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교수님 외래 진료가 끝나고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신이 났다. "내가 말을 했어!" 하며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몇 가지 약이 잘 맞지 않았고, 잠도 잘 못 자긴 했는데,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조절해보려 한다고, 준비한대로 씩씩하게 말했다. 중간중간 잠시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비교적 차분히 내 의사를 전달했고 교수님은 오케이 하셨다. 원하는 대로, 편한 대로 하시라고. 다행히 아무도 마음 다치지 않고 끝난 것 같았다.
얼마 후 진료실에 가서 이 성공 경험을 이야기했다.
"해보니까 신났죠? 걱정과는 다르게 혼나지도 않았고요. 이런 경험들이 계속 필요하겠어요. 용기를 잘 내셨네요."
조심스레 내딛은 나의 발걸음에 선생님은 칭찬을 건넸다. 하지만 이날 자살 사고 검사에서 나는 '삶에 맞설 용기를 가지고 있다'에 여전히 '아니다'로 체크했다. 작은 결심으로 부딪혀 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서 진짜 맞서야 할 현실은 회사인데, 나는 거기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회사는 여전히 내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 같았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각이 번지다 보면 자꾸만 다시 입원을 하고 싶어졌다. 입원했을 때의 그 평화로웠던 시간이 그리웠다. 현실을 잊고 잠시 멈출 수 있는 곳. 나를 지켜주는 따뜻한 곳. 사람들이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나는 '병동 밖은 위험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병실 침대 머리맡으로 스며들던 햇살이 기억난다. 가끔은 그 햇살마저도 아픈 날이 있었지만, 많은 날들은 나에게 위로였다. 세상의 온갖 자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가 나에게는 병동이었다.
- "병동 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도 내가 부딪혀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 "회사는 그냥 무서워요."
"뭐가 무서워요?"
- "내가 못하는 거, 자신 없는 거, 그걸 계속 마주해야 되는 거. 해도 안 될 것 같고, 내가 쓸모없어 보이고, 그냥 회사만 가면 작아져요. 그래서 너무 무섭고 싫어요."
"회사에 가면 내가 쓸모없어 보인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그냥 내 생각이죠.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본적으로 기죽어 계신 것 같아요. 좀 부딪혀 봐야겠어요. 남편분 말씀대로 너무 힘들면 안 할 수도 있어요. 근데 해볼 수도 있죠. 해 보고 정 안되면 그때 그만둘 수도 있고요. 이직을 할 수도 있고요. 쉬다가 새로운 회사를 갈 수도 있는 거고요."
- "선생님은 계속 제가 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네, 저는 가봤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생님의 말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2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상담 선생님도, 주치의 선생님도, 남편도, 모두가 나의 복귀를 바라는 것 같은데 나만 아직 모르겠는 거다. 그런데 '아니에요,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 욕조 속으로.
선생님은 왜 거절할 수 없는지 물으셨고, 나는 선생님의 말이 꼭 아빠의 말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거역할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강압처럼 느껴졌다고. 그래서 '너 가야 돼, 너 가는 게 맞아' 하시는 말씀에 나는 '싫어요'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틀린 것 같고, 혼날 것 같아서.
선생님은 갔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말이 권유지 의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강북삼성병원 교수님이 이리로 오시라 하는 것도 권유지 의무가 아니듯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의 자유고, 나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용기를 내서 회사를 갈 수도 있고, 용기를 내서 가라는 본인에게 '싫어, 안 갈 거야'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난 지금도 여전히 거역하면 안 되는 것 같나요?"
- "모르겠어요. 이제 거절할 수 있어, 이렇게 느껴야 돼요?"
"어떻게 한번 가지고 그렇게 느끼겠어요. 매번 용기가 필요하죠."
- "아직은 모르겠어요."
"매번 용기가 필요해요. 근데 할수록 용기가 더 잘 나요. 가는 것도 가지 않는 것도 김마음 님의 선택이에요."
- "선생님도 강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제가 어떻게 강요할 수 있겠어요, 무슨 권리로."
...
'강요할 수 없다.'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 이 짧은 진실을 나는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을지도 모른다. 강요와 억압에 늘 익숙했기 때문에, 뭐가 이상한 건지 의식조차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권위 있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 최초로 겪은 남성인 아빠가 나에게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남성들에게 그 공포심을 비슷하게 느꼈다. 생각해 보면 꼭 남성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 학교 선생님들, 교수님들, 시부모님, 지휘자님, 직장 상사들. 일상생활 전반에서 감정 전이가 수도 없이 일어났다.
살면서 이렇게 느낀 순간들이 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진료실에서도, 회사에서도, 시부모님께도, 부모님께도, 하다 못해 길에서 울리는 작은 경적 소리에도 나는 혼난다고 느꼈다. '아 내가 또 뭔가 잘못했구나' 무서웠다. 내 마음 속에는 나를 꾸짖는 아빠가 몇 명이나 더 있었던 걸까. 한 편 한 편 되짚어 봐도 가늠이 안 됐다.
이토록 오래 굳어진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부단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겠지. 열심히 반항해 봐야겠지. 할수록 용기가 더 잘 난다고 하셨으니까. 그동안 애써 눌러왔던 거절의 말들을 당당히 입 밖으로 꺼내봐야겠다.
나에게 회복은, 선택과 거절의 연습이었다. 아주 작은 거절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거절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내일의 용기를 얻기 위해, 나는 오늘 또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