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목)
전날 진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 치고는 늦지 않게 일어났다.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제야 조금씩 숙소가 익숙해지는 듯했다.
어제는 첫 번째 숙소에서 두 번째 숙소로 옮기는 날이기도 했는데, 진주에 다녀오느라 이미 어둑한 밤에 도착해 버려서 두 번째 숙소는 처음 마주하는 낯섦에 더해 두려움까지 더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숙소가 역 바로 근처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다면, 두 번째 숙소는 좁은 골목에 위치한 구옥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숙소로의 셀프체크인은 은색 대문 아래에 숨겨진(?) 열쇠를 더듬더듬 찾아내면서 시작이 되었다. 작은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작은 마당이 펼쳐졌다. 어릴 적 외할머니댁이 생각나기도, 큰 이모네 집이 생각나기도 하는 집이었다. 남은 큰 열쇠로 집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 공간은 생각보다 더 널찍했다. 킹 사이즈 침대와 화장대, 행거가 들어가고도 여유로운 침실과 예스러운 느낌의 부엌. 부엌을 지나 유리를 올린 4인용 식탁이 위치한 미니 거실 그리고 각종 만화책과 빔 프로젝터가 비치된 방까지. 숙소에 익숙해진 지금에야 '공간이 넉넉하고 여유롭네.'라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집에 들어섰을 때는 그 아득한 공간감이 주는 휑함이 무섭기도 했다. 그나마 집 안 곳곳에 켜져 있던 조명의 주황색 따스한 빛이 잔뜩 긴장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했다.
어둠이 밀려나고 여름 아침의 빛이 들어찬 집은 그제야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잠이 묻은 몸을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다시금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데다가 이전 숙소에는 없던 입식 테이블이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공간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려다가 전날 많이 먹어서 위가 늘어난 것인지 빨리 무언가를 채워달라고 꼬르륵거리는 배를 먼저 채워보기로 했다.
브런치가 먹고 싶어 지도앱에서 찾아보니 전날 어둑한 가운데에도 눈여겨보았던 카페길래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제각각으로 생긴 테이블과 의자가 야외 공간에 비치된 모습이 자유롭고 묘하게 조화로웠다. 그 느낌이 좋기도 하고 날이 많이 덥지 않기도 해서 바깥 테라스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와 카페의 이름이 붙은 플레이트를 시켰다. 먼저 나온 아메리카노는 적당히 산미가 있는 원두를 사용했는지 새그러운 맛이 참 좋았다. 이어서 나온 플레이트는 엄청나게 푸짐한 데다가 색감이 알록달록 조화로웠다. 곁들이는 빵으로 프레즐을 주는 것도 새로웠다. 눈을 즐겁게 하는 비주얼만으로도 합격이었는데, 플레이트의 음식을 입안으로 가져갈 때마다 입도 다채롭게 즐거워져서 한 입 한 입 감탄하며 먹었다. 모든 메뉴에 사랑을 가득 담겠다는 이곳 메뉴판의 글귀가 진심이었구나 느꼈다.
카페에서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누워있다가 미니 거실의 4인용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 유리가 반갑게 느껴졌다. 사실 어릴 적 식탁 위 유리에 팔이 닿을 때 차갑고 딱딱해서 영 정감이 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음식물이 떨어졌을 때 금방 닦아낼 수 있었던 것은 편리했지만.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일상에서 보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 한 구석에만 남아있는 풍경이기 때문에 반가운 것이겠지. 식탁에 노트북을 올리고 타닥타닥 셀프유배기를 써 내려갔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글을 써낸 후 찌뿌둥해진 몸을 기지개 켜며 다음에는 무얼 할까 고민했다. 빔 프로젝터를 쏴서 영화를 봐야지 하며 이른 저녁거리를 사 왔다. 빔 프로젝터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버벅거렸지만 작은 방에서 빔 프로젝터로 영화 보며 저녁 먹기도 성공.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다가 본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기도 했다. 다른 공간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었다. 계단의 가장 위쪽에 잠시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주위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이곳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