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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Jan 27. 2023

미움보다 사랑을 택한 이유


 내게는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들이 몇 있다. 어딜 가나 비상연락망에 늘 먼저 적히는 친구들, 내게 변고가 있을 때 유일하게 내 짐을 챙기고 내 뒤를 정리할 수 있는 친구들. 나는 혼자 사는 집을 여러 번 계약하면서 단 한 번도 엄마나 아빠의 연락처를 적은 적이 없다. 내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짊어진 슬픔을 엄마 아빠가 끝까지 발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적어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저 심해에 있는 마음까지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 뒤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보험에 가입을 하려고 보험사에 찾아간 적이 있다. 아빠와 살던 땐데,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서운 매일이 반복되자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더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맨 몸으로 이혼한 엄마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었다. 설계사가 젊은 아가씨가 생명보험이 왜 필요하냐고 묻기에 미래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은 꽁꽁 숨겨두고 미리미리 미래를 준비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옵션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적당한 걸 골라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내 정보를 적고, 보험 수혜자를 쓰는 란에 엄마 이름을 썼다.







 "엄마, 어디 숨겨놓은 선산 같은 거 없어? 그런 거 있으면 팔아서 시골 가서 살자!"


 내 단골멘트다.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엄마에게 매번 나는 어디 숨겨놓은 재산이 있느냐고 장난을 치곤 하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정말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고 툴툴거리며 웃는다. 그날도 똑같은 장난을 쳤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좀 달랐다.


 "선산이 어딨어. 그래도 엄마 죽으면 몇천만원은 나오려나…. 그거 나오면 너 다 해."

 "필요 없어. 쓸데없는 생명보험 같은 거 들지 말고 엄마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놀러 다니고 싶은데 다녀. 엄마 목숨값이 억만금인들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하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울상이 되었다. 엄마가 없는데 큰돈이 들어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거 십원한장 필요 없으니까 그냥 아프지만 말고 오래오래 살아. 나중에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오면 그때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맡겨두고, 엄마는 지금 재밌고 즐겁게만 살아."

 "그래도 너한테 짐은 되지 말아야지."






 짐이 되지 말아야지. 짐이, 되지, 말아야지. 엄마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나는 결국 다 쓴 서류 반으로 접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너무 맑은 날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한가득 걸어 다니는 거리가 활기 넘치는 게 너무 슬펐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사실은 생명보험 가입하러 왔거든. 이미 불행은 한도치인 엄마한테 자식 앞세우고 장례비용까지 치르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서류도 못 내고 나왔어 그냥."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영은 ‘잘했어.’ 하고 말했다.


 "네가 죽으면 너네 어머니만 슬프겠어? 너 사는데 합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나밖에 없잖아. 나는 어떡하고."


 영의 목소리에 물기가 그득했다. 나는 영을 좋아한다. 그녀는 크게 높낮이가 없는 사람인데, 기쁜 일에도, 슬픈일에도 크게 호들갑을 떠는 나와 달리 늘 침착하다. 그래서 늘 과하게 반응하는 나를 재밌게 보는 친구다. 이십 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면서도 나는 영의 감정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내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숨을 뱉을 때, 나는 더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행한 유년기, 지독했던 부모님의 이혼을 지나, 가까운 이의 죽음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아등바등 살아내는 나를 보는 친구들은 늘 내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나라면 절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어쩐지 슬펐다. 내가 진짜 독하기는 해, 내가 진짜 다이아몬드 멘탈이긴 해, 하고 털털하게 웃으면서도 남들이라면 겪고 싶지도 않을 일을 내가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까지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미움이었다.

 나는 아빠를 미워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내게 이 지옥을 만들어준 아빠를 증오하고 또 싫어하면서, 내가 원한적 없는 이 불행을 어떻게든 되돌려줄 것이라고, 내가 느낀 괴로움도 알 수 없도록 사라져 영문도 모른 채 평생 잊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겠노라고, 억울한 순간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생을 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미워하는데 얼마나 큰 힘을 쏟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대신 미워하고 원망하기로 작정한 나는 그냥 활활 타버려 재만 남아버렸다. 그래서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스스로가 처음으로 못났다는 생각을 했다.


