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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Jul 29. 2024

에브리10이어즈

2024-07-20(토)~22일(월)

내가 덕질하려고 내려온 부산에 셀프유배기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10년에 한 번씩 가는 우정여행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준 것은 지인이였다. 지인이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 대략 16년 지기 친구려나. 여하튼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다. 7월에 내가 덕질을 하기 위해 부산에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내려가 있는다고 하니 지인이가 이렇게 답장했다.


'부산 ver.2 at 30s. 와이돈위고투부산에브리10이어즈.'


그 말에 심장이 철렁. 그랬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3년에 나와 지인이는 함께 부산 여행을 했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분주하게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기억과 엄청나게 과식을 해서 결국 배탈이 났던 기억만은 생생했다. 20대에 갔던 여행지를 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가자는, 앞으로 10년 주기로 가면 어떻겠냐는 지인이의 제안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함께할 두 번째 버전의 부산 여행을 기다리며 그 사이에 카톡으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나누었다.


지인이가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나는 그날 저녁 공연이 있었고, 그 사이 부산에 도착한 지인이는 광안리에 밤바다를 보러 갔다. 10시가 넘은 밤에야 우리는 그동안 나누었던 카톡 속 가보기로 한 식당 앞에서 만났다. 그렇게 지인이와 부산 ver.2가 시작되었다. 지인이와 나의 30대 부산 여행은 미식여행, 빵지순례, 추억여행의 세 가지 주된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겠다.


미식여행

사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대충 편의점에서 때울 때도 꽤나 많았다. 면회객들이 올 때에는 아무래도 부산 향토 음식을 먹거나 부산 맛집들을 찾아가서 제대로 된 식사를 거하게 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는 지인이와 함께할 때 특히 호화롭게 먹지 않았나 싶다. 지인이가 부산에 도착하기 전 우리가 주고받은 카톡 속 음식점들을 모두 가려면 하루에 5끼는 기본으로 먹어야 하지 않냐는 농담을 주고받았을 만큼 지인이의 맛집 리스트는 엄청나게 길었다. 그중에서 엄선해서 다녀온 몇 군데.


첫날밤에 만나서 간 이자까야에서는 장어튀김(아나고아게)과 고등어초회(시메바사)를 먹었다. 100번 칼질을 했다는 장어튀김은 첫 입에 바삭한 식감을 주면서 후끈한 열기를 뿜게 했다. 철이 아니라 못 먹으려나 싶었던 고등어초회도 입안 가득 오물거리며 먹을 수 있었고. 곁들인 복숭아 사와도 유자 사와도 이마를 박박 칠 정도로 맛있고 시원했지.


둘째 날 점심에 간 타코집에서는 하나하나 요리 같은 타코를 먹었다. 참치 타코와 피시 타코, 콘립을 먹었는데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색다른 맛이었다. 특히나 피시 타코는 두툼한 생선 튀김 아래에 깔린 매콤한 치폴레 소스와 위에 올려진 달달한 사과 조림 같은 것의 조화가 새로웠다. 고수를 얹고 라임까지 쭉 짜서 먹으면 그야말로 요리 하나 완성!


둘째 날 저녁에 간 바에서는 문어 구이와 엔쵸비 파스타를 먹었다. 개인적으로 엔쵸비 파스타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동안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 잘못하면 비리다고 해서 걱정을 조금 했는데, 걱정을 한 것이 무색할 만큼 감칠맛이 입안 가득 흡족했다. 특유의 짭짤함 덕분에 맥주와 곁들여 먹기에도 좋았다. 마지막 아이스크림에 더해 지인이는 포트와인, 나는 위스키로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했다!


셋째 날 점심에는 비건 음식점에 갔다. 불완전하지만 계속해서 비건 지향을 하려는 나를 위해 지인이가 신경 써서 찾아준 곳이었다. 병아리콩의 단단한 식감이 살아있는 후무스가 잔뜩 들어가 든든하면서도 딸기잼으로 킥을 준 샌드위치와 칼칼해서 전날 마신 술이 해장되는 느낌이 절로 들었던 비건 똠얌 스프를 함께 시켜서 먹었다. 음식이 나올 때 양이 적지 않을까 했는데, 다 먹고 나오면서는 부른 배를 한참 두드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셋째 날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종가 팝업스토어를 갔는데, 거기서도 김치를 활용한 핑거푸드들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연어샐러드 샹티콘부터 김치 아란치니, 김치 롤피자, 당근김치에 김치 아이스크림까지. 점심 식사를 두 끼 정도 한 느낌이었다.


빵지순례

미식여행 중간중간에는 유명한 부산의 빵집들을 투어 했다. 작년까지 빵집 딸이던 지인이는 빵을 사러 여러 빵집에 다니면서 문득 생경해했다. '원래 이 시간대에 나도 빵 포장하고 있었는데...' 하면서. 우리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작년 초까지였으니 지인이는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가게 일을 도와온 것이다. 심지어 본인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주말에 하루 정도는 꼭 가게를 보러 갔으니까. 그 시간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아득하게 대단하고 나는 감히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감정이 섞인 오묘한 눈빛을 지인이에게 보내니 남타커(남이 타준 커피)처럼 남파빵(남이 파는 빵)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로 지인이가 답했다.


