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나인 내게 개 아들이 생기다
루이와의 첫 만남은 일 년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갱년기가 일찍 찾아온 옆지기는 잠도 잘 못 자고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잠깐 그러고 말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오래갔다.
"우리 고양이나 강아지 키우면 어때?"
"난 키우는 거 책임져야 해서 싫은데..."
솔직히 어려서 난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엄마에게 우리도 한 마리 키우자 했을 정도이다. 남의 집 강아지를 좋아해서 데리고 나갔다 잃어버려서 엄청 혼난 적도 있다. 한 번은 새끼 고양이를 얻어서 며칠 키우기도 했다. 결국 엄마의 성화에 다시 돌려주어야 했지만. ‘나비'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 다섯에 반려동물까지 엄마에게는 무리였을 거다.
그래도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에게 정이 더 간다. 비록 앙칼진 이웃 강아지에게 허벅지를 물려서 간장 한 대접을 먹어야 하는 곤욕도 치렀지만 강아지에게 더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옆지기는 일 년 내내 여러 반려동물을 알아보고 소형견인 포메라니안이 아파트에서 키우기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간히 이 강아지는 어때?' 하면서 내게 은근슬쩍 물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2017년 4월 30일 옆지기와 함께 김포에 있는 팻 샵에 갔다. 그때는 반려견을 사지 말고 유기견을 찾아볼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옆지기가 순종을 원했기에 전문 브리더(견사)가 운영하는 곳을 수소문해서 갔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동행했다. 그리곤 까만색과 흰색이 섞인 블랙탄 루이를 내가 직접 골랐다.
루이를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옆지기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연신 루이를 곁눈질했다. 루이는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가만히 잘 앉아있었다. 루이는 만사여의(萬事如意 wan shi ru yi) 할 때 如意(ruyi)의 중국어 발음이다. 뜻은 ‘네 뜻대로’
일주일 후 어느 날 옆지기가 퇴근하면서 하얀색 포메라니안을 안고 들어왔다.
“루이 혼자 집에 두면 당신이 힘들 거야. 여자 친구 있으면 둘이서 잘 놀 거 같아서 데리고 왔어.”
“어휴! 한 마리도 벅찬데 이렇게 상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라고”
퇴근길에 강아지 용품 사러 매장에 들렸는데 거기서 이 녀석이 날 졸졸 따라다니더라고… 그 눈길이 너무 애처로워서 데리고 와 버렸어. 미안해"
루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메이. 2017년 2월 25일생. 루이는 2월 19일이니까 여동생인 셈이다.
메이는 아름다울 미 美(mei)의 중국어 발음이다.
메이는 풍만한 몸매와 음전한 성격이라 루이의 장난을 받아주기 귀찮아 하지만 가끔씩 덩치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둘이서 잘 지내면 내가 좀 편해지기도 할 듯싶다.
처음엔 텃세를 부리던 루이는 어느 순간, 메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일주일 만에 메이는 우리 집을 접수했다. 먹성이 좋은 메이는 루이 사료까지 넘볼 때가 있어서 따로 주어야 했다. 순식간에 휘리릭 사료를 먹어치우는 메이와 달리 루이는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다. 그래서 둘을 따로 분리해서 밥을 챙겨주었다.
강아지들에게 노즈 워크가 좋다는 정보를 듣고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주었다. 집에 있는 물건을 주로 사용하고 행주로 쓰이는 천을 색색으로 사서 꾸며보았다. 뭐 판매하는 거랑 비슷했다.
루이와 메이는 처음엔 산책을 함께 했다. 어느 날 평소에 가지 않았던 새길이 보여서 거기를 산책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저녁에 루이가 물도 못 먹고 노란 액체를 토해내면서 제자리만 뱅뱅 돌았다. 옆지기는 어렸을 때 개를 많이 키워봐서 위기를 바로 알아차렸다. 루이를 안고 심야병원으로 부리나케 차를 몰았다.
“음~ 좀 더 지켜보고 초음파나 내시경을 해 볼게요. 무턱대고 하면 견주들이 과잉진료라고 불평을 해서요.”
루이는 병원에 며칠 입원해서 진료를 받았다. 초음파를 해보니 위와 장 사이를 뭔가가 꽉 막고 있어서 아무것도 먹지도 싸지도 못하는 거라 했다. 내시경으로 이물질을 꺼내기로 했다. 루이 장을 막고 있었던 정체는 솔방울이었다. 아마도 쪼그만 솔방울을 메이가 먼저 먹을까 봐 조심성 없이 먹어버린 탓일 거다. 그것이 위에 들어가 부풀면서 위와 장의 길목을 턱 막아버린 것이다.
메이와 함께 루이 문병을 갔다. 링거를 꽂고 입원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루이는 내시경으로 솔방울을 꺼내면서 위 벽을 심하게 건드려서 한 동안 유동식을 먹어야 했다.
그 후부터는 루이와 메이를 따로따로 산책을 시킨다.
루이는 아들과 많이 비슷하다. 잘생긴 외모, 까칠한 성격, 예민한 장,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들 여자 친구도 그렇게 말했다. 객관성이 있는 느낌이다.
노동절 오후. 평소처럼 개껌을 주고 설거지하고 있었는데 루이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하얀 액만 토하고 개껌을 뱉어내지 못했다. 옆지기가 위급상황인 걸 감지하고 얼른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뛰어갔다.
개껌이 기도를 막고 있어서 호흡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엑스레이 찍고 개껌이 무사히 위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 집에 데리고 왔다. 잘생긴 값을 하는지 루이는 매번 말썽을 일으킨다.
슬개골이 빠져서 식겁한 적은 있지만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루이는 소심하고 좀처럼 꼬리를 흔들거나 하진 않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행동은 가끔 한다. 며칠 전 주말에 먹고 남은 와인을 원샷하고 혼자 소파에 누워서 가만히 있었다. 저녁인데 불도 켜지 않고 죽은 듯이, 술기운이 올라 거친 숨만 몰아 쉬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내 발과 손을 핥고 있는데 루이가 다가오더니 앞발로 얼굴을 톡톡 건드린다. 마치 ‘엄마! 괜찮아요?’ 묻는 것 같았다. 내가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하니 그제야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렸다. 순간 감동의 물결이 한바탕 일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우리 집은 강아지들이 거실에만 있도록 한다. 같이 자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이 야! 잘 자.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만나자. 여기 있지 말고 편한 곳에 가서 자.”
밤에 자러 들어가기 전에 안방 근처 좁은 틈에 엎드려있는 루이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면 루이는 그제야 개집으로 들어간다. 잠깐 뒤돌아서 나를 쳐다보기도 하면 어서 자라며 내가 손을 내젓는다. 메이와 루나는 벌써 소파 밑에 들어가 쿨쿨 자고 있다. 그래서 루이가 더 특별하다.
첫정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