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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기록 속에 남겨진 나의 시간들

따뜻함을 확인하고 싶었다

by 김마음


나는 그때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내게는 조금 흐릿한 기억의 시간들. 입원하기 전 진료에 다녀갔던 날들. 타인에게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2025년 5월, 선생님께 진료기록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어떤 점을 알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한데, 내가 어떤 얘기를 어느 날짜쯤 했는지, 무슨 얘기가 먼저였고 무슨 얘기가 다음이었는지, 내가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등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기록을 보면서까지 정확하게 쓰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틀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일을 벌였지, 관계성을 정확히 짚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걸 알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생길 수 있고 중요하지만, 나의 내러티브, 나의 스토리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써나가면 되지 않냐고 물으셨다. 객관적인 나의 모습보다도 내가 기억하고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어땠는지, 그게 더 중요할 거라고. 그러면서 내 안의 스토리는 맘에 안 드는지 물으셨다.


나는 실제로 그 시기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보통은 나도 진료가 끝나면 잊어버리지 않게 열심히 기록하는 편인데, 그 시기의 나는 아마도 많은 걸 놓아버린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적어 놓은 기록도 현저히 적었다. 특히 2월 자살시도 직전과 직후는 기억이 잘 없었다. 그때쯤에는 이미 그 생각에 완전히 사로 잡혀서 대부분의 것을 거의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가 왜 중요한가요?"


- "그냥 남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내가 생각할 때는 그때가 되게 몽롱한데, 조금 뚜렷하게 보고 싶었어요. 그때 당시의 내가 어땠는지. 그래서 강북삼성병원 진료기록도 떼러 가려고요. 입원한 기간 동안 제가 어떻게 보였을까도 궁금해요."


"어떻게 보이고 싶다 그런 게 있나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하긴 하죠. 사회적인 동물이고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니까요. 근데 나는 어떻게 보이길 기대하는지, 어떻게 보이길 바라는지 그런 게 있나요?"


-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좀 일관성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내 말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았나, 진실되게 들렸을까, 그런 걸 계속 생각하고요. 그리고 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정해진 답을 내가 혹시 못한 거 아닐까? 그래서 선생님이 의아해하신 거 아닐까? 가끔 갸우뚱하실 때 내가 뭐 틀린 걸 말했나 싶어요. 저는 안 틀리고 똑똑해 보이고 싶은가 봐요. 그런 것 같아요. 멍청해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여기서 이렇게 진료 보면서까지요? 그게 하나의 자주 하시는 고민 중 하나죠.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능력 있어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도 순서 안 틀리고 일목요연하게 쓰고 싶은 거고요. 확실히 확인하고 싶다, 그런 거네요."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알고 싶어서였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뭔가를 틀릴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다. 틀릴까 봐 두려워서, 확실히 하고 싶어서, 이 작은 글쓰기에서조차 멍청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늘 쓸데없이 끼어드는 완벽주의가 여기서도 발동했다.


진료기록을 받아봤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흐릿했던 기록들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했던 이야기들과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나는 멍청해 보이지 않았고, 유달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기록은 다정했다. 나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 애쓴 노력들이 보였다. 덕분에 이상한 내가 이상한 나로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강북삼성병원에 가서 의무기록 사본을 떼어왔다. 의무기록 안에는 의사지시기록, 투약기록, 간호기록, 심리치료기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기록을 보고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심리치료 기록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임상심리상담사님이 집단 심리치료를 진행해 주셨는데, 치료 내용을 개별적으로도 기록해 주셨다는 게 신기했다. 그날그날 내 눈 맞춤이 어땠는지, 표정이 어땠고 발화량이 어땠는지,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까지 지켜봐 주셨을지 몰랐는데. 간호기록은 훨씬 더 세세했다. 나의 움직임과 인상적인 대화 내용까지 모두 적혀있었다.


"신기하고 또 어땠나요?"


- "생각보다 더 관찰당하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그래서 안전했어요. 저는 거기서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병원 모든 공간에 CCTV가 있다는 게 적응이 안 됐거든요. 내가 움직이는 걸 다 보고 계신다는 게 되게 이상했는데, 지내다 보니까 그것도 좋았어요. 간호기록에 그런 게 있거든요. 뒤척거림,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앉아있음, 추가약 복용할지 물어보고 투약했음, 이런 것들 적혀 있는 거 보니까 '아, 계속 지켜보고 계셨구나' 생각되고. 그게 좀 고마웠어요. 계속 도와주려고 하신 것 같아서."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구나. 나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구나. 어쩌면 그런 걸 확인하고 싶었을까요?"


- "그랬나 봐요. 내가 얼마만큼 보살핌을 받았는지 그걸 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있을 때의 그 느낌이 다시 떠올랐어요. 너무 편안했고, 따뜻했어요."


"생각보다 되게 따뜻한 곳이죠. 정신병원 하면 일반적으로 무섭다고들 생각하지만."


- "무서운 분들도 계셨거든요. 약 던지고 소리 지르고. 근데 그런 분들 말고는 다 좋았어요. 다시 병원에 가고 싶어졌어요."


"나를 그렇게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 정도로 살펴주는 건 사실 부모님이 아기들한테나 하는 일이죠. 김마음 님은 그런 정서적 조율, 내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나를 위해주는 정서적 공감, 그런 게 늘 부족하다고 느끼셨잖아요. 병원에서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서 편하다고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록들을 읽어보며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따뜻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친절한 위로를 건넸는지, 내가 느꼈던 감정이 실재했던 게 맞는지, 그걸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한 따뜻함은 착각이 아니었다. 기록 속에도, 그날들의 대화 속에도 그 따뜻함은 남아 있었다. 두 병원의 진료기록을 보며 나는 그걸 확인했고, 확신했고, 조금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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