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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May 24. 2024

덕질유랑기의 전조 현상

서울, 방구석 1열(?)

입덕을 받아들인 이후, 임규형 배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규형 배우가 속하게 된 크레즐이라는 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팬텀싱어 4>를 계속해서 본방 사수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구석 1열에서 열렬하게 응원하던 이전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승 1차전과 2차전 방청을 신청하는 용기나 부지런함도 없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결승 1차전과 2차전 본방 방영일에 저녁 일정이 있었다. 결승 1차전인 5월 26일 금요일에는 워크샵을 신청해 두었고, 결승 2차전에는 대학생 때 참여했던 대외활동의 홈커밍 데이였다. 둘 다 중요한 일정이었고, 물론 그 순간에는 집중하기는 했지만 한켠에 계속해서 '결승 본방 사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승 1차전이 있던 5월 26일. 팝업 전시를 둘러보고 워크샵에 참여한 후 충만해진 마음 한켠에는 사실 조급한 마음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집에 가서 결승 1차전 봐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집 가면서 핸드폰으로 보면서 가야 놓치지 않겠다...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종종 거리는 내 표정에서 조급함을 읽었는지, 팝업 전시를 주최한 ㅇ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바로 집으로 가세요?" 그 말에 "네, 사실 오늘 팬텀싱어 결승 1차전이라 본방 사수해야 하는데, 시간 상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보면서 가야겠네요."라고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털어놓았다. 그 말에 ㅇ님이 "어? 사실 저 전시 마감하고 이곳 빔프로젝터로 팬텀싱어 보려고 했는데! 같이 보고 가실래요?"라고 제안해 주셨다. 함께 시청하는 멤버가 ㅇ님과 현장에서 ㅇ님을 도와주고 계셨던 동료분, 그리고 ㅇ님의 어머님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었는데, 낯을 가리는 평소의 나라면 조심스레 사양하고 집으로 향했겠지만... '결승 1차전을 큰 화면으로 좋은 음향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에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라고 답해버렸다. 


ㅇ님, ㅇ님의 동료분, ㅇ님의 어머님 그리고 나. 어쩐지 어색한 인원 구성에 머쓱한 웃음으로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ㅇ님과 ㅇ님의 어머님은 4인의 성악가로 구성된 팀 포르테나를 응원했고, 나는 규형 배우가 속한 크레즐을 응원했다. ㅇ님의 동료분은 이날 팬텀싱어를 아예 처음 접했다고 하셨다. 이전 무대들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팀이 결성되고 처음 맞이하는 결승 1차전 무대인 만큼 무대에 오르는 싱어들도 바라보는 우리들도 긴장한 느낌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뒤이어 이야기하는 ㅇ님과 ㅇ님의 어머님의 말에 마음이 훅 놓였다. 각자 응원하는 팀의 무대에는 손을 꼭 모으고 듣고, 다른 팀의 무대에도 기꺼이 마음과 귀를 열고 들으며 시간을 보내니 방송이 끝날쯤에는 어색하고 머쓱한 장내의 공기가 말랑해졌다. 큰 화면과 좋은 스피커로 결승 1차전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본방을 놓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과 작은 핸드폰 화면이 아니라 벽면에 크게 쏜 화면으로 보고 이어폰이 아니라 음질 좋은 스피커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과 혼자 방송을 보는 것보다 함께 방송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를 알게 되어 좋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한껏 충만해졌다.


결승 2차전이자 마지막 방송이 있던 6월 2일. 대외활동 홈커밍 데이날. 이런 류의 행사가 으레 그렇듯, 본 행사는 끝났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계속해서 자리가 이어졌다. 나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곧... 방송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때 나와 같은 조급함을 가지고 있던 사과님이 "애호박님, 혹시... 팬텀싱어 본방 안 보시나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사과님과 나는 최애 멤버는 다르지만 최애 팀이 같다는 것을 서로의 인스타그램 염탐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둘이 슬쩍 행사장 메인 공간을 빠져나가 옆에 위치한 회의실로 향했다. 행사가 종료될 무렵, 사라진 나와 사과님의 행방을 궁금해한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사과님의 노트북에 둘이 콕 박혀있는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요즘 팬텀싱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푹 빠진 줄은 몰랐네!" 하면서. 다들 뒤풀이를 하러 인근 술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와 사과님은 노트북 화면에서 송출되는 결승 2차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승 2차전 본방이 끝나고 사과님과 뒤늦게 부랴부랴 뒤풀이 장소로 향하는 동안 팬텀싱어 대화는, 우리의 최애 팀 크레즐에 대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이 순간 나는 몰랐다. 중요한 일정들이 진행될 때에도 절대 본방사수를 놓칠 수 없던 마음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게 할 것이라고, 함께 무대를 보고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은 유랑을 함께하는 덕메의 존재로 엄청나게 크게 증폭될 것이라고. 결승 1차전과 2차전을 보는 내내 나는 몰랐지만, 어쩌면 덕질유랑기의 전조 현상을 지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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