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마음, 어찌 금할 수 있겠어요

영향력이 큰 J 씨

by 초들

만나고 싶은 마음, 어찌 금할 수 있겠어요



이 글은 J 씨 글월을 반(半)도 읽지 않고, ‘제 예상대로 적중되었구나’라고 추측하며 많은 걱정 쓸어 담아 쓰는 글입니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5분 전, 두서없는 언어의 나열이 될 것 같고 그러길 바라는 바입니다.



두 통의 진지한 J 씨 글월을 읽게 된 것은 큰 영광이죠. 붉으락푸르락 놀랍게 돌변하는 자신을 거울 속에서 또 보며, 저는 망연자실(茫然自失) 서울 어느 하늘 아래에서 직장 생활에 충실하고 계실 J 씨를 생각해 봅니다. 뚜렷이 제 눈에 비추어지지 않는 J 씨를 애타게 연모하면서.


아닌 게 아니라, J 씨 의견에 긍정하기 위해 휘경동 주소를 잊어버렸는지도 몰라요. 또 흔한 만남처럼 많이 만나지 못해 안달 부리는지도 모르죠.


J 씨! 모든 의견이 놀랍도록 저의 단면이자 전부였다면, J 씨는 직업을 잘못 택했을지도 모르겠어요.(회사원→형사) J 씨와 만나고 싶은 마음, 어찌 금할 수 있겠어요. 만나지 않고는 배겨 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 같아요. 어쩌면 하나님 보시기에 앉은뱅이 신앙인일 지도 몰라요. 그냥 세상에 산재(散在)된 모름지기 흔한 죄인일지도. 아니면 J 씨가 실망하는 남자들의 표본인지도 모르죠.


J 씨가 정성껏 포장해서 보낸 ‘Desk Diary’에 빼곡히 글을 써서 드리고자 고향에까지 갖고 갔던 내가 좀 이상스럽네요. 그토록 애타게 고대했던 J 씨의 글이 적나라한 제 소망을 무참히 깨뜨리고 말았으니, 몹시 안타깝고 서운해요. 그러잖아도 하루하루 해변에 가냘프게 쌓아놓은 모래성처럼 밀물을 두려워하면서, 풍파 우로(雨露)를 그토록 무서워하며 쌓아갔던 내 사랑의 성이 무너지고 마는 순간이군요. 제게 이렇게 영향력이 큰 J 씨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나서 ‘참 나는 우스운 존재구나’라고 푸념을 읊조리고 맙니다.


아슴아슴 돋다가 마는 민들레. 초롱초롱 이슬빛을 발하는 영롱한 꿈들이 휘청거리는 오후 속으로 파묻히고 있어요. 그래도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뜻이 흠씬 깃들 줄 알고서 내내 가슴 조이며 따사로운 손길을 아끼지 않으려 했던 나는 비참해지는 것 같아요. 신앙을 방패 삼아 믿음의 전신갑주를 두르고 힘차게 주님 위해 십자가 군병이 되려고 하는 이 믿음마저 무시당하다니. 같은 값이라면 아름다운 말들을 빌려서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고 심히 연약하다면 J 씨 ‘사랑의 힘’으로 감싸주고 북돋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정녕 당신은 그토록 혹독하게 나를 짓밟고 있네요. 기미년, 하나님과 J 씨가 새로움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재고(再考)해야겠어요. 하하하.


J 씨!

보냈던 두 장의 양면지는 온통 당신을 괴롭히는 글뿐이었죠? 무조건 죄송해요. 모두 취소합니다. 이제부터는 J 씨를 사랑하렵니다. J 씨의 진솔한 모습을 봤으니까요. 왜 J 씨가 골낸 글월을 보냈을지 생각해 보니 ‘저의 시험이 너무 지나쳤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얄궂은 시도(試圖)였지만 결코 악의가 섞인 시도는 절대 아니었답니다. J 님의 애정(愛情)을 확인했다고나 할까요? 거듭 미안함을 전하며 다음 편지에는 다시 평상심을 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과외 시간이 되어서 이만 그치겠어요.

건강과 행운을 주님께 기원하면서

1979.01.24.(수) 오후 2:29 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