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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과유불급

간사이 -02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주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가 가장 많이들 방문하는 여행지인 듯싶다. 일본 문화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교토까지도 다녀오곤 한다. 그러나 이름도 조금 생소하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탓인지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도시 중 하나가 고베다. 간사이 지방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꼭 고베에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예로부터 항만 도시로 유명했던 전적을 뽐내기라도 하듯, 포트 타워와 하버 랜드가 아름다운 자태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인 마야산 야경은 아직도 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경이로운 풍광을 지니고 있다. 

▲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고베시.

고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베규…. 이걸 먹기 위해 다시 일주일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내 중심부에는 여러 레스토랑이 호객행위마저 한다. 인생 첫 고베규. 고르고 골라 들어간 맛집에서 나는 그날 천상의 육미와 조우할 수 있었다. ‘고기’라는 걸 과연 이렇게까지 맛있게 구워낼 수 있단 말인가? 히말라야 소금이든 최고급 와사비든 다른 식재료를 여기에 더한다는 것 자체가 고베규에 대한 실례 같았다. 


이 순간만큼은 에른스트 엥겔도 용서해 줄 것이다. 고기를 씹다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향후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진 누군가 지금껏 맛본 진미 중 최고를 꼽으라 한다면 지체 없이 고베규라 답할 것이다.

▲ 천상의 육미, 고베규.


 히로시마에서 시작했던 프리허그를 고베에서도 하기로 했다. 처음 할 때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입이 바짝 마르면서 온 근육이 뭉치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다가와 줄까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도 많은 시민이 따듯하게 안아 주셨다. 


한 아이어머니는 아이에게 나를 안고 오라고 손짓했다. 귀여운 아가가 쪼르르 달려와 내 품에 꼬옥 안겼다. 팻말에 쓰인 ‘행복과 평화’가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엔 더 많이 피어있길.

연예인 홍석천 씨도 만났다. 마침 근방을 관광하시던 모양이었다. 한 시간 남짓 프리허그를 마치고 녹초가 된 채 숙소에 돌아오니(요스케 형님과 재회한 그곳) 고베에서의 임무를 완수한 기분이었다. 


▲ 고베에서의 프리허그.


고베에 너무 매료돼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렀기에 어물쩍거릴 여유는 없었다. 다시 한번 가방을 메고 이번엔 오사카를 향해 발을 뗐다. 고베에서 오사카까지는 30㎞가 조금 넘었다. 보통 7시간을 내리 걸으면 20㎞ 정도를 이동할 수 있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20㎞가 내 최대 이동 거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30㎞는 애매했다. 


도중에 멈추자니 아쉽고, 그렇다고 전부 걸으면 분명히 무리일 터이다. 종일 걷고 온천에 들러 몸을 씻은 뒤, 가까운 공원에 텐트를 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거대한 한신고속도로가 지붕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그 위론 육중한 트럭과 승용차들이 제각기 바삐 내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보도는 잘 닦여 있었다. 도시와 도시 간의 도로는 비교적 걷기 수월하다. 고된 건 마찬가지지만…. 


근처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초등학생들이 하교할 시간인가. 수업을 마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아이들만큼 근심 걱정 없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린다. 몇몇은 이가 한두 개 없다. 나도 저렇게 천진난만했던 때가 있었지…. 


과거 회상에 잠긴 채 걷고 있자니 척 봐도 개구쟁이 같아 보이는 친구가 내 앞에 슉 나타났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 필시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을 것이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자 또 쌩 도망친다. 그러더니 


“형 여기서 뭐해?”


하고 무리 중에 넉살 좋아 보이는 녀석이 말을 건다. 통통한 볼살에 앳된 눈매. 잔털 하나 없이 뽀송뽀송한 피부의 꼬마들을 보니 행복감이 뿜어져 나왔다. 자기들 집보다 멀리까지 왔을 텐데도, 그들은 날 따라오며 계속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은 또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아이 하나가 나에게 코끼리 모양 과자를 건넸다. 밥 안 먹은 걸 또 어떻게 알구, 기특한 녀석. 한명 한명 안아 주고 싶었지만 땀에 절어 있었기에 그만두었다. 그들은 ‘형 화이팅!’ 하고 소리치며 쭉 걸어가는 나를 응원해주었다. 

