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의 시작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준다고 믿었던 선생님께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건넨 말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단단했던 신뢰가 조금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회사도 한번 견뎌보자는 거죠."
- "무서워요. 잘 못하는 걸 꾸역꾸역 해야 한다는 게."
"남들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건 본인의 생각인 거죠. 그런데도 못하는 게 맞는 건가요?"
-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제게 못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저는 알잖아요. 제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저는 제가 못하는 걸 아니까, 그걸 버텨야 하는 게 힘들어요. 제가 저를 안 혼내면 그나마 다닐 수 있겠는데, 제가 저를 안 혼낼 수가 없어요.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여기서 계속 연습해 봅시다. 내가 나를 좀 덜 혼내보기. 내가 완벽하게 잘하지 않는 상태를 그냥 두고 경험해 보기."
그런데 갑자기 이 상황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 "선생님은 계속 잘하는 걸 하셨잖아요. 부러워요. 자기가 잘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들. 전 제가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컴퓨터는 아닌 것 같아요. 잘하는 걸 하고 싶은데, 그게 그나마 노래였는데, 지금은 아니지만. 잘하는 일 했으면 좋겠어요. 기왕이면 칭찬받았으면 좋겠고, 내가 좀 만족스러웠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 만족스럽고 싶고,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고. 일에서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안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죠. 그럴 때 어떻게 만족하고 살아갈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정 아니면 직업을 바꾸는 것도 해볼 수 있는 거죠."
- "선생님은 잘하는 게 없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실 것 같아요."
...
선생님이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병원을 소개받았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와, 그 학교의 병원에서 일하며, 전공의 전국 수석까지 했다는 화려한 이력. 그걸 듣고 나는 '대단하신 분이네. 나와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일 거야.'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하지만, 막상 진료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지극히 평범하고 친절한 한 사람이었고, 어쩌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진료를 지속하며 그런 기대는 실질적인 생각이 되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탄탄한 치료적 믿음이 쌓인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나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진료에서 선생님은 다시 물으셨다.
"지난번에 '선생님은 잘하는 게 없는 느낌을 모를 것 같다' 말씀하시고 가셨는데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어떤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을까요?"
- "그동안은 내가 제일 공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어요. 아닐 수도 있겠다. 그냥 그런 척해 주시는 것 아닐까?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공감도 지능이라고. 그냥 선생님의 능력 중에 하나가 지능이니까, 공감하는 척도 잘해주시는 거겠지.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것 같았어요."
"배신당한 것 같았어요?"
- "네. 처음 여기 오기 전에 '아, 좀 다른 부류의 사람일 거야' 생각하면서 왔는데, 와서는 그래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거든요? 근데 다시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느낄 수 있죠. 모르는 것 같다, 모르면서 머리로만 공감하는 것 같다. 그랬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뭔가요?"
- "서운해요. 그동안은 제일 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아니었어.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착각했던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서운해요."
"제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 "네, 왜 서운하죠?"
"그러게요. 왜 서운할까요?"
- "너무 기대했나 봐요. 남편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내가 어디서도 안 하던 얘기들을 다 해서. 나를 이보다 더 잘 알 수 없겠다 생각했는데, 아닐 것 같았어요. 그런 존재가 없어진 느낌? 근데, 서운하긴 한데 서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서운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잖아요? 친구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병원이고 치료자인데 내가 뭘 얼마나 기대한 거지 싶었어요. 되게 애매한 관계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모르시잖아요" 하면서 살짝 짜증이 났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아니라 저한테 난 거였어요. '그걸 왜 그렇게 말했어? 굳이 뭐 하러 말했어?' 하면서 스스로 짜증이 났어요."
...
이 주제를 더 깊이 다뤄보자고 말씀하셨지만, 이후 진료에 새로운 주제들이 생겨나면서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기대를 했던 걸까. 내가 기대하고 실망하는 패턴은 어떤 것일까. 어디까지가 나를 이해하는 것일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로 내게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왜 나 아닌 타인에게 그렇게 깊은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걸까. 남편에게는 얼마만큼의 공감과 이해를 바란 걸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실망한 일들은 얼마나 자주 일어났을까. 나의 지레짐작으로 실망하고 마음을 접었던 일들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어 왔을까.
내가 나 아닌 타인에게 바라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나만큼 깊이 이해하는 어떤 한 사람을 계속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외로웠던 내면의 어린아이와 쓸쓸한 지금의 나를 보듬어줄 '나와 같은' 어떤 한 사람. 그걸 찾았다고 생각해서 좋았던 거고,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서운함이 밀려왔던 거다. 생각해 보면 타인이 나를 나만큼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왜 그걸 갈망하게 되었을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이길래 이토록 간절히 바라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