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석우문화체육관
1화 초반에 언급했듯 <팬텀싱어(이하 팬싱)>는 엄마와 동생이 먼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둘은 시즌 1부터 본방사수를 해오며 팬싱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엄마와 동생이 팬싱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재방송이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시즌 2까지는 팬싱을 보지 않았다. 대신 하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은 탓인지, 시즌 2 방송이 끝나고 진행된 갈라콘서트 중 대전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었다. 나는 가지 않고 엄마와 동생만 콘서트에 보냈다. 2017년 연말쯤이니 내가 인턴을 할 때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기도 했을뿐더러, 방송을 보지 않아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콘서트에 가기에는 조금 내키지 않았기 때문. (과거의 나야 왜 그랬니...) 갈라콘서트에 다녀오고 나서 플로어 의자 때문에 허리가 너무 아팠지만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며 황홀한 표정을 짓던 엄마를 보며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대체 팬싱이 뭐길래 엄마랑 동생이 이렇게나 좋아하는 걸까.' 싶어서 시즌 3부터 본방사수를 하게 되었다. 엄마와 동생만이 나누던 대화에 나도 껴서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 왜 나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영업하지 않았냐는 이상한 투정을 부리며 엄마와 동생이 추천한 지난 시즌들의 레전드 무대들을 하나둘 챙겨봤다. 그리고 시즌 4,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나의 제로픽 임규형 배우가 등장함으로써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엄마와 동생에게 먼저 연락해서 '이번 주 방송은 봤어?', '아니, 그 무대 봤어? 진짜 좋지 않아?!', '근데 규형 배우 너무 잘하지ㅠㅠ!'라고 좋아하는 마음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방송이 끝나고 갈라콘서트 공지가 될 때 부모님이 계신 청주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족들의 의사나 일정을 물어보기도 전에 '청주 콘서트는 가족들이랑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8월 26일, 청주 콘서트 당일. 전날 밤 미리 내려와서 한숨을 푹 자고 일어났다. 공연 시작 시간인 저녁 6시까지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갈라콘서트 생각뿐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내려오지 못하니 그래도 최대한 엄마가 제안하는 일정에 함께 했다. 아침 수영도 다녀오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엄마가 평소 종종 가는 카페에도 함께 갔다. 그간 밀린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갈라콘서트에 대한 설렘이 삐죽 새어 나올 때가 많았다. 처음엔 '안 그래도 지난번에 네가 대전 콘서트 보내줬을 때 정말 좋았는데! 이번에도 얼마나 좋으려나!' 맞장구 쳐주던 엄마도 나중에는 '얘,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라며 나를 놀리듯 이야기했다. 음... 설렘이 좀 많이 흘러넘쳤나보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엄마 차를 타고 청주석우문화체육관에 도착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학창 시절을 청주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체육관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하고 나의 생활반경 안에 있지 않은 동네라 낯설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며 MD부스부터 찾았다. 공연을 내가 보여주는 대신 엄마가 MD부스에서 굿즈를 사주기로 했는데, 서울과 인천 콘서트와는 달리 MD부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내게는 공연이 더 중요하니까 금세 발걸음을 공연장 내부로 돌렸다. 지난번 시즌 2 갈라콘서트 때 플로어에 앉아서 허리가 아팠다는 엄마 말이 떠올라서 자리 예매를 할 때 신경을 좀 썼다. 사실 나는 가까이 갈수록 좋다는 생각을 했지만, 엄마가 2시간 내외의 긴 시간 동안 공연을 편안하게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예매한 것이 2층의 맨 뒤 통로 쪽 좌석이었다. 2층에는 단차가 있어서 시야도 좋았고, 체육관이라 의자가 아주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층 플로어석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우리 뒤에 사람이 없어서 공연 중간중간 엄마가 감동받아 기립할 때에 마음이 아주 편했던 것까지도.
엄마와 종종 뮤지컬이나 연주회 같은 공연은 보러 다녔는데, 콘서트를 함께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 엄마 앞에서는 무뚝뚝한 장녀의 모습을 주로 하고 있는 나라서 지난 서울콘과 인천콘 때처럼 약간 미쳐있는(?) 상태를 보여줄 수 있을지 공연 전에 혼자 내적갈등을 심각하게 했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듯 암전이 되었다. 지난 서울, 인천 콘서트 때와 마찬가지로 12명의 싱어들이 무대에 차례로 올랐다. 그때, 내 귀에 익숙한 익룡 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 아직 소리 안 질렀는데...' 하며 엄청난 하이톤의 환호성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였다. 웃음이 빵 터짐과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엄마와 나는 공연 내내 흥이 나면 흥이 나는 대로 리듬을 타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공연이 끝나고는 슬쩍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멋진 공연을 보여준 싱어들에게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물론 익룡 소리도 함께. 엄마 익룡 옆에서 딸 익룡이 소리를 더하니 무서울 게 없었다. 엄마와 DNA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감각을 유난히 진하게 느낀 하루였다.
여담. 청주 갈라콘서트 티켓팅 할 때, 4연석을 티켓팅했다. 내 자리 하나 확보하는 것도 쫄리는데 4연석이라니... 지방 콘서트여서인지, 시작하자마자 2층을 노리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다행히 티켓팅에는 성공했다. 다만, 가족들의 의사와 일정을 먼저 묻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엄마는 당연히 좋다고 했고, 동생도 일정을 잘 조율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싫다고 했다. 아빠도 이번에 팬싱을 재밌게 봤다는 말에 간과하고 만 것이다. 아빠가 북적이는 장소에, 큰 소리가 나는 장소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 한 장을 부분 취소하며 괜히 혼자 알 수 없는 씁쓸함 혹은 아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