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컨벤시아
그러니까 내게는 세 장의 갈라콘서트 티켓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서울과 부모님이 계시는 청주, 그리고 야외공연장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던 전주. 인천 갈라콘서트는 계획에도 없었고, 티켓 역시 원래 수중에 없었다. 서울 갈라콘을 보고 난 후 어느 나른한 평일 오후였다. 팬텀싱어 결승을 함께 본 사과님과 가톡을 하던 중 서울 갈라콘 이후 공연을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대전 갈라콘서트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콘서트 일정은 인천 갈라콘이라고 하며 들떠있는 사과님을 보면서, 어쩐지 나의 다음 콘서트인 청주 갈라콘까지의 텀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홀린 듯이 인터파크에 들어가서 자리를 살펴보는데 당연히 매진일 거라고 생각했던 토요일 콘서트 표가 풀려 있었다. 약간 사이드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꽤나 앞자리 표가 있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마무리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사과님... 저도 인천 갈라콘 가게 되었어요.'라고 얘기를 했다. 나중에 사과님에게 들어보니 와글와글 카톡을 하다가 갑자기 말이 없어진 내가 한참 있다가 저렇게 이야기를 해서 빵 터졌다고.
인천 갈라콘은 그렇게 엉겁결(?)에 가게 되었다. 인천 송도까지 거리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지도 앱에서 길 찾기를 해보니 선바위역에서 M6405 버스를 타면 수차례 환승하지 않고도 갈 수 있다고 해서 선바위역으로 향했다. 선바위역에 도착함과 동시에 버스 하나를 간발의 차로 지나 보냈는데, 날이 너무 더운지라 지하철역 안에서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혹여나 버스를 놓칠까 버스 정류장 앞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역 밖으로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자리를 뜨면 버스를 못 탈 것 같다는 위기감에 나 역시 줄에 합류했다. 뙤약볕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쭐쭐 흘렀다. 이 와중에 지도 앱을 한참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에 도착할 버스의 좌석이 0석으로 뜨는 것이었다. '오류가 난 건가... 왜 좌석이 0석으로 뜨는 거지... 그나저나 내 앞에 줄이 긴데 나까지 탈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20여 분을 기다렸다. 어느덧 가시거리 안에 들어온 M6405 버스는 지도 앱이 오류가 난 것이길 바라는 내 마음이 무색하게도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고 쌩 지나가버렸다. 지나가는 버스 안에는 출입문까지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릴까 싶었는데, M6405 버스의 루트를 살펴보니 사람이 많은 강남-교대-양재를 지나오는 버스라서 또 0석으로 무정차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지도 앱이 알려주는 다른 루트를 검색해 보니 공연 시간까지 맞출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공연에 꼭 가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약간의 영웅심이 합쳐져서 '여기 길게 늘어선 줄의 90% 정도는 송도 컨벤시아에 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갈 수 있는 IM을 불러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앱을 깔고, 핸드폰 인증을 하고, 드디어 호출을 하려고 하는데 인천은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 실패. 그렇다면 카카오 택시로 선회! 다행히 카카오 택시는 가능할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하고 분주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카카오 택시를 알아보는 내 뒤로 서 계시던 분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뒤로 서 있는 세 분에게 내가 카카오 택시를 알아봤고, 대략 어느 정도의 금액으로 송도 컨벤시아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함께 합승하실 것인지 여쭤보니 모두가 동의하셨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택시 파티원 앞에 구원의 카카오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를 부른 나는 기사님 옆자리에, 내 뒤로 서 계시던 세 분은 뒷자리에 탑승했다.