▲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걷는 도중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과 같이 찍은 사진은 지금도 볼 때마다 웃음을 준다. 어린 친구들은 볼 때마다 어떤 동기보다도 강렬하게 나를 이끌어 준다. 그들은 미래이자, 희망이다. 비록 나약한 인류가 필연적인 한계에 사로잡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배턴을 건네받을 다음 세대가 있기에 가능성이라는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항구적인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 교차했다가 다시금 풀어질 일시적인 매듭이지만, 우리 전에 살았던 선현들과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에 의해서 조밀한 직물의 선명한 일부가 되는 것이다. 자기 손으론 글귀 하나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영원히 인류 곁에 살게 한 플라톤이나, 난세에 나와 아낌없이 능력을 발휘한 사마휘의 제자 제갈량처럼, 선대가 이루지 못한 꿈과 과업은 후세에 이르러 달성의 여지를 비춘다. 책장 위에 먼지를 품고 잠들어있던 쥘 베른의 소설이 호기심 많은 아이를 후일 위대한 잠수함 개발자로 만들지도 모를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삶의 의미’를 환기해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좋다. 




고베와 오사카 간의 중간지점인 니시노미야라는 곳까지 왔다. 쉬지 않고 걸었기에 슬슬 저녁도 먹고 몸도 씻은 후 텐트를 펼칠 장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적당한 스파 랜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널찍하고 시설도 쾌적했다. 가방이 로커 안에 들어갈 리가 없었기에, 카운터에 짐을 맡아줄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친절한 직원이 흔쾌히 짐을 보관해주셨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살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발을 보니 물집이 이곳저곳에 나 있었다. 온천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나오는 길. 짐을 찾고 나가려는데 한 여직원이 수줍게 달려와 기념품 매대에서 팔고 있는 수건을 내게 건넸다. 여행하는 게 너무 대단하다면서, 별거 아니지만 받아달라고 했다. 초라한 행색으로 와서 짐 때문에 폐까지 끼쳤는데 이렇게 깜짝 선물까지 주다니. 찡했다. 


오늘 온종일 걸으면서 삿포로까지는 역시 무리인가…. 했던 생각이 쏙 들어갔다. 이렇게 응원을 받는데 반드시 끝까지 해내야지! 다시금 전의를 다잡고 밖으로 나왔는데 웬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올 기색은 없었는데 말이다. 난감했다. 빗발 아래 텐트를 치는 건 무리다. 특히나 여기는 중심가로부터 떨어진 주택가라서 근처에 마땅한 숙소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강행돌파 하는 수밖에 없다. 빗길을 뚫고 한신고속도로 옆 인도를 따라 행군을 재개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한 시. 오늘 하루만 26㎞를 걸었다. 그제야 비가 멈춰주었다. 얼른 공원을 찾아 텐트를 치고 지친 몸을 모래밭 위에 뉘었다. 다음 날 아침도 쭉 이어지는 길과 다리를 넘어 석양이 드리울 즈음에야 드디어 오사카에 도착했다.

 

▲ 무리했던 탓인지 몸살이 났다. ㅠㅠ

그래도 또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한 뒤, 긴장이 풀렸을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역시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몸살감기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저번에 잠시 감기 기운이 돌았던 것과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숙소에 도착해 완전히 뻗어버렸다. 약 기운 때문에 어지러웠다. 외국에서 혼자 아프면 세상에서 제일 서럽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과유불급. 아무리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한들 무리하게 되면 여유롭게 온 것만 못하다. 정작 오사카에 도착해놓고 회복에 집중하느라 도시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돈, 명예, 권력 등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린 현대인들은 삶에 막이 드리울 즈음 영혼의 감기에 걸리고 만다. 휘황찬란한 아방궁이 아무리 눈 앞에 펼쳐지게 된 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성공은 모래 위에 지은 성이 되어 버린다. 후술하겠지만, 나는 여행을 통해 행복의 요건 중 하나는 과함과 모자람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또 하나, 정도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어디까지가 나의 적당한 최선인지 아는 것은 인생이란 장기전에 참으로 필요하다. 과로로 목숨을 거두신 분들의 뉴스가 나오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도중에 빛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저울은 기울게 하기보다 중간을 맞추는 게 훨씬 어렵다. 중용의 미덕을 지켜낼 때야 비로소 우리는 지복(至福)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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