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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

억눌린 침묵 위에 웃음을 쌓았다

by 김마음


원래 병원에서의 진료는 계속 됐다. 퇴원하고도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갔다. 그런데 강북삼성병원 외래는 솔직히 가기 싫었다. 약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고, 멀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다. 교수님과 쌓인 시간이 별로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진료실에서 그런 말을 꺼냈더니, 선생님이 물으셨다.


"강북삼성병원 외래는 이번 주 금요일인가요? 가시기로 결정했나요?"


- "잘 모르겠어요. 만약 간다면 그냥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안 괜찮았다고 하면 왠지 또 오라고 하실 것 같아서."


"안 괜찮았고, 안 오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나요?"


- "‘당분간은 여기로 오세요.’ 그 말 듣고, 안 괜찮으면 계속 와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최종 판단은 내가 할 수 있잖아요?"


- "제가요? 끌려가지 않고?"


"네. 그 병원 외래를 가고 안 가고는 김마음 님 선택인데, 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예 안 가는 건 피하는 것처럼도 보여서요."


-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게 어려운데, 그게 안 돼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그게 안 돼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 조금 아프게 들렸다. 여기까지라고 하신 건 지금의 내 상황을 총체적으로 말씀하신걸 테고, 여기까지라고 지칭할 만큼 내가 안 좋은 상태라는 말씀이겠지. 선생님의 그 말은 내 병의 무게를 인식하게 했다.


"나는 아빠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했고, 물론 했는데도 묵살당한 것도 있지만 격렬하게 저항하지 못했잖아요. 피아노도, 노래도, 공부도, 대학도. 그러니까 아빠는 '너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알았다.'라고 하신 거죠. 오늘날의 내가 된 데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게 영향이 꽤 컸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건 뭐지.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뭘까.


나는 어떤 말을 함에 있어서 종종, 아니 자주 나보다 남을 더 중요한 고려대상으로 삼곤 했다.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보다 저 사람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수도 없이 따져보고, 반대로 서서 이해해 보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보며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다 삼켜진 말들은 나의 웃음 뒤에 가려졌고, 나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부드러운, 나의 불만을 인식하지 못할 수준의 포장으로 둥글둥글 싸인 말들만 선별해서 전달했다. 억눌린 침묵을 웃음으로 감쌌다. 침묵 위에 웃음을 쌓았다.


종종 나의 취향을 드러내야 할 때면 어떻게 해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뇌했다. 흔하게 약속 장소를 정할 때에도, 식사 메뉴를 고를 때에도, 하다 못해 내가 추운지 더운지를 말하고 싶을 때에도 나에게는 깊은 고민이 백 개씩 필요했다. 오랜 시간 억눌린 나의 습관이었다. 나의 마음을 표현했을 때 닥쳤던 공포를 더 이상 마주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입원했던 병원에 외래를 가기 힘들었던 이유도, 가서 내가 교수님을 거절하는 듯한 말을 전하기 어려워서, 내가 내 생각을 표현을 가는 것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호의를 베푸셨는데 거절해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는 온갖 걱정이 난무해서였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그저 "저 괜찮았어요."라는 거짓말로 마무리하는 게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끝내는 방법일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았다고 내 속마음만 억누르면 모두 해결될 테니까.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교 동아리 친구의 청첩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들이 있어서 긴장되기도 했고,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나가보기로 결정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복잡한 머릿속 세상에서 빙글빙글 돌지 않고 현실에 붙어살기 위한 노력으로. 그렇게 호기롭게 나섰지만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모임에 가는 길, 필요시 불안 약을 복용했다.


드디어 사람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며 대화를 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다 보니, 나의 휴직 이야기로도 주제가 넘어오게 됐다. 나는 왜 휴직을 했는지 솔직하게 설명을 했다. 예상보다 무거운 나의 스토리에 잠시 정적이 있기도 했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며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왜 축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나 스스로를 원망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좋은 자리에서 안 좋은 이야기는 조금 참을 수도 있었잖아. 안일했다. 물어본다고 마음을 너무 쉽게 열어버린 내 모습이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보다. 우리는 이전에 같은 아픔을 공유한 적이 있었기에, 한동안 서로에게 관심을 더 가지자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떠들었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며 각자의 삶에 찌들어 서로를 돌아볼 여유를 잃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좋은 일들 사이에 찬물을 끼얹는듯한 나의 스토리도 존재했던 거다. 또 괜찮은 척 거짓으로 연기할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이 사람들에게는 나의 가식적인 웃음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 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나의 투병기와 입원기, 돌아온 일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금 후련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장을 열어준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고마웠고, 내가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떠들도록 배려해 준 이들에게 감사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해받을 사람이 한 무리 더 생겼고, 위로해 주는 이가 늘었다.


헤어지기 전 친구가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이가 한 명 더 있다는 것, 코끝이 찡해지는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건, 웃음 뒤로 삼켜진 말들을 다시 입 밖으로 불러내오는 것. 눈치 보지 않고 그 순간 나의 생각을,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는 것. 나로 인해 일어날 일들을 조금은 덜 걱정하는 것. 세상엔 순두부처럼 부서지는 나도 있지만, 호두처럼 단단한 다른 이들도 있으니까.


조금씩 이런 영역을 늘려가는 것. 우리 치료의 목표라고 언젠가 선생님이 말씀하셨었다. 나는 이날 치료의 영역을 조금 넓혔다. 늘어난 영역만큼 보람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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