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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워한 건 엄마였을지도

안전하지 않은 집, 수용되지 못한 아이

by 김마음


2025년 4월의 어느 날, 상담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이 정말 크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엄마와의 일들이 기억났다. 평소 아빠와의 에피소드를 많이 이야기했었는데, 왜 그날 문득 엄마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성적표를 받아 집에 간 날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노래하는 재미가 생겨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고, 나도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건넨 성적표였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셨다. 화를 넘어 통곡을 하셨다.


"말로만 듣던 성적을 네가 받아올 줄 몰랐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너를 키우는지 모르겠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나가!" 라며 모진 말들을 뱉고 엉엉 우셨다.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방에서 나오는 수밖에 없었고, 엄마를 울렸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조금 억울했다. 나는 그저 성적이 떨어졌을 뿐인데, 엄마가 내게 뱉은 말들은 나의 존재 가치를 무너지게 하는 말이었다. 왜 너를 키우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나에게 비수가 되었고, '나는 잘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수 없구나, 역시 조건부 사랑이었구나, 이제 엄마도 나를 미워하겠구나, 엄마에게도 거부당하겠구나'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


상담 선생님은 또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는지 물으셨다. 더 어렸을 때의 일들을 떠올려봤다. 어느 날 방에서 울고 있었다. 아마도 동생과의 투닥거림 때문에 꾸중을 들었던 것 같다. "네가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네가 누난데 이렇게 해야지, 네가 이렇게 챙겼어야지." 그런 책임과 양보를 늘 강요받던 때였다. 나도 겨우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였는데, 매일 나에게만 양보를 바라는 상황이 속상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가 침울해져 있는 나에게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 나는 슬퍼서 먹고 싶지 않다 했고, 그러자 엄마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화가 나거나 속상하거나 그런 나쁜 감정은 빨리 잊어버리는 거야. 그런 건 빨리 치우고 다시 웃을 수 있어야 돼. 꿍해있고 그런 건 틀린 거야. 빨리 나와서 밥 먹어."


나는 그날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배웠다. 부정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때의 경험이 남아서인지 나는 무언가 맘에 들지 않아도, 나에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서투르다기보다는 그저 참았다는 말이 맞겠다.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고, 틀린 일 같았다.


...


어느 날은 너무 아파서 엄마에게 다가가 칭얼거린 적이 있었다. 나는 쉽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날도 참다가 참다가 간 것이어서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먼저 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아파." 그렇게 울먹이는 날 보며 엄마는 냉정하게 말했다. "울지 말고 얘기해."


엄마의 차가운 말투에, 순간 울음이 멈췄다. 그날 나는 이 집에서 아프다고 말할 사람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엄마는 내가 속상한 일이 생겨도 표현할 수 없게 했고, 아프다고도 말할 수 없게 했고, 내가 무언가 원하는 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고, 누군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지금껏 내가 아빠만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엄마도 미워하고 있었구나. 어쩌면 엄마한테 더 상처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근데 내가 왜 엄마를 미워한다고 생각을 못했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나 보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까지 미워하면, 그러면 정말 이 집에 내가 마음 붙일 사람이 없어지니까. 이 집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니까. 엄마를 미워한다는 그 자체가 또 다른 공포였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미워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엄마를 미워한다는 건 말도 안 돼'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이 모든 것이 떠오른 그날, 나는 상담을 도중에 중단했다. 더 이상 대화하기려웠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복잡했다. 오랜 시간 외면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미움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나를 매번 윽박지르고, 매로 혼내고, 공포감을 조성한 건 아빠였다. 나는 그걸 당연히 무서워했고 진작부터 아빠를 미워했다. 그 미움은 내가 외면하거나, 참지 않고 가졌던 마음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어쩌면 엄마에게서 더 많은 트라우마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에도 매섭게 질책하던 아빠가 나를 힘들게 한 것도 맞지만, 정작 나를 정말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억누르도록 강요한 건 엄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한 건 엄마, 아빠, 모두였다.





다음 날 진료실에 가서 전날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했다.


"미워하는 감정도 불편하고 힘들죠.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는 피해 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죠."


- "이걸 어제 처음 알았어요. 난 엄마, 아빠 둘 다 미웠구나. 어쩌면 마냥 무서웠던 아빠보다 엄마가 나를 더 힘들게 했구나. '울지 말고 얘기해. 너는 빨리 웃을 수 있어야 돼. 기분 나쁜 건 표현하는 거 아니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왠지 엄마가 더 미운 거 같아요. 근데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요."


"잊어버리고 싶죠. 불편해서 빨리 해결하고, 해소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게 좋은 방법인 것 같지는 않아요."


- "어제부터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외면해도 감정은 어디 가지를 않아요. 자꾸 피하려고 하면 그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요."


- "그럼 어떻게 해요?"


선생님은 미운 걸 일단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미웠구나. 내가 엄마를 미워했구나' 그렇게 생각을 바라보라고. 무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감정이 잘 다뤄지지 않을 거라고. 미운 마음을 어떻게 갑자기 없애겠냐고,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맞고, 그렇게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내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시 한번 나를 충분히 받아들여주라고 말씀하셨다. 잘하지 못하면 부모님께 거부당했던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수용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면 나도 내 마음을 그런 태도로 대해줄 수 있을 텐데, 그게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나를 못 받아들이는 것, 이게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를 미워하는 나도 못 받아들이고, 합창단에서 노래를 못하는 나도 못 받아들이고, 직장에서 일을 못하는 나도 못 받아들이고. 온통 거부 투성이였다. 스스로를 거부하지 말고 수용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냥 바라보고 지켜보세요. 이걸 없애거나 치우는 게 아니라 '그렇구나' 하고 바라봐주세요. 그 자세가 필요하겠어요, 지금은."


바라보는 연습은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워도 마주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의 파고는 잦아들었지만 엄마에 대한 미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몇 달이 흐른 지금도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흐릿해질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완전히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구겨진 종이의 흔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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