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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Jul 16. 2024

30대에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생각해 보면, 서른이 넘은 이 나이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난 비혼주의로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그 흔한 남편도, 아이도 없고 지금은 직장도 없고, 집도 차도 없다. 4년제를 졸업하고도 전공을 살리지 못했고,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대학원 전공마저 살리지 못했다. 특별한 경력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재벌 2세나 3세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났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다. 중학교 때는 중상위권, 고등학교 때는 그마저도 흥미를 이렇게 중간 혹은 중하위권으로 점점 성적이 떨어졌던 것 같다. 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그래놓고 사이버 대학을 입학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공부 자체에는 흥미가 없다.)




그럼 이제 바꿔서 생각해 보자. 30대가 넘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 혹은 이룬 것에 대해.




전공을 살리진 못했지만, 덕분에 특이한 경력과 경험을 갖게 되었다. 남들은 평생 가볼 생각도 하지 않는 나라에서 10개월을 거주하며 제2외국어를 전공했다. 그 덕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도 해봤고, 카페에선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매니저, 점장까지 승진하는 경험도 해봤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만두려고 해도 위로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20대 중반에 알았다. 아마 전공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면 카페에서의 일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을 때도 중학교 부장 선생님께 고등학교 시간 강사를 소개받으면서 연결을 해주신 거라 내가 기간제 교사를 도전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다. 학교에 교직이수 과정이 있어서 교직이수를 했다면 평생 기간제 교사 혹은 정교사를 도전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마저도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기간제 교사 기간을 통해 깨달았다. 학교는 꽤 보수적인 집단이었고, 그게 나랑은 너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릴 때 깨달을 수 있었다.




살면서 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보이스피싱도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내 인간관계는 20대에 만난 첫사랑이자 첫 남자친구였던 애가 내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맺고 끊음이 정확해졌다. 분명 그 여자애가 좋은 사람이 아닌 건 알았지만 대학동기이기 때문에 쉽게 끊어낼 수 없었고, 유학도 같이 다녀오게 됐다. 한 번 아닌 사람이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될 일은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필요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길게 유지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를 잘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 몸에 칼을 꽂는 행동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전공을 살리지 않아 어중간한 언어 실력이 되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가질 수 있는 어중간한 능력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디자인과 영상편집. 그리고 마케팅 능력까지. 요즘은 브랜딩에 관심이 많아져 관련 도서를 많이 읽고 있다. 그리고 덕분에 내가 글쓰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뭐 하나에 꽂히면 제대로 미칠 줄 아는 사람이다. 뭐 하나에 제대로 미쳐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제대로 미칠 수 없다. 내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 글을 읽는 순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도 한번 나아가본 거리는 자국처럼 남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에 꽂혔을 때 무서울 정도로 빠져드는 이들이 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과거 경험한 만큼의 깊이에서 기인한다. 무언가에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내어준 경험의 유무는 갈수록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멀리 가봤기에 생각의 범위가 한결 넓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의 과감성이 다르다. 일이나 소소한 취미 생활, 하다못해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얼 하든 그들의 심도는 더 깊다.
- 마케터의 밑줄, p.113




좋아하는 게 딱히 없다면, 그건 내 스스로가 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소하게는 필기구(요즘은 특히 연필)를 좋아한다. 연필의 세계가 그렇게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 빈티지 연필들을 많이 사뒀을 텐데. 나는 내가 볼펜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연필을 써야 할 일이 많이 없어서 여태 몰랐던 거였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도 내가 좋아하는 게 있을 수 있는데, 경험이 없다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오랫동안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면 좋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해 준다면 내가 사랑한 그 순간들이 모여 10년 뒤에는 더 멋진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매여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기엔 내가 가진 삶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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