둘째 날 아침에 간 빵집은 숙소 근처였다. 주말 아침에 빵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풍경이란 정말 경이로웠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빵에 진심이라고?' 싶어서. 줄을 오래 서지는 않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가게에 들어가게 되면 어쩐지 사려던 빵의 개수보다 더 많이 사게 되는 것 같다. 일종의 보상심리랄까? 지인이는 우리가 나눠먹을 빵부터 집에 가져갈 빵까지 넉넉하게 트레이에 담았다. 물론 트레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어쩐지 단촐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둘째 날 오후에 간 빵집은 사람으로 가득한 서면과 전포 사이의 가게였다. 원래 가려던 빵집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테이블이 없이 빵만 파는 매장이기도 했고, 지인이가 먹고 싶었던 빵은 이미 일찌감치 품절이라고 해서 간 곳이었다. 이곳도 매장의 4분의 3 혹은 그 이상을 빵을 만드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테이블은 셰어가 가능한 긴 테이블 단 하나였다. 다행히 두 명 자리는 있어서 부산의 열기를 식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바게트,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명장의 포스가 느껴지는 사장님과 꽤나 많은 수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게의 분위기는 어쩐지 다정했다. 우리와 같은 여행객도 많았지만, 동네분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기 때문일까?


셋째 날 오전에 간 빵집은 엄청나게 유명한 맛집인지 오픈도 전에 웨이팅이 정말 길었다. 매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도 꽤나 기다렸을 정도? 우연히 들어간 카페가 커피 맛도 분위기도 좋아서 기다릴만했고, 나중에 지인이가 내 몫으로 사준 초당옥수수 빵도 맛있었다.


추억여행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10년 만에 가는 추억여행이었다. 우리 둘의 10년 전과 지금을 나란히 두는 추억여행이기도 했지만, 워낙 부산에는 옛 풍경이 많이 남아있기도 해서 과거로의 추억여행 같기도 했다. 일단은 내가 머물던 숙소부터가 부산의 골목에 위치한 구옥을 에어비앤비로 내놓은 곳이었다. 열쇠를 짤랑이며 지인이를 숙소로 처음 데리고 갔을 때, 우리는 열쇠로 문을 열지 않은지가 대체 몇 년이나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숙소에는 헤어드라이기가 없어서(내가 못 찾은 걸까...) 나는 머리를 그냥 탈탈 털어 자연건조를 시켰는데, 지인이는 그러기엔 머리가 너무 길다고 고민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지인이가 내게 내민 것은 동네 미용실의 위치가 찍힌 지도 앱이었다. 대체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지인이를 따라 간 미용실은 정말 옛날 동네 미용실이었다. 안방에 있을 것만 같은 화장대가 놓인, 동네 주민분들이 마실 오시면 앉아 계실 것만 같은 평상이 있는, 미용실 안쪽 문으로는 사장님께서 기거하시는 집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는 그런 곳. 사장님께서는 샴푸와 드라이를 하고 싶다는 지인이의 머리를 두피가 얼음장 같아질 정도로 시원한 쿨샴푸로 정성스레 감겨주셨고, 드라이기를 쓰면 머리가 많이 상한다며 말씀하셔서 우리의 심장을 철렁하게 하셨지만 이내 드라이기를 가장 약한 바람으로 켜시고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도끼빗으로 계속해서 지인이의 머리를 빗어가며 말려주셨다. 그게 단돈 만 원이었나...? 지인이의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빗어주시며 말려주신 정성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었다. '손녀케어' 그 자체.


예스러운 미용실에 다녀오니 10년 전 함께 찍었던 이미지 사진 이야기가 갑자기 나와서 지인이가 또 동네 사진관을 찾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은 1인용 증명사진만 찍는 곳이라 두 명 촬영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실패. 물론 근처에 셀프사진관이 아주 많았지만 레트로를 넘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사진관을 고집하게 된 지인이와 나는 다음번에 정말 예스러운 사진관을 찾아서 10년 전 포즈를 제대로 재현하는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태종대였다. 10년 전 함께 가서 사진을 찍었던 장소 중 하나. 2박 3일 간 미식여행과 빵지순례로 체력을 꽤나 쓴 우리는 지인이의 짐을 부산역 맡겨두고는 어쩐지 지쳐버렸다. 태종대로 가서 사진 찍을 일만 남았는데 말이다. 휴식이 절실했던 마음은 태종대 가는 길에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 있는 족욕카페를 찾아냈다. 일단 피로를 조금 풀어내고 생각해 보자며 지인이와 족욕카페로 향했다. 직원 분께서 각자 선택한 소금을 따뜻한 물에 풀어주셨다. 그 물에 발을 넣고, 이어서 직원분이 전해주신 어깨 마시지기를 얹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바다로 향해 난 통창이 무릉도원의 화룡점정이었다. '태종대고 뭐고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직원분께서 서비스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했다. 그 말에 지인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외쳤다. '이거... 한 큐에 해결되겠는데?!' '대충 태종대 근처니까 뭐 비슷하지 뭐.' 깔깔깔 웃으면서 여전히 발은 따스한 족욕물에 넣은 채로 10년 전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10년 전 20대의 우리는 1박 2일 동안 그 많은 곳들을 뽈뽈거리며 다녔는데, 지금 30대의 우리는 족욕카페에서 피로를 풀기 바쁘구나. 그 시간의 갭 차이가 너무나 웃기면서도 우습지는 않았고 싫지도 않았다. 10년 전 우리는 지금의 이런 우리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걸 떠올리며, 10년 후 우리는 어떨지 굳이 미리 걱정하거나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어떤 모습이든 10년 뒤 우리가 40대의 부산 ver 3. 를 떠날 수 있기만을 바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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