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미루, 루나의 근황
출산 예정일이 한 주 남아서 메이만 조심스레 목욕을 시켰다. 새끼를 낳고 나면 한 동안 씻기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개운한 지 늘어지게 한 잠을 자고 나서 저녁 사료도 잘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토를 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메이가 난생처음 저녁을 게워낸 것이다. 그리곤 다시 또 허겁지겁 토사물을 먹어치웠다. 그러기를 두어 번, 하도 이상해서 남은 것을 깨끗이 치우고 메이를 강아지 집 안에 넣어주었다. 메이는 뭔가 불편한지 몸을 여러 번 뒤척이고 신음소리도 내었다. 그러더니 엉덩이 부분에서 하얀 물체가 보였다.
아뿔싸! 출산을 시작한 것이다.
메이는 2018년 5월 8일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세 남매 나나(암컷), 미루(수컷), 루나(암컷)를 낳았다. 손 놓고 있는 나와 달리 메이는 알아서 척척 첫째 나나의 허물을 벗기고 탯줄도 정리하고 순서대로 미루와 루나를 순산했다.
뒷정리를 하고 몇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보니 메이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힘들어서 헉헉대면서도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몸을 내주었다.
모견이 새끼를 낳으면 칼슘이 갑자기 부족해져서 가뿐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며 옆지기가 미리 칼슘 보충제를 사다 놓았다. 딸이 없는 나는 메이의 산후도우미 역을 잘 해내려고 갖은 정성을 다했다. 보양식도 챙기고 영양제도 잊지 않고 먹였다. 털이 부쩍 빠지고 얼굴도 홀쭉해진 메이는 그래도 잘 먹어서 안심이 되었다.
강아지들이 태어나면 바로 눈을 뜨는 줄 알았는데 한 열흘이 지나서야 막내가 제일 먼저 눈을 떴다. 언니와 오빠에게 젖을 빼앗기기 십상이라 제일 적은 몸무게로 태어난 루나가 많이 걱정되었다.
강아지들은 메이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잘 자랐다. 배설물도 메이가 바로바로 먹어치워서 별로 할 일도 없었다. 메이는 강아지들에게 훈육도 했다. 세 마리가 서로 놀다가도 싸우면 야단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너무 일찍 분양을 보내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미루는 유일한 수컷이다. 힘도 세고 몸도 단단한 느낌이다. 어느 날 모임을 하고 집에 와 보니 미루가 울타리를 탈출해서 따로 놀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다치지 않은 것에 고마워하며 바로 영역을 넓혀주었다.
미루는 세 마리 중에서 제일 수다쟁이였다. 뭐라고 말을 하면 한 동안 못 알아듣는 짖음 계속 해댔다.
미루는 옆지기 직장 동료에게 분양했다. 미루가 낯선 곳에 가서 불안해 하지 않도록 엄마 메이의 체취가 묻은 쿠션, 사용하던 배변판과 밥그릇을 함께 보내주었다.
“새끼 강아지 분양보내는 일은 정말 못 할 짓이야.
“왜? 무슨 일 있었어?”
“미루가 어찌나 떨어지기 싫어하던지 나도 발이 안 떨어져서 혼났어.”
옆지기가 미루를 데려다주고 와서 하소연했다.
그 집에 수컷 포메라니안이 있는데 다리가 불편하다. 루이 나이 또래인데 혼자보다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미루는 '여름이'라는 새 이름으로 아주 잘 지내고 있단다.
여름에 분양 가서 '여름이'다. 그 집에 원래 있던 얘는 '봄이'다.
옆지기의 분양 조건은 단 하나. 몇 달간 강아지들의 사진과 근황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가끔씩 보내주는 사진을 보니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첫째 나나는 메이를 쏙 빼닮았다. 먹성도 좋고 붙임성도 좋았다. 나나는 옆지기 고교 친구에게 분양했다. 이름은 그대로 나나로 해주었다. 나나도 새로운 견주에게 잘 적응하면서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일 년쯤 후에 갑자기 다른 견주에게 보내야 할 상황이 생겼단다. 새로운 견주를 찾느라 내심 마음고생을 꽤 했는데 알고 보니 옆지기와 친구의 소통이 잘 안 되어 오해를 샀고, 그 덕분에 나나를 우리 집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나나는 옆지기 친구 이모에게 재분양되었다. 친구가 가끔 드나들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노견이 있는 집이라 나나가 활력을 주는 모양이었다.
루나는 가장 행복한 강아지이다. 엄마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산다. 아직도 메이는 루나 똥꼬를 핥아주고 놀기도 하고 심지어 먹을 것도 양보하곤 한다.
포메라니안 새끼 나나, 미루, 루나가 우리 집 거실을 누비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뽀송뽀송한 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오래오래 견주들 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미루 야! 나나 야! 보고 싶어
잘 지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