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짱이 바라본, 내 두 번째(?) 직장 생활
부서 이동을 통보받은 날, 집에 돌아와 혁짱에게 “나… 쫓겨난 것 같아”라고 말했었었다.
“에이, 당신 잘리진 않은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냐? 오히려 좋아!”
순간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던 일이었는데, 혁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반응해서 '진짜 별일이 아닌건가?'하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애써 담담하게 설명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25년을 이어온 일을 접고, 전혀 다른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건 내게도 충격이었으니, 혁짱에게도 낯설고 불안한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태연했다.
“당신은 원래 봉사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능숙하잖아. 이건 기회야. 괜히 걱정하는 척하면서 결국 또 잘할 거야.”
이 말투는 언제나 무심한데, 그 속에 믿음이 묻어 있었다.
처음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온몸이 아프고, 퇴근버스 기사 분들에게 눈치를 받고 들어 오던 날에는 들어오는 길에서 내내 울었던 적도 있다.
문의 키패드를 열고 들어 가면 혁짱은 "아이고, 수고했어. 일로와 안아주게"라고 다독거려 주었다.
매일매일 민원 전화에 어이없어하고, 이렇게 하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나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집에 돌아와 한숨을 쉬면 혁짱은 이렇게 말했다.
“아, 또 전화 때문에 황당했었지? 그냥 애들 불러다가 혼내주고, 마음 편히 가져.”
한 번은 환경 캠페인에 쓸만한 키링을 만들려는 준비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혁짱이 공방에서 나무에다가 캐릭터를 새겨주고, 구멍을 뚫어 키링을 만들어 온후 말했다.
“이거 행사에 쓰면 되잖아. 귀엽지 않아? 이건 자투리 나무를 이용한거야. 내가 환경 운동가 다 됐네.”
어느새 혁짱도 내 일의 일부를 함께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낯선 길을 걸을 때, 그는 옆에서 한 발짝 느긋하게 걸어주고 있었다.
보고서와 통계 때문에 계속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버스를 타지 못한 날에 엄마(아직 엄마/아빠라고 한다??)와 통화를 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지금 하는 일이 두 개 부서고 지금처럼 두배로 하면, 나중에 훨씬 더 많은 사업체를 가지게 될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하면서 "언제든지 힘들면 그만두고 나와. 엄마가 아직은 비빌 언덕이 될 수 있어"라고 해 주셨다.
불안은 남아 있다. 속으로는 “이 길로 잘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늘 이렇게 마무리한다.
“글쎄, 맞는 길인지 아닌지는 몰라. 그런데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경우라면, 내가 대표가 아닌 이상에는 회사의 룰을 따라야지", "그리고 앞으로 지속 가능 쪽은 재미있는 게 많아서 나한테는 오히려 그게 답이야.”
돌아보면, 혁짱의 시선은 때로는 따끔했고, 때로는 따뜻했다. 직설은 가끔 서운했지만,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유머는 무거운 하루를 가볍게 풀어줬다.
엄마의 말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과 '안정적인 뒷배'가 있는 사람이 나야나! 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낯선 자리에서 다시 배우고 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나는 계속 걸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