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김마음 님은 피하는 데에 굉장히 열심히이신 것 같아요. 계속 피하다 보니까 이것들이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어요."
노래를 못 부르는 나를 외면하고,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회사를 외면하고, 부모님을 향한 미움을 외면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하고. '이런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이건 잘못된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모든 걸 피하고 있다고 하셨다.
"생각이 드는 것조차 용납을 안 하고, 판단하고, 피하고, 거부하고.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마치 1등 못하는 내가 아버지한테 거부당하듯이, '이런 나는 내가 아니야, 용납할 수 없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은 근 몇 년 간의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인생 전체일 수도 있겠다. 이 말을 듣고서야 내가 얼마나 모든 일에 회피적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르는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서 사라지고 싶어 했다. 일도 못하고 진급도 못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어 회사에서 달아났다. 부모님을 향한 미움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드러났지만 그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선생님께 전이 감정이 있음을 알면서도 잠시 덮어두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물리적인 실체를 피하는 건 쉽지만, 언어와 상징, 생각들을 피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피하면 피해지지 않고 오히려 내 마음속에서 더 커져요.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고 더 나를 괴롭게 해요. 그런데 김마음 님은 모든 것들을 회피하고 있어요. 그래서 변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
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 이전 진료에서 내가 울며 얘기했던 그 말이다.
"저는 안 바뀌잖아요. 똑같잖아요."
선생님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주신 것 같았다.
피해서는 아무것도 다뤄지지 않는다.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욱 강하게 떠오른다. 피하지 말고 생각을 바라보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 긍정적인 생각이든 부정적인 생각이든 판단하지 말고 머무르기. 중요한 건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
또 하나 풀리지 않는 숙제는 '가치 없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였다. 노래를 못해서, 일을 못해서,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나는 그런 이유들로 나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어왔다. 그 믿음은 나를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일까. 생각해 본다.
무엇을 못함이 나의 존재 가치를 파괴할 수는 없다. 무엇을 잘함이 존재의 이유가 되지 않듯이.
"나를 좀 있는 그대로 바라봅시다. 김마음 님 머릿속에서 '노래 못하는 나'는 '가치 없는 나'인 것 같아요. 노래를 못하는 나는 그냥 노래를 못하는 난데, 가치 없는 나랑 생각이 붙어있어요. 노래 못하는 나는 가치 없는 나라는 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노래 못하는 나는 가치 없는 나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바라보세요."
- "그래도 괴롭잖아요."
"괴롭죠. 근데 그걸 계속 가치 없다고 단정 짓는 거랑, '내가 또 가치 없다고 생각하네?' 하면서 바라보는 거랑은 다르다는 거예요. 융합되어 버린 걸 조금 풀고 거리를 둬보자는 거예요. 괴로운 생각이지만 두고 봅시다. 마음 챙김도 그런 관점이거든요."
괴롭지만 바라보기로 했다. 억누르지 않고 떠오르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존재하는지, 그 생각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피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것이 지금 당장은 아프고 힘들겠지만, 결국에는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