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
선생님은 여전히 '본인이 가라고 해서'가 이유인지 물어보셨다. 나는 그 이유도 여전히 있지만, '계속 이런 상태로 머무르면 더 이상 안 변하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나요?"
-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변하고 싶은가요?"
- "내가 어려워했던 것들에 좀 덜 압도당하고, 덜 두려워하고, 덜 쫄면 좋겠다, 그런 생각해요."
내가 변하겠다 생각하는 건 어떤 대상을, 어떤 상황을 덜 두려워한다, 덜 쫀다, 이런 방향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수동적 변화를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셨다. 그걸 변화의 목표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맘대로 조절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통제할 수 없는 걸 목표로 둔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그보다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얘기에 굴복하지 않고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 거예요'라고 말한 게 진짜 변한 거 아닌가요? 할 말을 하는 거.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도, 예전처럼 긴장되고 괴롭고 싫었어도, 그 상황에서 '난 내 방식대로 살고 싶어요, 다르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행동한 거. 그게 진짜 변화 같은데요."
- "맞아요. 변했다고 느끼긴 해요. 이걸 더 잘하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그게 진짜 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두려워하는 정도를 내가 조절하긴 아마 어려울 거예요. 약이 어느 정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쫄아서 회사를 휴직해 버릴 것이냐, 쫄았지만 상황을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냐, 이걸 결정하는 거죠. 이 부분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 "생각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냥 좀 무서워요... 뭘 하러 가고 싶은지는 모르겠어요. '가라고 하셔서'가 제일 커요. 근데 이번에 그런 생각은 했어요. '말을 안 들으면 버려질 것 같다'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안 것 같아요. 엄마와 남편이 통화를 했는데, '마음이가 나를 미워해도 나는 마음이가 보고 싶다' 말씀하셨다고 들었거든요. '내가 말을 안 듣는데도 엄마는 나를 놓지 않는구나?'를 알았어요. 그건 좀 새로운 경험이었거든요. 비슷하게 선생님도 날 버리진 않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제 누굴 만족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아요. 근데 가고 싶은 이유? 그건 좀 계속 못 찾고 있어요."
"가고 싶은 이유에 '변하고 싶다'가 이유가 될 수는 없나요?"
- "변하고 싶어서 가보자?"
"변화의 목표가 '쫄아도 내가 대응하기, 새로운 행동 해보기'가 된다면, '변하기 위해서' 회사에 다녀볼 수 있는 거죠. 가봐야 새로운 행동을 해볼 테니까요. 가서 내가 변했나 안 변했나 시험해 보는 게 아니라, '변하러' 가는 거죠."
- "...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자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변하러'는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있겠어요. 왜냐면 그렇게 해본 적이 없잖아요. 기껏 최근에 어머니 아버지께 한 번 반기를 들어본 건데, 당연히 자신이 없죠. 근데 자신이 있으니까 회사에 간다가 아니라, '변하려고' 가는 거죠. 자신이 있고 없고 보다는, 내가 변하려고 하느냐 안 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 "'변하러' 간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조금 재밌을 것 같아요. 근데... 좀 무서워요."
"맞아요. 무서워요. 안 살아봤던 방식이니까. 새로운 거 무섭죠. 흥분되고 기대되고 재밌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동시에 무섭기도 하고요."
...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힘들어했던 순간들, 내가 무서워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과연 지금의 나를 정말로 위협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니, 예전의 나처럼 격하게 휘둘리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정도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변하기 위해,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돌아간다면? 그건 내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대단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지도 모른다.
'변하러' 간다는 말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설렘이 피어올랐다. 어려움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다르게 행동할 나를 그려보니, 벌써부터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부서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저 이번에 돌아갈게요. 복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