택시로 송도 컨벤시아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여정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들... 송도 컨벤시아에 공연 보러 가시는 거죠...?"라고 조심스레 여쭤보니 두 분(이하 A님, B님)은 수줍게 맞다고 하셨고, 다른 한 분(C님)은 댁에 가신다고 하셨다. C님은 유명한 가수들이 나오는 거냐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송도 컨벤시아로 가기 위해 길게 버스줄을 서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A님, B님, 그리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데...'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C님에게 팬텀싱어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이번에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사실 초반 택시 분위기는 데면데면 어색 어색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정말 쌩판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경연 프로그램이라 각자 응원하는 팀이 어떤 팀인지 알 수 없어 괜스레 서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혹시 최애 팀이 어디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저는 크레즐이에요."라고 얘기를 꺼냈다. A님은 "저는 리베란테요. 김지훈 배우가 최애인데, 원래도 뮤덕이라서 임규형 배우도 정말 좋게 봤어요!"라고 활기차게, B님은 "저는 포르테나요. 최애는 코알라(테너 서영택의 별명)..."라고 수줍게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이내 택시 안 네 사람은 모두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뒤로 3명을 현장에서 섭외해서 바로 택시를 탄 거였는데, 각 팀의 팬 한 명씩과 팬텀싱어를 아예 모르는 한 명까지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있나?! 이렇게 함께 택시를 탄 게 정말 신기하다며 화기애애 웃다 보니 어느새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 도착까지 이렇게나 한 바닥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무사히 송도 컨벤시아에 도착했고, 사과님과도 잘 만났다. 각자 예매를 한 탓에 공연장 안에서는 잠시 헤어져서 각자 공연을 즐겼다. 우연히 주웠던 자리는 6열이었는데 사이드 블럭이기는 했지만 무대와의 거리가 꽤나 가까워서 공연 시작 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공연 시작 전 12명의 싱어들이 외치는 우렁찬 파이팅 콜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공연은 지난 서울콘과 동일한 레퍼토리라서 어떤 노래를 하게 되는지 깜짝 선물처럼 알게 되었던 처음 그 때의 그 감흥은 없었지만, 역시나 모든 무대가 짜릿하게 좋았다. 그중에서도 Kill this Love 무대에서 임규형 배우가 자켓을 벗어버리며 폭군규형 모드를 해버리는 바람에 정신줄을 함께 놓아버렸다는... 옆자리 포르테나를 응원하는 언니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시며 나를 진정시켜 주셨다. 이 글... 못 보시겠지만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처음으로 콘서트장에서 혼절하는 분들의 심정을 좀 이해할 뻔했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사과님과 다시 만났다. 나도 사과님도 대흥분 상태였다! 크사맥! 공연이 18시에 시작했고 2시간 30분 정도 공연이 진행되었으니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밤 9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인천에서 다시 집까지 갈 길이 다소 아득했지만 그냥 집에 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같은 마음이었던 사과님과 바로 근처 맥주집으로 향했다. 둘 다 서로의 최애가 너무 노래를 잘한다, 너무 잘생겼다, 너무 좋다 정도의 언어만 구사할 정도로 흥분해 있다가, 이성을 조금 챙긴 후에는 서로가 공연을 보고 난 후 가지고 있는 조각들을 함께 맞춰갔다. '맞아, 그 부분 좋았지.' '앗, 나는 그 부분 못 본 것 같은데 그랬구나' 하면서 공연을 복기했다. 덕질 얘기를 한참 풀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각자가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11시 30분에 가까워졌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며 지도 앱으로 길 찾기를 해보니 M버스 막차가 아슬했다. 사과님과 헐레벌떡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서 다행히 막차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막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환승할 교통편을 보니, 지도 앱에서 원래대로 알려준 루트를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서 마지막까지 우당탕탕 그렇지만 무사히 대중교통수단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가 새벽 1시였나...
정말 인천콘은 뭔가에 홀린 듯 스르륵 예매하고, 시트콤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택시 합승해서 가고, 덕메와 신나게 뒤풀이 하다가 막차 겨우겨우 타고 돌아오는 등 에피소드가 너무 많았다. 정말 변수가 난무하는 시트콤 같은 하루라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에너지가 솟는 느낌이었다. 역시... 좋아하는 마음의 힘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아니... 이날을 기점으로 덕질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이날 이후로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에피소드로 남는 거지!'하고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