠르게 채용 공고를 올리고 스피드 한 채용 프로세스를 통해 사람을 대체하도록 하고, 대체된 사람들이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각종 복지와 혜택 등을 두루두루 만들어놓다 보니 이제는 스타트 업하면 '자유'와 '개성'도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지원을 담당하는 액셀러레이터 기관은 그 반대의 성향이다.
빠름보다는 신중을 기하고, 유연함 보다는 과거를 대부분 고수한다. 이전의 프로그램으로 성과가 잘 나왔다면 조금 더 성과가 덜 나온 프로그램만 보완하고 가는 것이 더 낫다. 실패냐? 성공이냐? 시험과 도전정신으로 한 스타트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없다. 마치 레이싱카가 운전 중에 잠시 타이어가 마모된 쪽만 갈아 끼우고 다시 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소규모 액셀러레이터일수록 더욱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규모 액셀러레이터 기업, 기관이라면 제안을 내거나 새로운 사업을 찾는 팀 등 영역이 나뉘어 있고, 시험 삼아해 볼 수 있는 사업과 인력도 준비가 되어있을 테지만 작은 액셀러레이터 기업에게는 그럴 시간과 여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인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소규모 액셀러레이터는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의 규모와 별만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도전과 모험 그리고 새로움을 이끌어 갈 인사도 부족하다.
핵심 인력의 퇴사는 곧 그 회사의 성패가 좌우되는 일이고, 한 사람은 두 사람의 몫을 해내주어야 회사가 돌아갈 수 있다. 성장을 지원하는 쪽도 성장을 받는 쪽도 그 어느 쪽도 '인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이 생태계에서의 퇴사와 이직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회사의 성장을 위해 직원을 갈아 넣는 구조가 아니라 회사와 함께 동반 성장하거나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결국에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좋은 인사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도 액셀러레이터도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늘 당연한 건 지키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기에 이상이 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잘 되는 회사를 보면 늘 당연한 것에 집중하고, 늘 기본적인 것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장과 지속, 그 두 가지를 잡기 위해서 스타트업도 액셀러레이터도 그 어느 회사도 아직까지 AI로 대체될 수 없기에 '인사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대표님, 저희 기본에 충실해져 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만 회사 운영하실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