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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안 들으면 버림받을까 봐

나는 또 누구를 만족시키려 했나

by 김마음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고 '싶다'는 아니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돌아가야 한다는 그 생각 저변에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서서히 마음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7월 중순이 넘어가고, 복직일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또다시 고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이 우세한 것 같았다. 돌아가서 진급 준비도 해야 하고, 돌아가서 해야 할 업무도 있고(물론 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가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6개월의 병가를 썼고, 그 뒤에 마음건강 휴직으로 이어서 쉬고 있다. 휴직은 진단서에 명시된 기간만큼만 등록이 가능했는데, 선생님은 한 번에 3개월씩만 적어주셨다. 그래서 3개월이 지날 때마다 휴직을 연장할 것인지, 복직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사실 나는 이게 나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늘 나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셨다. 그 시점에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가장 중요시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 가기 어렵다고 눈물로 호소하며 유예기간을 얻어왔다.


그렇게 휴직을 연장할 때마다 선생님은 한 번씩 물어보셨다. "혹시 돌아가서 부딪혀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그 권유를 이미 두 번 거절했고, 세 번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안 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이번에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고 싶다는 아닌가요?"


- "가고 싶다는 모르겠어요."


"가야 한다는 왜 가야 한다인데요?"


- "더 오래 쉬면 더 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계속 이렇게 오래 쉬면 힘들 거라고. 그래서 그냥 이제는 진짜 가야 하는 시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 "가고 싶은 이유는 없어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러 가는 거예요."


"가서 얻을 건 없나요? 내가 원하는 것"


- "회사에서 뭐 얻을 게 있나요? 돈을 조금 더 받겠죠. 월급이 정상대로 나올 테니까. 그거 말고는 모르겠어요."


"돈은 내가 원하는 가치가 아닌가요?"


- "지금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왜 가려고 하시나요? 이렇게 두렵고 괴로운데?"


- "가라고 하셔서요..."


"제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실 건가요?"


- "음... 저는 계속 그 생각을 해요. '이렇게 계속 말을 안 들으면 싫어할 수도 있어, 미워할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어' 그런 생각이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제는 더 반항할 수 없어, 그런 생각 많이 해요. 가야 하는 이유는 '가라고 하셔서'인 것 같아요."


'가라고 하셔서'


나에게 중요한 이유였다. 가라고 하셔서. 내가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주시는 가이드라인이니까, 그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가서 부딪혀 보고 학습해 보자, 성공 경험을 쌓아보자, 이런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 당연히 나에게도 맞는 방식이겠거니 여겼다. 내 두려움의 원천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내가 가기 싫은 건 그냥 내가 조금 나약해서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건 우리의 치료 방향이 아니라고 하셨다. 내가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가라고 해서 가는 거라면, 선생님의 애정을 잃고 싶지 않아서 반항하지 못하고 가는 거라면, 그건 제대로 된 변화가 아니라고 하셨다. 내 이전의 삶의 방식을 답습하는 거라고.


"그건 그냥 내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잖아요."


- "그런 것 같아요. 괜찮은 척하러 가는 것 같아요. 겉으로라도 괜찮은 척. 저는 괜찮은 척 잘하니까. 근데, 진짜 말을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해서는 아닌데, 그냥 말을 들어야 될 것 같았어요. 그게 계속 큰 것 같아요. 말을 안 들으면 버려질 거라는 생각..."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순간에 바로 떠오른 건 어릴 적 엄마와의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까.

동생이 유치원생이었으니까 아마도 그쯤이었을 거다.


"어릴 때 엄마가 잠깐 집을 나가셨을 때가 있었거든요. 근데 며칠 후 돌아와서 그러셨어요. "너네 아니었으면 다시 안 돌아왔어." 그때... 말을 잘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또 우리를 버리고 나갈 수도 있겠다.'

