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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산책

매 순간 사랑하라

by 루메루


“루이 야! 산책 가자!”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집 강아지 수컷 루이는 왈왈 짖으며 하네스(가슴 줄) 착용을 기다린다. 하루 중 루이가 제일 고대하는 시간이다.


노란 은행잎과 블랙탄 루이


루이는 잘생긴 포메라니안 블랙탄이다. 마치 블랙 슈트를 잘 차려입은 도도한 신사가 연상된다. 식성 또한 까다로워서 아무거나 덥석 물지 않는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냄새 맡아보고 나서야 입을 벌린다. 과식하지도 않는다. 제가 먹을 사료가 많다고 느낄 땐 다 먹지 않고 남긴다. 반드시 꼭꼭 씹어서 먹는다. 꿀꺽 삼키는 법이 없다. 정력 또한 넘쳐난다. 깍쟁이 메이가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아서 루이 여자 친구로 곰인형을 마련해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곰인형 위로 올라간다.


산책을 할 때는 나와 눈을 잘 맞춘다. 막 나갔을 때는 여기저기 마킹을 하고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지만 돌아올 때쯤에는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보폭을 맞춰 걷는다.

신기하게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산책을 아주 잘한다. 그리고 바깥에 나가면 표정부터 바뀐다.

웃는 표정을 자주 짓곤 한다. 행복해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매일 산책을 나간다.


모처럼 세 마리가 함께 산책을 나갔다


메이는 포메라니안 암컷이다. 순백색의 까만 눈이 예쁜 강아지다.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사람 눈을 보는 것 같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예쁘장하게 생긴 통통한 여자 아이가 떠오른다. 붙임성도 있어 꼬리를 아주 잘 흔든다. 공놀이를 유난히 좋아해서 옆지기가 소파에 앉으면 삑삑이(삑삑 소리가 나서 삑삑이라 부른다)를 찾아와서 발 앞에 놓고 던져주기를 기다린다. 요사인 기술이 늘어서 앞발로 공을 잡기도 하고 입으로 되받아치기도 한다. 거미손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래서 메이의 별명은 '강아지 메시'이다.


먹성이 아주 좋아서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다. 한 번은 식탁 위에 초콜릿 빵을 먹고 반 정도 남겨놓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 돌아와 보니 빵은 온데간데없고 비닐만 남아있었다.

아뿔싸 식탐 꾼인 메이가 의자에 뛰어올라 식탁 위까지 와서 빵을 먹어치운 것이다. 초콜릿은 강아지에게 위험한 음식이다. 그래서 상태를 유심히 살펴봤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 엄청난 메이의 침이 초콜릿 따위는 순식간에 소화시킨 모양이다.


메이는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다. 먹성이 좋으니 아무나 따라갈 위험이 많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도 되도록 리드 줄을 풀지 않는다. 반면에 루이는 겁이 많아서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운동장에 사람이 없을 때 리드 줄을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루이


메이는 새끼를 낳은 후 요실금이 생겼다. 아주 좋거나 무서울 때 오줌을 지린다. 얼마 전부터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산책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곤 한다. 산책을 할 때도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고 마킹도 한다. 모성 또한 강해서 함께 지내는 새끼 루나를 아직도 보살핀다.


루나는 산책을 나가도 냄새를 맡기보다는 바깥공기 쐬는 걸 좋아한다. 요사이는 조금씩 오줌도 누고 냄새도 맡는다 오줌을 눌 때도 왼쪽 발을 살짝 들고 짝다리 쉬야를 한다. 또 겁이 많아서 다른 강아지가 보이면 마구 짖다가 다가오면 금세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 버린다. 루나는 새침하지만 귀여운 꼬마 숙녀 같다.


메이는 삼 남매를 낳았다. 두 마리는 지인에게 분양하고 우리는 막둥이 루나를 키운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사랑스러운 암컷이다. 태어날 때부터 봐서인지 무척이나 나를 따른다. 적은 몸무게로 태어나서 신경을 많이 쓰면서 키웠는데 이제는 뚱땡이가 되었다. 아주 실하게 잘 자랐다. 루나는 네 살이 되어 성견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눈에 아기로 보인다. 옆지기도 루나의 애교에 살살 녹는다. 컴퓨터 방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방문 앞에 앞발을 가지런히 놓고 얼굴은 가림 막대 위에 올려놓은 후 뚫어지게 나를 바라본다. 빨리 나와서 놀아달라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 같다.


컴퓨터 방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루나


성격이 저마다 다른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다 보니 소소한 에피소드가 생기곤 한다. 강아지 등록을 하러 갈 때도 세 마리를 한꺼번에 차에 태우고 가려니 정신이 없었다.

옆지기는 시끌벅적한 뒷자리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하라 소리를 지르며 말한다.


“아이가 세 명이었다면 아마도 이런 분위기겠군”


한 놈도 아니고 세 마리를 키우려면 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사이좋게 잘 지내는 세 식구를 보니 잠시 외출할 때도 마음이 놓이는 건 사실이다. 어떤 땐 사람 말도 알아듣는 눈치다. 내가 오히려 강아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있다. 상황에 맞춰 짐작만 할 뿐이다. 강아지 언어 번역기가 있다면 정말 유용할 것 같다.


벚꽃이 흐트러지게 떨어진 산책길


산책을 다녀와서는 한 마리씩 발을 꼭 씻긴다. 청결제를 사용해서 물티슈로 닦기도 했는데 물로 깨끗이 씻기는 것보다 못해서 귀찮아도 매 번 빠트리지 않는다. 씻길 때는 루나, 루이, 메이 차례이다. 자기 순서가 오기를 얌전히 앉아서 기다린다. 수건으로 꼼꼼히 물기를 닦고 배변판도 다른 것으로 바꾼다. 물로 화장실 바닥도 청소한다. 이렇게 매일 물청소를 해야 지린내가 덜 난다. 거실 화장실은 반려견 것이 되어 버렸다.


털 없는 원숭이 시절을 지나 이제 우리 강아지들은 철이 좀 들었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무작정 떼를 쓰거나 짖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아니 매 순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강아지들에게 찰나의 소중함도 배운다.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반려견 루이, 메이, 루나와 매 순간 사랑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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