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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Aug 02. 2024

낯가림을 넘어서, 파도를 넘어서

2024-07-23(화)

두 명의 면회객이 다녀간 후 어쩐지 고요와 고독 속에 가라앉고만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눈이 떠졌을 때에도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겨 덮었다. 이불 안에서 뒤척거리다가 이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서핑을 하러 가자. 알아봐 두었던 서핑샵에 당일 예약을 하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사실 서핑하러 갈까 며칠간 고민을 했다. 광안리에서 패들보드를 타던 날, 강습이 마무리될 때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혹시 시간 되면 서핑도 한 번 해봐요.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균형도 잘 잡으니까 서핑하면서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웃으며 넘겼는데, 그 말이 내 마음에 씨앗처럼 콕 박혔던 모양이다. 어느 날은 혼자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서핑샵을 찾아보기도 했다. 면회객들이 오는 일정을 피하면 대략 언제쯤 갈 수 있는지 날짜도 생각해 두었다. 그럼에도 막상 '서핑하러 갈까?' 하는 마음이 자꾸 걸려 넘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낯가림이었다.


상당학 사전에서 낯가림은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싫고 두려움을 갖는 현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읭?' 하는 반응이 느껴지지만, 내가 그렇지 않은 척 엄청나게 노력할 뿐. 낯선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늘 두려움에 경직되고 낯선 사람 앞에 서면 어떻게 할지 몰라서 늘 뚝딱이고 고장 나는 편이다. 이런 나의 낯가림은 사람뿐만 아니라 경험에도 적용된다. 어쩌면 나는 능숙하지 못하고 뚝딱이는 나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서핑을 하러 갈까' 싶다가도 초행인 서핑샵을 찾아서 길을 헤매는 나의 모습, 서핑샵에 가서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몰라서 머쓱해하며 뻘쭘해할 나의 모습,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허우적거리는 등 어설프고 어색할 나의 모습이 시작 전부터 두려웠다. 거기서 나의 마음이 자꾸 걸려서 넘어진 것이었다.


서핑샵을 예약할 수 있던 것은 사실 낯가림에 걸려서 넘어진 것이 처음이 아니었을뿐더러, 어쨌든 부산에 있을 날은 한정적이므로 다시금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척 훌훌 털어낸 덕이였다. '지금이 아니면 못해 볼 수도 있는데, 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처음에 어버버 거리는 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고 나중에는 더 일찍 안 했다고 아쉬워할걸?' 그래도 3n 년 헛살지는 않았구나 내가 나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구나 싶었던 건, 동해선을 타고 송정으로 향하는 길에 걱정과 불안보다는 은근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슬쩍 들뜬 나를 느끼면서였다.

물론 내가 우려했던 대로 서핑샵에 처음 가서는 많이 쭈뼛거리고 어버버거렸다. 처음만이 줄 수 있는 어색함과 긴장감을 즐기... 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모르는 건 그냥 물어보자!' 사장님께 서핑 강습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여쭤보고, 사장님이 서퍼복을 쥐어주실 때 '그래서 수영복을 입고 이걸 위에 입는 거죠?' 재확인했다. 같은 타임에 강습을 받게 된 여성분도 서핑이 처음이셨는지 모든 게 생경한 눈빛이 나와 꼭 닮아있었는데, 그 동질감을 서로 느꼈던 것인지 탈의실에서 각자 서퍼복을 낑낑거리며 입은 후에 그분이 내게 '뒷 지퍼 잠가드릴까요?' 물어보셨고 나 역시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네, 부탁드릴게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뒷 지퍼가 조금 타이트하게 잠긴다 했더니 나중에 사장님이 '아이고 얼굴이 조막만 해서 그 사이즈를 준 건데, 생각보다 여유 공간이 많이 안 남네'라고 하셨던 건 안 비밀... 어쩐지 뒷 지퍼 잠그니까 숨을 헙-하게 되더라. 물론 물에 들어가면 부력 때문에 바깥에서보다 여유 있어져서 딱 맞기는 했지만.)


전신 쫄쫄이 같은 서퍼복을 입고 같은 타임에 함께 강습을 받게 된 분들과 바다로 나섰다. 이날 나의 강습 메이트는 아까 탈의실에서 나의 뒷 지퍼를 올려주셨던 여성분과 그 여성분의 초등학생 조카들이었다. 다른 곳에서 강습을 받아보지 않아 모르지만, 지난번 패들보드 강습을 받았을 때처럼 이번 서핑샵에서도 바다에 나가기 전에 해수욕장에서 서핑보드의 명칭과 보드를 타는 방법과 자세를 트레이닝하고 가서 좋았다. 물론 서핑 선생님이 '바다에 가서 직접 경험하면서 제일 많이 배우게 되어요'라고 한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기초부터 차근히 제대로 배우는 편이 내게는 더 잘 맞는 방식 이어서다. 기초를 탄탄히 해야 나중에 실전에서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하고 고려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으니까. 물론 몸으로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머리로 로딩이 오래 걸리면 당장은 어버버 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여하튼 기초부터 탄탄히 하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보드 위에 엎드렸다가 '준비' 구령에 맞춰 갈비뼈 바로 옆까지 양손을 짚어냈다. '업'하는 구령에 요가의 부장가아사나(코브라 자세)를 하듯 양손을 밀어내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 나서 주로 사용하는 발 먼저, 그다음 발을 이어서 보드 위에 디디며 비라바드라아사나 2(전사 자세 2)처럼 몸을 일으켰다. 모래사장에서 서핑 선생님의 '준비-업-오른발-왼발' 구령에 맞춰서 위의 과정을 몇 번 연습을 한 후에야 바다로 향했다. 수업 초반에는 선생님이 파도에 맞춰 서핑보드를 밀어주시면 그 보드 위에 엎드려 누워있다가 '준비-업-오른발-왼발' 구령에 맞춰 일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처음 서핑을 하는 것이기에 바다 위 서핑보드에서 일어선다는 것이 어떤 감각일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과연 내가 잘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타이밍 좋게 서핑보드를 밀어주고, 때에 맞춰 구령도 외쳐주니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선생님이 밀어주시는 보드 위에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일어나는 연습을 했다.


