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워한 건 내 기억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서점에 들렀다. 신간 코너에 있던 '자존감 도둑'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서서 몇 장 읽다가 바로 구매해서 나왔다.
책에서는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 나를 다그치며 자존감을 훔쳐가는 어떠한 것들을 '자존감 도둑'이라고 지칭한다. 자존감 도둑은 내 안에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들었던 말들, 자라면서 내가 스스로 했던 말들은 모두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도둑이었다. 읽다 보면 '나도 그랬지' 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번뜩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잠시 잊고 지냈는데, 갑작스레 그날, 그 기억 속의 나로 돌아가게 됐다.
...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멘토 책임님과 커피를 마시는 자리였는데, 그날 멘토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음 씨는 뛰어나진 않은데, 꼼꼼해."
그 자리에는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동기도 함께였다. 그 동기는 내가 생각할 때 나보다 일을 잘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멘토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너는 얘에 비해 일을 잘하지 못해'라는 말로 느껴졌다. 꼼꼼한 게 장점이라고 칭찬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마치 '꼼꼼한데 너는 일을 잘 못해' 하시는 말처럼 들렸다.
그 뒤로 가만히 지켜보니, 그분은 중요하다 싶은 일은 나에게 주지 않았다.(나만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냥 무난하게 해낼 수 있을법한 일들만 배정해 주셨다. 나를 혼내거나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별로 높게 평가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나를 늘 주눅 들게 만들었다. 멘토는 회사의 핵심 인재였고, 능력이 출중해서 늘 주목받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가끔 그분이 무서웠다. 분명히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도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진료실에서 선생님은 내가 그분에게 느꼈던 감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도록 물어보셨다.
"나는 그분에게 어떤 마음이 있었나요?"
- "부러웠어요. 근데 싫었어요. 저를 작아지게 해서요."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좋아했나요?"
- "네,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잘하고 능력 있으시니까. 워낙 주목받는 인재셨으니까. 위에서도 좋아하셨고, 아래에서도 평판이 좋으셨고. 근데 저는 그분한테 못하는 애로 낙인찍힌 것 같았어요. '뛰어나진 않지만 꼼꼼해'라는 말에서 꼼꼼함은 별로 장점이 아닌 것 같았어요. 다시 마주쳐도 무서울 것 같아요. 혹시 다시 같이 일하게 되면 너무 싫을 것 같아요."
"너무 싫다? 근데 난 부러웠네요?"
- "그러니까요. 부러웠네요."
"너무 싫고, 부러웠네요."
- "그게 공존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요."
- "늘 여유 있어 보이셨어요. 늘 바쁘신데도, 잘하니까 다 쉬워 보였어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 공부하고 노력하셨겠지만. 다 쉬워 보이고 여유가 넘쳐 보이셔서 그런 게 부러웠던 것 같아요. 저는 아등바등하는데. 어떻게든 찾아보면서 해도 계속 모르겠는데. 그 찾아보는 것도 몰래몰래 찾아봤던 것 같아요. 이걸 몰라서 찾아본다는 게 창피해서."
"잘하는 사람은 부럽고도 나를 작아지게 해서 미운 사람이군요. 부담스러운 사람. 미우면서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고요. 잘하면 그 사람처럼 위에서도 좋아하고, 아래에서도 대단하다 생각하고 좋아할 테니까."
-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이도저도 아니에요. 그냥 무서워요."
"근데 잘 생각해 보면 그분이 김마음 님을 무섭게 대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젠틀하셨고, 오히려 같이 공부해 보자 제안도 하셨고, 인간적으로 싫어한 것 같지도 않고요. 싫어했으면 같이 공부하자고도 안 했겠죠."
- "근데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런 분은 이제 회사에 없는데, 저는 아직도 회사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생각을 더 해봅시다. 정말 내가 무서워해야 되는 사람인지."
...
책을 읽고, 과거를 떠올리고, 두려움을 느낀 흐름에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끝없는 평가를 내면화시켜 스스로 혼내는 삶을 살아왔고, 그 멘토의 한 마디는 나의 내면화된 구조를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일을 못해'라는 확신이 강화된 것이다.
나의 두려움은 어떤 실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의 어떤 사람이 무섭다기보다, 과거에 평가받았던 기억, 그때에 내가 느꼈던 무력감, 자책감이 그분을 '무서운 존재'로 상징화한 것이었다. 나에게 무서운 사람은 그분 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주어진 과제를 무서운 존재로 여겼다.
회사는 나에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내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 시험장이었다. 나는 복직이 무서운 게 아니라 다시 쓸모없어질까 봐 무서운 것이고, 그 감정의 깊숙한 곳에는 부모님의 평가와 과거 멘토의 한 마디가 겹쳐져 있었다.
또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고, 선생님은 이번에도 나에게 결정을 온전히 맡기셨다. 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어느 쪽일지 신중히 고민했고, 이번엔 나의 선택을 분명하게 말로 전했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갈게요. 아직은 못 갈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나의 선택을 존중하시고 필요한 진단서를 써주셨다. 내가 진료실에서 뱉은 건 단순히 '쉴게요' 하는 말이 아니었다. '용기 내서 가보세요' 하는 선생님께 '싫어요, 안 갈래요' 하고 주장한 작은 반항이었다. 선생님의 권유에 반하는 결정을 한 것, 그리고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한 것, 나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것, 모든 것이 나에게 유의미했다.
언젠가 나는 다시 시험장과 같은 직장에 들어서야 하고, 무서운 존재들과 맞서야 할 것이다. 무서운 존재들은 사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실체가 없는 공포들이다. 그때에 내 삶의 방식은 나를 조금 덜 다그치기를, 나를 덜 혼내고 보호하며 격려하는 마음이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회복은 내 삶의 규칙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다정하고 유해지는 것, 그것이 가능해지면 나는 어엿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존재해야 할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