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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

by 김마음


돌아왔다, 집으로.


다시 누운 내 침대에서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취침약을 먹고도 두 시간 만에 깨서 추가약을 먹었다. 그렇게 다시 든 잠도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남편이 갈비탕을 사 와서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밥을 다 먹고는 아침약을 먹었다. 그리고 낮 시간을 뒹굴거리며 보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한참 쉬다가 무슨 바람인지 벌떡 일어나 서재 가구 배치를 바꿨다. 서재 문을 열었을 때 책상이 가로로 보이도록. 바뀐 서재가 꽤나 맘에 들었다. 창문을 등지고 앉아 거실을 바라보니 시야가 답답하지 않고 좋았다. 남편도 마음에 들어 해서 뿌듯했다.


주말에는 남편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사람 많은 곳에 나가기 두려웠는데 막상 가보니까 또 견딜만했다. 중간중간 방전될 것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견뎠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많이 웃었다. 입원했을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자극이 있었는데 잘 버틴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리고 정말 가기 싫었던 자리에도 참석했다. 시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였다. 가족 행사가 있어서 뵈어야만 했는데, 설날 시댁에 가지 않은 나는 무슨 말을 듣게 될까 졸아들 수밖에 없었다. 좋은 척, 반가운 척해야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아무튼 이래저래 참 내키지 않는 자리였는데, 또 착한 며느리 역할을 잘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그럭저럭 잘해버렸다. 나는 그냥 파국이 되길 바랐었다. 내키지 않는 자리를 계속 가는 게 곤욕스러워서 더 이상 안 하고 싶었는데, 그게 실패했다. 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나는 그 식사 자리에서 먼저 나서서 죄송하다 하지 않았고,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아서인지 아무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쓱 지나갔다. 이것도 일종의 성공 경험일 것이다. 나의 반항이 받아들여진 경험. 이걸 잘 기억해야겠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충분히 그래도 된다. 그럴만한 자격과 권리가 있다.




평범한 평일, 나에게는 다시 게으르고 무료한 일상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 빈 속에 약을 털어 넣고, 소파에서 하릴없이 뒹굴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영양가도 없는 오전, 오후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하루의 첫마디를 입에서 꺼냈다. 아무도 가두지 않았는데 나는 내 안에 갇힌 것만 같았다.




퇴원 후 첫 외래를 가게 되었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 거의 한 달 만이었는데 가는 길이 사뭇 떨렸다. 나를 다시 받아주실까. 쫓아냈는데 기어코 다시 돌아왔구나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이렇게 문제를 많이 일으켰는데 다시 가도 괜찮은 걸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나의 고민과 걱정은 단지 기우였음을 진료실에 들어서고 알았다.


선생님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평소와 조금은 다른 행동과 분위기로 나를 반기셨다. 들고 간 서류를 면밀히 들여다보셨고, 입원 생활은 어땠는지, 어떻게 퇴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셨고, 더 들어볼 이야기들이 있다며 바로 다다음날 진료 예약을 잡아 주셨다. 그날 나는 내쳐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내가 존재하는 자체로도 누군가에게 민폐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를 알게 됐다.


물론, 나의 오래 묵은 염려가 단번에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의심했고, 나의 쓸모없음을 확인하려 애썼다. 병원에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한참 고민했다 말했고, 선생님은 그게 왜 고민이었냐고 말씀하셨다. 입원을 권유하셨을 때 나를 포기했구나 생각했다고, 그래서 내가 다시 오는 건 달갑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본인이 포기한다 했었냐고 다시 물으셨다. 아니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를 저리로 미시는 것 같았다.


"밀었던 건 맞죠. 입원하시라고 강하게 권유했으니까. 근데 왜 밀었다고 생각하세요?"


- "살려주시려고. 살려주시려고 미셨겠죠?"


"근데 왜 포기한다고 생각이 들었을까요?"


- "이제 거기로 가. 여긴 오지 마."


"괜찮아지면 오라고 했는데요?"


- "음... 그러게요. 모르겠어요. 안 오면 좋겠다일 것 같았어요."


"안 오면 제가 뭐가 좋을까요?"


- "문젯거리가 좀 없어질 것 같았어요. 반기지 않으실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내가 오는 게 반갑지 않을 거다. 그런데 마침 가라고 하셨으니 아 이제 진짜 오지 말아야 되나 보다 한 거예요."


"그동안 진료를 받으면서 실제로 느낀 분위기도 그랬나요? 제가 밀어내는 것 같았나요?"


-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으셨음에도 계속 그런 상상을 하고 계셨네요. 김마음 님은 어쩌면 현실이 아니라 머릿속 세상에 살고 계셨던 것 같아요."


'난 문젯거리니까 안 오기를 바랄 거야' 생각하고, 근데 막상 와서 보면 그런 느낌은 아닌데, 집에 가면 또 안 오길 바라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러다 입원하라고 하니까 '아 이제 진짜 오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하지만 현실에서 선생님은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외래를 보자 했었고, 입원은 잠시 소나기 피해 가듯이 들어갔다 나오는 거라고 설명도 해주셨었다. 입원을 잠시 활용해 보자고. 그런데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내 머릿속 세상에서 나는 선생님이 날 싫어한다고, 병원에 다시 오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던 거다.


- "날 싫어할 거야. 골칫덩이로 여길 거야. 보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생각하실 거야. 선생님은 날 밀어내고 싶을 거야. 내가 왔을 때 친절하신 건 그냥 연기일 거야. 선생님은 평정심을 잘 유지하니까, 연기를 잘해서 싫어도 싫은 척 안 보이는걸 거야. 선생님이 날 싫어한다는 증거를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의 생각을 듣고 선생님은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해 주셨다. 어떤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간단한 설명이 진실에 가깝다는 개념이라고. 불필요한 가정들을 잘라내자고 하셨다. 선생님이 외계인이라는 불필요한 가정은 안 하지 않냐고 물으시며, '선생님이 사실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야'도 또 하나의 불필요한 가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왔는데 선생님이 반갑게 진료를 하시네? 내가 오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건 아닌가 보다.' 이게 가장 심플한 설명이라고, 내 머릿속 세상에서 뭔가를 덕지덕지 붙이지 말고 현실에 살자고 하셨다. 가정을 붙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고.


머릿속 세상 말고 현실을 살라는 말, 내게 필요한 말이었다. 세상을 괜히 복잡하게 만들어서 생각하는 나의 습관. 이건 비단 진료실에서 뿐만이 아니라 내 삶 전반에서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바깥에서 누군가 한마디만 해도 '저 사람은 날 싫어할 거야.' 하며 움츠러드는 것, '회사는 사실 나를 골칫덩이로 생각할 거야. 팀장님도 나를 싫어하는데 앞에서는 그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걸 거야.'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어쩌면 다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현실을 충분히 경험하고, 세상의 현상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고 하셨다.


퇴원하고 생각이 많던 나에게 이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부분에서 심플하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복잡한 머릿속 세상을 벗어나 현실에 붙어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계속 이렇게 되새기고 연습한다면 난 전보다 조금 용감해지겠지. 그럼 또 용기 있게 삶에 맞서 싸워볼 수도 있겠지.


2025년 3월, 그렇게 한 걸음 회복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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