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혼전동거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 동거한다고 공개할 수 없다면, 동거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그 정도 신뢰 관계가 없다는 뜻이니까. 결혼 전 동거도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하길 바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동거의 대표적인 장점은 경제적 비용 절감에 있다. 대출이자, 공과금, 생활비 등이 반으로 준다. 혼자 있을 때 최소 비용으로 시키지 못하는 배달 음식도 시킬 수 있다. 음식을 다음날까지 남기거나 따로 소분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대신, 집안일은 2배임..)
두 번째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다. 단비는 연락이 지독하게 안 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인지라 퇴근 후에 뭘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퇴근했어 -> 저녁 먹어 -> 연락 두절. 항상 저녁 먹고 나서 잠깐만 침대에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잠이 들었다고 했다. 연애만 하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비슷한 레퍼토리 었는데, 믿긴 했지만 사실 저렇게 말하고 딴짓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여사친들과 술 먹는 날에도 연락 두절은 일상이었으니까.
동거 후엔 술 먹고 무조건 집으로 돌아오고, 퇴근 후에는 게임 혹은 운동만 하면서도 내 옆에 있으니 전혀 의심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여사친과 술 마시러 간다고 해도 연락만 해준다면 쿨하게 보내주는 정도가 됐다. 그만큼 믿음이 쌓였다는 뜻이겠지.
세 번째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가족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생활 패턴에 물들어 가는 것 같다. 싸울 때도 싸움이 커지지 않게 방지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싸움을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단비를 풀어주는 것은 너무 어렵고, 난 정말 쉽게 풀린다.. 하)
네 번째는 표현이 늘었다는 것이다. 나는 애정 결핍까진 아니지만, 애정 표현을 몹시 좋아한다. 반대로 단비는 표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런 단비와 함께 살면서 단비 본인도 나만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고, 반대로 이 사람은 절대 나만큼 표현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는 1/20 만큼은 따라와 주더라. 표현을 여태 하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일 뿐, 표현해주는 사람 옆에 있으면 닮아가는 것 같다. 이제는 단비의 표현에 가끔 내가 놀랄 때도 있다. 같이 살면 서로 닮아가는 것 같다.
다섯 번째는 음식 식성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꽤 싱겁게 먹는 편이었는데, 단비를 만나고 나서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되었다. 단비 입장에서는 꽤 싱겁게 만든 음식도 내 입맛엔 너무 자극적이다.. 요리를 단비가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비의 입맛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단비 입장에서는 점점 싱거운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일 테니 이것도 서로서로 한 발 양보하고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는, 주말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매일매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비도 나도 I로 집돌이, 집순이에 가까워 매 주말을 데이트로 보내게 되면 평일이 힘들다. 단비와 함께 살기 전에도 나는 혼자 자취하고 있었다. 때문에 단비는 매주 토요일 내 집에서 자고, 일요일 점심쯤에 본가로 가 반나절 이상은 꼭 쉬고 출근했었다. 이제 주말은 풀로 '함께' 쉴 수 있다. 너무 피곤한 주에는 집에서 쉬어도 된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어도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요즘은 체험단을 빌미로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
일곱 번째는, 같이 살지 않으면 몰랐을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잠버릇이나 술버릇은 기본이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집안일을 하는 스타일이나, 본인만의 습관들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전혀 몰랐던 버릇들이 너무 많았다. 빨래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질 못하는 습관도 있더라. 군대 갔다 와서 빨래는 다 한다더니..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다.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외출복으로는 절대 침대에 눕지 않는다. 씻기 전에는 밖에서 돌다 온몸으로 침대에 눕지 않는다. 침대는 나한테 그런 공간이다. 단비는 정확하게 나와 반대였다. (이제는 단비가 나한테 맞춰주고 있다. 꽐라가 돼서 집에 들어와도 꼭 샤워하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주 금요일도 그랬다. 괜히 뿌듯하다.)
여덟 번째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게 되었다. 단비가 말하는 단비의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연애 때는 알 수 없다. 그냥 단비가 말하는 대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믿을 수밖에. 근데 이제는 어떤 게 가짜 단비의 모습인지 안다. 둘이 있을 때 꼭 얘기해 준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또 토론으로 이어지는데, 그것마저 재미있다. 한 사람의 본캐를 알아가는 기분이랄까. (나는 사람은 저마다 사회적 가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홉 번째는, 이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같이 살기 전까지 한 사람을 믿는다는 게 이런 거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말로는 믿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진짜 믿는다는 게 어떤 건지, 단비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됐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 사람이 날 사랑하고 아껴줄 거라는 믿음. (물론 그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일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연애할 때는 보여주지 못했던 많은 모습들을 함께 살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열 번째는, 결혼에 관해 본인의 확실한 기준이 생기게 된다는 것.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떠나 이런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결혼 가치관이 생기게 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 이런 사람과 결혼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의미다. 반대로 어떤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절대 안 되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혼전 동거를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다. 한 사람의 내면은 절대 연애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결혼과 동거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과 동거를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