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일
벚꽃이 흐드러지던 봄, 나는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되려나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는데, 막상 합격하니 뛸 듯이 기뻤다. 인터넷 공간에 나의 글을 게시한다는 게 이렇게나 설레는 일인 줄 상상 못 했다. 물론 블로그도 있고 다른 SNS도 있었지만, 여긴 정말 글로만 승부(?)하는 곳이니까.
한동안 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고 줄곧 노트북 앞에서 글만 썼다. 읽는 것도 멈추고 그저 쓰기 바빴다. 한 문장, 한 문장, 공책에 눌러쓰듯이 꾹꾹 정성 들여 적었다. 오랜만에 찾은 재밋거리였다. 퇴원한 이후 어느 것에도 이렇다 할 흥미를 못 붙이고 있었는데, 적절한 때에 적당한 취미가 생겼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나?' 처음 생각했던 건 중학생 때였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중 하나가 생각노트 만들기였는데,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담은 문장을 노트에 적어 오라고 하셨다. 생각노트는 그 해 내내 진행되었고,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검사하시며 코멘트를 남겨주시곤 했다. 생각노트 검사하는 날 대부분의 친구들은 싫어했지만, 나는 선생님께 나의 글을 검사받는 게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말씀을 남겨주실까 기대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나의 진지한 글에 칭찬을 가득 남겨주셨고, 또 어떤 날은 밝은 생각을 많이 떠올려보자며 격려해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내 생각노트의 유일한 독자이자, 따뜻한 평론가였다.
그 뒤로 한동안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다시 이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입원했을 때였다. 워낙 할 일이 없는 곳이다 보니, 읽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시간을 채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집에서 챙겨간 일기장과 노트가 생각났다. 노트를 찾아 펼치고는 아무 문장이나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무슨 생각일까, 나는 어쩌고 싶은 걸까, 온통 나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의지로 절박하게 노트를 채웠다.
퇴원 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된 건 그 노트의 힘이 컸다. 이미 다시 한번 쓰기의 재미를 느꼈고, 간절하게 내 마음을 쏟아내는 방법까지 체득한 상태였다. 안 쓰고는 못 배기는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 작가 합격이 된 것이다. 얼마나 절묘하고 딱 맞는 타이밍인지. 이후 글을 쓰며 난 조금 신이 났다. 우울한 것도 가끔 잊어버릴 정도였다.
글을 쓰며 매번 느꼈던 건, 내 머릿속 생각과 마음속 감정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꽤나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을 조심조심, 슬며시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마구 엉킨 목걸이 줄을 살금살금 풀어내는 것처럼, 시작과 끝, 주어와 서술어를 찾고, 중간을 채우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때. 그때마다 묘한 즐거움이 찾아왔다. 한 문장씩 완성해 나가는 기쁨이 있었다.
글쓰기는 감정을 다스리기에도 좋은 작업이었다. 내가 느낀 격하고 벅찬 감정들도 글로 담아내면 한결 누그러져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쓰고 읽다 보면 '아, 그 정도로 세차지 않았을 수 있겠구나, 충분히 내가 소화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결 정리된 마음으로 빈 화면에 글자를 적어나갔다. 읽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삼킬 수 있을 만큼 잘 정제된 사탕으로, 초콜릿으로, 쌉쌀한 커피로. 내 마음대로, 마구잡이로 써서는 독자를 배려할 수 없으니까, 독자들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며 한 겹씩 다듬어 나갔다. 그렇게 깎고 골라 진한 알맹이만을 남기며 각각의 스토리를 완성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글을 쓰고 검사받고, 평가받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의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다. 이 플랫폼 상에서 조회수, 라이킷, 댓글 등으로 보내주시는 독자들의 반응이 나에게 또 하나의 격려가 된다. 모두가 나의 국어 선생님인 것 같은 느낌이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한 계단 위로 올라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회복의 속도가 조금 더디지 않은가 싶었는데, 이 작은 점프를 해내려고 그렇게 긴 시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 나니까.
2025년 4월 나는 용기를 냈고, 다시 한번 친절한 독자와 따뜻한 평론가들을 얻었다. 이 치유의 글쓰기가, 꾹꾹 눌러쓴 이 문장들이, 언젠가 내 회복의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나를 더 멀리, 더 단단하게 데려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