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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야 비로소 풀리는 감정

켜켜이 쌓여온 전이 감정과 마주하다

by 김마음


바라보라고 하셨다. 바라봐야 다룰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피하지 않고, 전이 감정과 마주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정신과 치료에는 '전이 감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치료자에게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인데, 이는 단순한 호감이나 집착이 아니다.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게 품었던 감정이, 치료자라는 안전하고 집중된 관계 속에서 다시 떠오르며 재현되는 심리적 작용이다. 정신과 치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나 역시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렵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익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판단과 억제가 계속적으로 그 생각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타당한 감정에 냉혹한 판단이 끼어들면서, 풀어놓아야 할 것을 오히려 꽁꽁 감추게 되었다. 전이 감정은 치료자와 내담자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외면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이제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세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


전이 감정을 가장 크게 느낀 건 입원해 있는 동안이었다. 입원을 함으로써 주치의 선생님과의 치료는 종결되었구나 생각했고, 치료 관계가 갑작스레 단절되며 내 안의 결핍과 외로움이 전이 감정으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정신병동은 아주 자유로운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철문 안 폐쇄병동에 갇혀 있었지만, 24시간 모든 공간에 CCTV가 돌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내게 그보다 더 자유로운 곳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혼낼 수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자유였다. 남의 눈치보기 바빴던 사회에서의 내가 아니라, '나', '김마음'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원하는 걸 모두 상상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을 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혼자이기도 했고, 어느 누구의 아내이기도 했고, 어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어느 먼 나라에 살기도 했고, 수없이 많은 직업을 가지기도 했고, 이룰 수 없이 큰 부를 누리기도 했다.


상상 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그리워했다. 진료실의 분위기, 목소리, 말투. 그리움의 근원은 나를 이해해 주는 안전한 관계에 대한 결핍이었고, 그것이 선생님에게 투사된 것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매일 일기로 적었다.


6월, 전이 감정을 피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그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을 보여드리는 것이 나의 전이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늘 진료실에서 생각나는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라고 하시는데, 나는 나의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일기장을 보여드리는 건 그 어려움을 피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말로 전할 수 없는 걸 글로써 대신하는 것.


일기를 복사해서 진료실에 가져갔다. 그 안엔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일기를 전달함으로써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마음을 오픈했고, 선생님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셨다. 그렇게 몇 분을 정성 들여 읽으신 후에, 다시 한번 친절히 확인시켜 주셨다. 마음과 생각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제가 받았고, 읽었고,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요?


- "문제는 없어요, 아무것도."


"그렇죠. 문제가 없죠. 생각은 힘이 없어요. 생각하고 상상하는 건 모두 자유죠. 그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 "저도 알아요. 그래도 죄책감이 들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잘못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내가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를 그냥 지켜보세요. 이런 마음 들면 안 돼, 잘못된 거야, 그렇게 판단하지 말고 바라보세요."


바라봐라, 수용해라. 말로는 알겠지만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과제였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된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바라보는 건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그걸 판단 없이 바라볼 수 있는지.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은 '틀린 거야'가 나의 사고인데, 이걸 거스르며 '그럴 수도 있어'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


그날 진료를 마치면서 선생님은 물어보셨다. "이건 제가 다 읽었는데, 돌려드릴까요?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을까요?" 나는 이때 돌려드린다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깊이 박혔다. 돌려받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기도 했었고, 어쩌면 당연히 가지고 계실 거라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큰 용기를 내어 준비해 간 일기를,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던 내 감정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봐 주실 거라 기대했던 것도 같다. 당연히 전이 감정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계실 테니까,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에 의한 것이라고, 전문가의 시선에서 내 감정을 더 깊이 탐색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치료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였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짧은 시간 읽으신 후에 돌려주겠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이걸 빨리 치우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치워지는 문서처럼 나도 선생님에게서 빨리 치워져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상했다. 나는 왜 그걸 그렇게까지 여겼을까. 크게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두 걸음 물러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


이후 진료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나를 빨리 치우고 싶어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선생님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를 물어보셨다.


"무얼 보고 빨리 치우고 싶어 한다고 판단하셨을까요?"


- "돌려주겠다고 하셨을 때요. 그게 왜 그렇게 컸는지 모르겠어요. 거기서부터 다 이상해진 것 같아요. 그 질문들이 빨리 없어졌으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돌려드린다고 한 게 '빨리 치워버리고 싶다, 지겹다' 이런 걸로 느껴지셨군요."


- "'어차피 봐야 뻔한 얘기잖아. 이제 좀 지겹다.' 그럴 것 같았어요." (이것도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다.)


"그래서 제가 더 안 보려고 하니까 아마도, 김마음 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더 안 보려 한다, 이런 생각이셨던 거군요."


- "네, 그냥 단순히 제 마음이 거절당했다기보다는 '이제 내가 없었으면 하시는구나'로 확대 해석한 것 같아요. 저도 알아요. 제가 오해한 부분인 거."


"그런 마음이 드셨으면 오기 싫었겠어요. 저 서류처럼 나한테 관심 없고,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한테 와서 얘기하기는 힘들었겠어요."


명백한 나의 확대 해석이었다. 선생님은 문서의 처분 방법을 물으신 거였고, 나는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된 사고를 했다. 나는 당시 서운했고 이 감정은 내게 너무나 실제처럼 느껴졌지만, 이후 진료에서 선생님과 이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나에게 얼마나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예민해진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럴 수도 있는 마음이라고 정당화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치료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랬겠다’며 나의 감정을 받아주셨다. 치료적 중립을 유지하면서도 공감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을지를 탐색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셨다. (정신분석적 치료에서 치료자는 본인을 노출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선생님은 늘 중립적이고, 명백히 탐색적이며 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진료를 이어간다. 나를 거울처럼 비춰주시는 덕분에 내 마음속 많은 것을 투사하며 내가 원하는 것과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기에 그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스러움도 당연히 있지만, 언젠가 전이 감정이 씻겨 내려가고 나면 나는 내가 진짜 얻고자 하는 무언가와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치료 과정을 더욱 꼼꼼히, 찬찬히 밟아가고 싶어졌다.




* 이 글은 정신분석 치료에서 말하는 ‘전이 감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치료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그런 감정이 생겨나는지를 치료의 흐름 안에서 풀어가고자 했습니다. 감정 자체보다, 그것을 마주하고 다루는 과정을 함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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