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알아차린 순간
8월 초, 부모님과의 불화를 겪었다. 과거형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통해 현재의 문제부터 아주 어릴 적 문제까지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왜 힘들고 아팠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회복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겪어온 경험과 감정을 전부 글로 적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쓰지 않았고, 그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옮겼다. 진료를 받고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것들을 모두 기록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에는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부모님과 나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다. 물론 좋았던 순간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나는 괜찮은 척해야'만' 했던 순간들이 꽤나 많았다. 아주 어릴 적, 자라면서, 성인이 되고, 결혼하면서까지. 마냥 좋지는 않았다. 어떻게 사람 사이에 마냥 좋기만 한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당연히 좋은 마음과 싫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런데 나는 싫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싫은 마음을 표현할 줄을 몰랐다. 해본 적이 없어서. 그동안 내내 억압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면 내게 큰 화가 미칠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됐다.
큰 화를 마주하고 잠시는 멈칫했다. 두렵기도 했다. 과거에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내가 이 상황에 또다시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게 나를 너무 괴롭게 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 불안에 오랫동안 휩싸이면 어떡하지' 많이 염려했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괜찮았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주 오랫동안 괴롭지도 않았고,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하지도 않았다. 나는 전과는 조금 많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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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선생님께서는 내가 이것을 '자각'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하셨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 어떠한 상황에 제압되거나 억눌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나에게 없었으나 생겨난 것들이다. 아주 큰 변화라고 말씀해 주셨다.
주치의 선생님은 모든 상황을 듣고 "김마음 님이 왜 그렇게 내가, 내 마음이 남들에게 이해받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한숨을 내쉬셨다. 그 말이 나에게는 또 한 번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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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서서히 변하겠지만,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과거의 모든 것이 현재를 이룬다. 감춰왔던 서운함이 없었던 마음이 될 수는 없다. 명과 암. 밝고 어두움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모른 척 피해온 것들이 사실은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애써 눌러온 것일 뿐. 눌러온 만큼 그 마음이 더 크게 자라났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다.
갈등은 피할 수 없고, 나에게는 갈등을 헤쳐나갈 힘이 있다. 갈등을 외면할 용기도 있다. 나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두려움은 내가 상상한 것만큼 크지 않다. 절대 나를 집어삼키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안고 살아갈 거다. 그것이 진짜 나를 지키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