그때의 기억이 유난히 슬픈 건, 엄마가 집을 나갔던 기간 중에 운동회가 있었거든요. 운동회 때 보통 가족들이 와서 점심을 같이 먹잖아요. 근데 엄마가 없어서 제대로 챙겨줄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친구네 가족들과 같이 어울렸던 기억이 나요. 그게 많이 슬펐어요. 운동회날 하루 종일 저는 운동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저는 그날의 제가 불쌍해요.

그러고 나서 하루 이틀 후에 엄마가 돌아오셨는데, 미안하셨는지 머리끈이랑 인형이랑 그런 선물을 사 오셨어요. 어떻게 생긴 머리끈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근데 그 선물들이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크게 느꼈어요. 말을 잘 들어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도 있다고."


"...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어요. 말을 잘 들어야 된다, 진짜 버려질지 모른다. 큰일이죠 엄마가 없어진다는 건. 특히나 어린 나이에 엄마가 없어진다는 건 아주 큰일이죠."


- "며칠 동안 아빠랑 저랑 동생이랑 할머니랑 집에 있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그나마 위로해 주던 사람이 엄마였어서. 그냥 거의 방에 갇혀서 피아노만 쳤던 것 같아요. 운동회날 아침에 제가 엄마 없어서 가기 싫다고 막 울었거든요. 근데 아빠가 엄청 혼내셨어요. 울지 말고 빨리 가라고. 소리 지르면서 혼내셨는데, 그때 기분은... 슬프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돼요. 그렇게 엉엉 울면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도 잠시 말씀을 멈추셨다.


"... 큰 두려움이 있으신 것 같아요.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랑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이 회사를 가는 두려움보다 더 커서, 그래서 회사에 가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그런 게 아니죠. 두 개의 불안을 경쟁시켜서 덜 불안한 쪽으로 가자는 게 아니라, 불안하더라도 내가 추구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불안을 이겨내고 그 가치를 향해서 나아가보자 이런 거죠. 그러니까 김마음 님께는 그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 안 통하는 거예요. 일반적인 가이드라인 대로라면 그냥 불안 두 개가 경쟁하는 게 되겠어요."


- "저는 그럼 어떡해요?"


"내가 이유를 찾아야죠, 갈 이유를. 아무리 찾아도 갈 이유가 없다면, 그럼 가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도 용기죠."


나는 전이 감정으로 선생님께 엄마를 비췄다. 나에게 다시 회사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시는 선생님의 말을 엄마의 말처럼 들었고, 내가 말을 안 들으면 선생님도 날 떠날 수 있어, 날 버릴 수 있어라고 느꼈다. 그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원하지도 않는 복직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하지도 않는 복직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 문장은 나의 많은 삶의 방식을 요약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지 아닌지보다 '누가 나를 떠날까 봐, 누가 나를 미워할까 봐' 그 두려움이 내 삶의 중심축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운동회날의 기억은 정말 중요한 열쇠였다. 그 장면은, 지금의 내가 왜 '괜찮은 척'하고 '말을 잘 들으려 애쓰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괜찮은 척하며 말을 잘 들으려 애쓰는 건 그 시절 너무 외롭고 두려웠던 아이가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었고, 그 생존 전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를 갈까 말까 결정함에 있어서도 나는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먼저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서, 그 사람을 만족시켜서, 버림받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정작 하고 싶은 건 뭔지, 돌아볼 마음이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결정을 하는 시점에도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세우는 습관이 앞섰다. 선생님, 혹은 엄마, 혹은 아빠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지. 내가 원하는 바는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의 만족을 채우는 게 나 자신보다 중요한 목표였으니까.


그러나 그건 옳지 않다고 선생님이 분명하게 짚어주셨다. 나를 우선순위로 두고,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라고. 내가 원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라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 나 외의 타인이 원하는 바는 신경 쓰지 말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살펴보라고.


나는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나를 나로서 바라보는 것, 내 마음을 챙기는 것을 아직도 연습하는 중이다. 이렇게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정서적 상처와 트라우마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완전히 잊히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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