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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Jul 25. 2024

서로의 앞에서 가장 풀어지는 사이

2024-07-19(금)~20(토)

나의 유배지를 찾아온 두 번째 면회객은 나의 짝꿍 완이었다. 전날까지도 완에게 부산역에 마중을 나갈 거라는 둥 이야기를 했지만 왕창 늦잠을 자버린 탓에 숙소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는 정도로 웰컴 인사를 했다. 내가 부산에 내려오고 난 후로 처음 보는 거니 2주 만에 보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해서 보자마자 시답잖은 농담과 장난을 쳤다. 


숙소에 짐을 두고 동네를 구경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완이 도착했을 때 회색빛으로 찌푸렸던 하늘은 이내 비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완이 부산에 온 단 하나의 이유는 해수욕이라 점심을 먹는 내내 내심 걱정이 되었다. '오늘 물놀이하기 어려우려나...' 날씨 앱과 초단기강수예측을 번갈아 살펴보며 비구름이 걷히기를 기원했다. 그 마음이 통한 것인지 광안리에 도착하자 날은 여전히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광안리에서 해수욕을 하는 것이 2회 차인 만큼 능숙하게 파라솔과 선베드, 튜브를 대여하고 물놀이를 했다. 사과님과 함께 했던 해수욕과는 달리 다음에 정해진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제한 없이 양껏 맘껏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직전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바람이 거셌던 것인지 파도가 지난번보다 높아서 튜브를 타고 노는 것이 정말 다이내믹하게 신났다. 신나게 놀다가 잠시 나와 파라솔 아래에서 쉬면서 그간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다. 물론 그동안 카톡으로 근황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얼굴을 맞대고 다시금 곱씹듯 이야기했다. 체온이 식어서 조금 으슬해질 때쯤 다시 몸을 풀고 바닷물에 뛰어들어 열심히 수영을 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 해수욕인 듯이. 손바닥이 하얗게 질리고 손 끝이 얼얼해질 때까지 놀고 나서야 물 밖으로 나왔다. 


샤워장에서 씻고 나오니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주변이 아주 붐비기 전에 횟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사과님과 가려다 마감 시간에 가까워서 가지 못한 곳이었는데, 음식이 정갈하고 깔끔하게 나왔다. 회와 매운탕에 소주를 꼴꼴꼴 곁들였다.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알딸딸해졌다. 배도 든든하게 부른 데다가 알딸딸함 때문에 텐션이 업되어서 저녁 7시 반이 되지 않은 시간에 2차를 가자고 외쳤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며 이것저것 찾다가 근처에 있는 시가바를 발견하고는 오픈하자마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물놀이로 체력을 다 쓰고 나서 술까지 들이부었으니 지쳤을 텐데 시가바에 가서 또 술을 마시고 시가까지? 무리였던 것 같다. 어쩐지 시야가 뿌옇던 것은 시가의 연기 때문이 아니라 만취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완과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맥락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나누었다. 그 익숙한 즐거움을 오랜만에 마주한 덕분에 꽤나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다.


덕분에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집에 와서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부산에 와서 이렇게까지 늦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 거의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잠을 잤다. 피곤했던 것은 완도 마찬가지였던지 나보다도 더 깨어나지 못했다. 물놀이가 이번 부산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기도 하고, 부산에 오기 전까지 이래저래 바쁘게 일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완을 굳이 깨우지 않았다. 나도 완도 한껏 게을러지는 날이었다. 해장 겸 점심식사로 김치찌개를 시켜 먹고는 나는 뒹굴거리고 완은 또 잠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에서 함께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하는 여느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원가족보다 더 편안한 사이인 우리구나 싶었다. 서로의 앞에서 가장 풀어지는 사이. 사실 나는 나 스스로가 마냥 게으른 모습을 가장 싫어해서 완과 함께 있으면서 지나치게 풀어지는 나 스스로에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했는데, 이런 게으름과 여유를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는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은 완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렇지만... 같이 점심 먹은 거 나 혼자 치우는 건 좀... 짜증 나잖아...!? 내가 이 유배지의 호스트니까 이번에는 내가 치울게, 다음에는 네가 치워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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