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히 사랑하고 싶어요

J 씨를 사랑하고 돕고 싶은 마음뿐

by 초들

절실히 사랑하고 싶어요

이 글은 어제 J 씨의 귀한 글월과 선물을 받고 나서 쓰는 겁니다. 지금 시간은 1979년 1월 5일 오전이고, J 씨 긴 글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아쉬움이 무척 많음을 발견해 봅니다. 따라서 형식을 무시한 다소 딱딱한 내용이 될 것 같으니 이해 바랍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저를 힐책하는 글이었어요. 저를 귀엽게 평했으며 불필요한 에피소드(episode)를 소개했더라고요. 사실 약속을 무척 중하게 여기는 제가 이를 어겼던 게 매우 유감스럽고 미안했어요.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아야 하는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무조건 죄송합니다. 저를 귀엽게 여겨 주신 점 조금도 불쾌하지 않아요. 이따금 주위 사람들에게도 들었거든요. 에피소드는 제게 그렇게 흥미를 끄는 사건이 아니랍니다. 순진한 고등학생의 겁 없는 용기와 호기심을 직설적으로 표현했고요. 이성(異性) 간에의 갈망(渴望)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내적 충동의 표현이라고 일축하고 싶어요. 만남은 종류가 많지만, 이성 간 만남은 호기심, 갈등, 자기 통제 억눌림 속에서의 만남일 테니까요.


두 번째 장에서는 J 씨 의견을 일방적으로 표했더라고요. 수진 다방에서 제 얘기를 너무 심각하게 듣고 단정한 내용이었어요. 또 ‘주님을 믿는다는 걸 우리 만남의 돌출구 내지 계기로 삼고 믿음이 없을 때는 언제나 평범한 사이로 전환할 수 있다’라는 반증을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제 심원(心源) 가득히 간직된 마음, 참뜻을 쉽게 단정 지어버린 게 섭섭하고 서운해요. 주 안에서 참신하게 만난 J 씨가 조금 실망을 안겨준 거예요.


세 번째 장에서는 ‘사랑’에 대한 J 씨의 의견이었는데, 제 생각을 말할게요. 숭고한 정신이라는 사랑의 표현에는 저 역시 동감이지만, 제 경우 사랑은 근본적으로 순애보 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해타산에 얽매인 사랑, 나는 싫어요. 저는 우정도, 사랑도 순전히 희생을 강요하는 정신기능으로 치부합니다. J 씨와 제 인생을 함께 가꿔보고 싶은 욕심이 J 씨에게는 빗나간 오해를 가져오고 말았군요. 죄송해요.


네 번째 장에서는 J 씨가 재수(再修)해보겠다는 얘기와 건강에 대한 의견이군요. 재수를 강요한다던가 건강을 외면하는 처사는 용납할 수 없는 거예요. 우선 건강하셔야 해요. 그 누구에게 편지해도 마지막 인사는 건강과 행운을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고 싶은 게 저의 속마음이거든요.


다섯 번째 장에서는 변화무쌍한 사랑 얘기와 30살 되기 전에 결혼하겠다는 내용이군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사랑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79년부터는 좀 더 절실히 사랑하고 싶어요. J 씨의 속내를 슬쩍 엿보았거든요.


여섯 번째 장에서는 내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과 J 씨는 신경을 무척 많이 쓴다는 내용이군요. 사실인즉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척 어려운 사람이라는 평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사람은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할까요? 저는 좋은 게 좋다고 어영부영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처사는 그냥 보고 넘기지 않습니다. 유모(humour)와 위트(wit)를 동원하여 우회적으로 지적하거나 부탁하고 충고하는 편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매사에 지나치게 신경 쓰시는 J 씨가 오히려 신경 쓰이네요. 리렉스(relax)하세요.


일곱 번째 장은 선물 얘기이군요. J 씨가 보내준 선물 고마워요.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저 또한 J 씨에게 선물할 겁니다. 선물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재수하고 싶다는 열망을 다시 말하셨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때 내 태도가 어떠할지 물으셨어요. 안경을 쓰겠다고 하셨고요. 재수하고 대학 진학하는 것. 가능하다면 J 씨, 꼭 대학 진학하세요. 결코 제 뜻을 좇아 억지 부리지 마세요. 낭만이란 스멀스멀 대학 교정에서 많이 피어오른답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혹평한다든가 비하하지 마세요. 우리 자신을 내가 사랑하고 아껴야지, 그 누가 대신해 줍니까? 안경을 써서 눈을 보호하고 싶으면 어서 빨리 쓰세요. 저는 J 씨를 통해 한 인간을 배우고 새로운 인생을 탐독하는 것이랍니다. J 씨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사세요. 저는 J 씨를 사랑하고 돕고 싶은 마음뿐이랍니다.



J 씨!

저는 원만하고 쉬운 사람입니다. J 씨에게 아주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일생(一生)을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살 겁니다.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살아갈 거예요. 하나님이 허락하고 주님께서 인도한다면 J 씨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쓸데없는 망상이나 상상, 환영, 동화 속에서 살지 마세요. 크게 눈 뜨고 하나님을 만나세요.



이 시간 저는 멀리서 대답 없는 J 씨를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어요. 패기 발랄한, 꾸밈없는 J 씨를 나는 사랑하고 싶어요. 힘을 내세요. 창공을 힘차게 날아가세요. 당신의 편지를 낱낱이 평한 것을 이해해 주세요. 혹평(酷評)을 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여요. 깡그리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싶고 좀 더 사랑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랍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정성스럽게 글 쓰는 제 모습을 J 씨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곰곰이 J 씨 글월을 살펴보면 순간적인 착상을 피력하는 대목이 많아요. 적어도 마음속 깊은 심원에서 솟구치는 진실을 얘기하세요.


건강, 행운 주시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울러 우리를 돌보는 많은 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979.01.05.(금) 오전~오후 浩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