정말로 어려웠던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선생님의 푸시 없이 혼자 파도를 타는 것. 서핑보드의 노즈를 해안 쪽으로 둔 상태로 파도가 오는 것에 맞춰 올라탈 수 있게 서핑보드의 레일을 양손으로 짚고 고개를 돌려 파도를 살폈다. 내가 탈 수 있는 파도가 온다 싶으면 타이밍에 맞춰서 하나둘 해안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서핑보드에 파도가 닿기 전에 내 몸을 서핑보드에 올린다. 해안 쪽 방향으로, 파도가 치는 방향으로 몸을 밀어내듯 올리는 것이 포인트. 그렇게 파도를 타고 균형을 잡은 후에 '준비-업-오른발-왼발' 순으로 서핑보드에서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서핑. 그런데 정말 말이 쉽지 내가 탈 수 있는 파도가 저 건지 이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 파도인가 싶어서 타려고 하면 생각보다 밍숭맹숭해서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다음에 치는 파도가 훨씬 더 강력해서 '이걸 탔어야 하는데!'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어릴 적 단체 줄넘기를 할 때 들어가는 타이밍을 영 못 잡던 내가 떠올랐다. 긴 줄이 바닥을 탁- 탁- 때리며 돌아가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보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파도가 '어느 게 네 파도게~?' 하며 의뭉스럽게 다가오는 모습이 나를 더 답답하게 했다. 선생님이 아리송해하는 나를 보며 '당연히 처음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파도는 특히 계속해서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만의 데이터를 쌓아야 해요.'라고 말씀해 주시며 다독여주셨다. 그나마 강습 중에는 선생님이 파도 타이밍을 몇 번 더 알려주셔서 파도를 좀 탈 수 있었지만, 강습이 끝나고 나서 혼자 서핑을 할 때에는 파도를 보고 타이밍을 잡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다.


서핑 관련해서 주워들은 말 중에 '인생은 서핑과 같아서 나의 파도를 기다려야 하고, 나의 파도가 아닌 남의 파도는 기꺼이 보내줘야 하고, 마침내 나의 파도가 왔을 때 멋있게 타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정말 서핑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오른쪽 고개가 뻐근할 정도로 고개를 돌려낸 상태에서 저 파도가 내 파도인지, 그다음 파도가 내 파도인지를 한참을 고민하고 기다렸다. 자신의 파도를 기다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어서 많은 서퍼들이 나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숙련된 서퍼들은 아예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를 밀어내는 바다 방향을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를 계속해서 보다 보니 드디어 내 파도가 뭔지 알 것 같았다!라고 하면 나는 서핑보드 쪽으로 진로를 틀어야 하는 게 맞고, 사실은 내 파도가 뭔지는 끝까지 아리송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끝날 때 한 두 번 정도는 파도를 좀 탔던 것인데, 사실 끝날 때쯤 두 번 정도 파도를 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두 번 정도 탈 수 있을 때까지 무수히 실패하다가 조금 탄 것 같은 느낌이 들자 '그래, 이 정도면 됐다! 그만 들어가자!' 했던 것에 가깝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파도는 조금은 볼 줄 알게 되었던 것도 같다. 내 일이 아닌 것으로부터는 한 걸음 떨어져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전체를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언젠가는 내 파도를, 내 일을 잘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었다.


서핑을 하면서 다시금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재밌었다. 일단 나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여전히 힘 빼기가 잘 안 되는 편. 매사 너무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것 때문에 무엇을 하든 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 같다. 언제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될까? 그리고 조급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파도를 살피다가 파도를 타려고 들어가면 대부분의 파도가 늘 미적지근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 이 파도가 아니었던 것 같네.' 싶어 서핑보드에서 내려올 때 쏴아 밀려오는 강력한 파도에 뺨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들며 '아, 이 파도였나 보다.'라고 짜게 여러 번 읊조렸다. 때로는 파도를 타고서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기도 전에 성급하게 일어나려다 바다에 풍덩 빠진 것도 수차례. 그럴 때마다 '서핑할 때도 이렇다니...' 싶어 이마를 여러 번 짚었다. 잘하고 싶어서 힘이 잔뜩 들어간 나, 늘 조급해하는 나의 모습은 언제쯤 풀어낼 수 있을까? 일단은 알아차렸으니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서핑을 고작 딱 한 번 해봤을 뿐인데, 서핑이 인생과 같다는 말에 자꾸만 귀가 쫑긋거린다. 당분간은 그런 책들을 읽게 될 것만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서핑을 하러 송정이든 강원도나 제주도든 파도가 좋은 곳으로 나가야지. 그때에는 낯가림이 훨씬 덜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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