 늘 내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와, 나이가 더 들면 꼭 딸 주변에 살고 싶어 하는 아빠. 내가 없는 미래라는 건 둘에게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사라지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데 갈라선 엄마와 아빠의 미래에는 딸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삼십 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엄마를 몇 번이나 볼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다. 엄마는 2년에 한 번씩 보는 게 대부분이니까 열다섯 번. 엄마랑 함께 살 때의 보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엄마를 볼 수 있는 횟수가 스무 번도 채 되지 않을 만큼 남았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살고 있었지만 매일이 살얼음판이었고, 아빠를 떠나 집을 나온다면 아빠를 보게 되는 날도 엄마를 볼 수 있는 만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미움으로만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핍된 부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책임졌고, 어쨌거나 그건 내가 갚아야 할 빚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워하는 동안 속절없이 흐른 시간을 뒤로하고 앞을 내다보니 어쩌면 내게 시간이나 기회가 충분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삼십 년이라고 해도 몇 번 보지 못하고 영영 이별을 해야 한다면 남은 시간만큼은 최대한 잘 지내보기로, 그렇게 다짐했다. 미워하는데도 이렇게나 죽을힘을 써야하는거라면 그 힘으로 사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영원히 이별하고 나면 그리워하게 될 것을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것으로 힘을 쓰면 내가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용서, 이해, 그런 거창한 단어들을 붙이기에도 부끄러운 것이 나는, 사실, 내가 편해지고 싶어서, 내가 숨을 쉬고 싶어서 엄마와 아빠를 그저 사랑하기로 했다.


 아빠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엄마도 내가 너무 가까워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것이 둘에게는 최선이었고 그 둘 사이에서 난 나 역시 운명처럼 그렇게 여기까지 흘러온 거라고. 나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은 아빠도 사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걸 인정한다는 것이 어쩌면 지금까지의 아빠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일이라서, 미안한 마음이 있더라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 엄마 아빠의 변명들을 내 멋대로 만들어내며 나는 늪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기



 몇 년 동안 폰 잠금화면에 있던 문구를 지웠다. 나는 살아내지 않고 그냥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아빠와 따로 살게 되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멀리 살아도 여전히 아빠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는 내게, 가끔은 화를 내고 모진 소리를 하는 아빠에게 어떻게 그렇게 매일 전화를 해 안부를 물을 수가 있냐고, 화를 내고 멋대로 끊어도 어떻게 또 아무렇지 않게 다음날 전화를 할 수 있느냐고.


 "아빠가 소리 지르고 욕하면 그냥 전화기 어깨에 얹어놓지. 울 아빠 울림통이 좀 커? 어깨에 놔둬도 다 들려. 그러다 끊어버리면 말고, 조용해지면 그냥 알았다고 하지 뭐."

 "너 멘탈 괜찮아? 가슴이 벌렁거릴 거 같은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거지. 길어봐야 삼십 년이잖아, 영원도 아닌데 뭐."

 "보살이네 보살."

 "보살은 무슨. 가끔은 전화 끊어지면 나도 놀라서 울기도 하고 진짜 짜증 날 땐 끊고 베개에 얼굴 파묻고 소리도 질러."

 "그래, 그건 그렇다 쳐도 그렇게 하시는데 다음날 또 전화를 해?"

 "처음에야 때려죽여도 하기 싫었지. 나한테 함부로 하는데 또 전화하고 싶었겠어? 근데 마음에 새기는 거지. ‘길어봐야 삼십년, 암만 성질내봐라 내가 사랑하고 말지.’ 근데 희한한 게 뭔지 알아? 내가 또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아빠 밥은 먹었냐고 묻고 이야기하잖아? 그럼 아빠도 다시 차분해져서 이야기한다? 그럼 생각하지, 어제 성질냈던 거 좀 미안했구나."

 "진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쳤다고 해야 할지…. 네가 편하면 됐지."


 나는 정말로 편안해졌다. 아빠가 어떤 식으로 나와도 내 태도는 한결같았다. 나에겐 아빠랑 보낼 시간이 한정적이다.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좋아하자. 아빠의 안부를 묻고, 끼니를 챙기고, 가끔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빠의 혈압을 걱정하면서. 내가 늘 평온한 태도라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대부분은 어깨너머로 넘겨버릴 정도가 되었고, 아빠도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인고의 시간이 헛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대단히 관대하고, 대단히 커다란 마음이 아니다. 내가 살고 싶어서, 증오에 매몰되어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편해지고 싶어 미움보다 사랑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최우선으로 두고 가장 이기적인 방법을 택해 아빠를 사랑하기로 했다.



 길어봐야 삼십년, 암만 성질내봐라. 내가 사랑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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