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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메이 출산기

인생, 견생, 공생

by 루메루


“빨리 집에 와! 메이가 새끼를 낳기 시작했어!”

예정일보다 한 주나 빨리 출산 기미를 보이는 강아지를 혼자 보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나서 옆지기에게 전화를 했다.

“어! 벌써?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알았어. 바로 들어갈게”


인터넷으로 강아지 산후 준비물을 찾아보고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난생처음 꼬물이들을 마주하니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질 뿐이었다.

다행히 허둥대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메이는 의연하게 첫째 나나를 낳고 바로 혀로 핥아서 허물을 벗겨주고 탯줄도 어느새 끊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들


이 와중에 둘째 미루를 낳느라 정신없는 메이를 도우려고 갓 태어난 나나가 춥지 않도록 드라이기로 따뜻한 바람을 쏘여주었다. 셋째 루나는 옆지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왔다. 제일 작고 연약해 보였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비한 체험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니 생명의 고귀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메이는 새끼를 낳자마자 바로 젖을 물렸다. 세 시간에 걸친 출산의 고통에 헉헉대는 메이를 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큰일을 해낸 메이가 마냥 기특하고 대견했다. 젖을 잘 나오게 한다는 족발을 푹 삶아서 주기도 하고 북어와 미역도 넣어서 끓여주었다.


메이가 나나 미루 루나를 낳았다


포메라니안은 소형견이라서 종종 난산이 되기도 한다는데 우리 메이는 세 마리를 집에서 무사히 순산했다. 첫째 나나는 암컷으로 메이를 닮아서 하얀색이다. 옆지기 친구에게 분양했다. 둘째 미루는 수컷으로 하얀색과 갈색이 섞여있다. 옆지기 직장 동료에게 주었다. 셋째 루나는 암컷으로 아빠인 루이를 많이 닮아서 짙은 갈색이다.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 루나는 막내지만 눈은 세 마리 중에서 제일 먼저 떴다. 세상이 궁금했나 보다.


차례대로 나나 미루 루나


루이는 강아지들의 아빠로 잘생긴 포메라니안 블랙탄이다. 검은색과 갈색, 회색 등이 두루 섞여있다.

이름도 중국식으로 지었다. 루이는 ‘만사여의(萬事如意)’의 ‘여의(如意 ruyi)’에 해당하는 중국어 발음이다.

뜻은 ‘네 뜻대로’인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메이는 ‘아름다울 미(美 mei)’의 중국어 발음이다. 순백의 하얀, 눈이 예쁜 강아지이다.


작년에 옆지기의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한 마리만 키우기로 하고 루이를 분양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루이 혼자만 두면 외롭다며 암컷 메이를 슬그머니 데리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먹성이 좋고 성격도 좋은 메이는 우리 집에 바로 적응했다. 심지어 루이를 제치고 제집인양 위세를 떨치기까지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정말 그랬다.



소심하고 까다로운 루이는 친구가 생겨서 좋지만 메이의 기세에 좀 주눅 들어 보이기도 했다.

강아지 한 쌍을 키우면서 아직 어린 강아지들이니 성견이 되면 중성화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메이가 첫 생리를 하고 몇 달 후 배가 불러 보이고 젖도 크기가 커진 거 같았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아뿔싸 새끼가 세 마리 들어있다고 했다. 마냥 어린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본능에 이끌려 새끼까지 배게 될 줄이야. 방심한 탓이다.


루이와 메이는 종종 함께 산책을 나간다. 어느 날 산책을 다녀온 후 루이가 사료를 먹지 않고 물까지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석진 곳만 찾아들어가는 루이를 본 남편은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심야병원을 찾아갔다. 일주일 입원을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내었다.

산책할 때 솔방울을 삼켰는데 위에 들어가 커지면서 위와 장의 길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내시경으로 이물질을 끄집어내고 마취한 김에 중성화도 시켰다.

그렇게 루이는 병원 신세를 졌지만 메이는 집에서 순조롭게 모든 것을 혼자 해낸 것이다.

난 기특하고 예쁜 메이의 산후도우미 역할을 자처하면서 새끼들의 건강에도 신경을 썼다.


몸무게를 재기 위해 새끼를 잡았더니 메이가 불안한 듯 바라본다



한 달이 지나자 메이는 매몰차게 새끼들을 거부했다. 이유식을 시작해야 했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좀 지나서는 사료를 물에 불려주었다. 다행히 잘 먹었다.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 새끼들을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 마리가 서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손재주는 없지만 강아지들 장난감이며 방석 등을 손바느질로 만들어 주었다. 어미를 떠나는 새끼들이 메이의 체취를 느끼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물에 불린 사료를 잘 먹는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출산을 한 메이는 산후에 털도 빠지고 힘들어 보였지만 새끼 돌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젖을 물리는 시기엔 새끼들의 똥도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새끼들이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도 메이는 새끼들의 똥꼬를 일일이 핥아주었다.

헤어질 때가 왔다. 미루가 제일 먼저 분양 가고 나나가 떠나고 루나만 남았다. 지금까지도 메이는 루나 똥꼬를 핥아준다. 함께 지내서 제 새끼인 줄 아는 모양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난 루이 메이 루나 덕분에 코로나 블루를 겪지 않았다. 온전히 나를 믿으며 몸을 맡기는 강아지들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왠지 모를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생명이 주는 위안이란 이런 것일 것 같다.

반려견 인구가 부쩍 늘어났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분도 있기에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잘 때가 제일 예쁘다


강아지들의 잘못은 100% 견주 잘못이 크다고 한다. 강아지를 키울 때도 일관성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냥 예뻐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잘못했을 땐 야단치고 교육시켜야 한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나만 바라보는 세 마리 강아지들의 관심이 절절히 느껴진다.

특히 막둥이 루나는 졸졸졸 나만 따라다닌다. 온통 나에게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 같다.

그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강아지들에게 최고의 견주는 백수라고 한다. 그 말은 반려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리라.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반려견과 보내는 시간이 유독 많아졌다. 올해는 우리 강아지들 행복지수가 꽤 높아졌을 것 같다.

반려견을 키우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아침밥을 차려주기 위해 늦지 않게 일어나야 하고, 매일 산책을 시켜줘야 하고, 안아줘야 하고, 빗질도 해야 하고, 대소변도 치워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한다. 또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도 데려가야 한다.


털이 제법 자라서 이뻐졌다


나이 들어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늦둥이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젊은 시절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정신없이 사느라 좋은 줄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중년의 여유가 있는 지금 강아지들을 키우다 보니 소소하게 재미난 일들도 많다. 떨어져 지내는 아들과 안부를 물을 때도 강아지들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옆지기와는 강아지들과 보낸 일상이 당연히 화제의 중심이 된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루이와 메이, 그리고 다섯 살이 된 막둥이 루나.

앞으로 오래도록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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