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준비하며
지난주에 어떤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은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산 삶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위해 열심히 산 삶이었을까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해 이미 고민을 해 본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나를 위한 노력이었는지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한 번도 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장녀로 자란 탓인지, 내가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부모님께 좋은 딸, 멋진 딸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20대 중후반부터 엄마에게 10년 뒤에 꼭 효도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 효도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누굴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일까에 대해 서른이 넘어서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빠는 늘 이런 나를 못마땅해하셨지만, 이제는 조금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이고 계신 것 같다. 아마 이렇게 부모님과 정서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뭐랄까. 이제야 진짜로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부모님 아래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이구나. 앞으로도 내가 주재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와 같은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 대한 공부가 필수이며,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고 '제대로 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비게이션에 정확한 도착지를 입력해야 내가 정확한 곳, 혹은 근처에 도착하는 것처럼. 온전히 '나를 위한'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출퇴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근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버틸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재택근무를 꿈꾸며 힘들기도 하지만, 이뤄냈을 때 내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잠재력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내가 나를 스스로 너무 가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남과 비교하며 나를 다그치고 독촉하기보단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너무 옭아매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40대를 맞이해야겠다.
내가 맞이하는 40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Fin.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