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탁한 계절 감각을 향유하며, 자연에 가득 동화된 마음은 벌써 많은 계획 속에 파묻히고 맙니다. 귓전에는 ‘소녀의 기도’에 이어 ‘금혼식’, 쇼팽의 ‘야상곡’ 순으로 피아노 연주곡이 살랑거리고 있습니다.
J 씨를 서울로 떠나보낸 지 이틀째 된 지금, 내 마음은 매우 착잡하기만 합니다. 내 곁에서 다정스럽게 얘기하는 J 씨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으로 종종 대며 주위를 살핍니다. '보고 싶어요. 몹시 그립고요.' 그러고 보니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이어요.
성탄 축하 예배를 마치고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왠지 알 수 없는 공허(空虛)와 우수(憂愁)가 가득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까닭 모를 서글픔으로 엊저녁 8시 20분경 교회에서 조용히, 은은하게 그리고 요란하게 오르간 건반을 두드렸어요. ‘Amazing Grace’, ‘천부여 의지 없어서’ 등 주님의 찬미곡을 연주하면서 문득 내 곁에 아늑히, 포근하게 앉아있는 J 씨를 보려고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캄캄한 교회 안이랍니다.
J 씨!
멘델스존의 ‘봄노래’가 끝나고 힘찬 ‘터키 행진곡’이 연주되고 있어요. 현재의 내 마음은 중심을 잡지 못해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격랑(激浪) 속 뗏목 같아요. 이 감정은 J 씨가 내 곁에 있다면 바로 해소될 것 같아요. 지금은 베토벤의 ‘월광곡’이 연주되고 있어요. 다소곳이 내 마음 차분해지고 있어요. J 씨를 통한 새로운 인생을 꿈꿔보면서 연이어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를 청하고 있습니다. 포근한 꿈의 정경 속에서 아기자기한 연인의 모습을 기억해 내려고 애써봅니다. 베토벤의 ‘엘리제’는 누구였기에 저토록 애절한 곡을 작곡하게 되었을까? 의아함 속에 나의 엘리제는 J 씨가 되고 있음을 서서히 인식해 봅니다. ‘J 씨를 위해 부지런히 살아가야지’라는 생각 하면서 들려오는 ‘트로이 메라이’를 내 마음속에 깊이깊이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J 씨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솟구치는 의구심을 가누지 못해 깡그리 가슴속 한쪽 방에 묻고 싶어요. ‘스케이트 왈츠’, 왈츠는 언제나 3박자 춤을 추게 하는군요. 오전 시간 글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어요. 굳이 J 씨 답장을 바라지 않고 글을 쓰렵니다. 사무치는 그리움 억누르기 힘들거든요.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뜻깊은 성탄절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에 J 씨의 소망이 주 안에서 꼭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