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월요일, 밤 9:00을 넘기고 있는 시침(時針)을 보며, 또 너에게 편지를 쓴다.
지난 토요일에는 늦게 잠을 잤다. 너랑 시간을 보내고, 양동에서 양림동까지 걸어와서 몹시 피곤했지. 방에 들어서니 동생이 벌써 잠자고 있었어. 피곤했나 봐, 나도 금방 스르르 잠이 들더라. 얼마나 잤을까? 깨보니 오전 11시가 넘었더구나. 이를 어쩌니? 두암동 교회까지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어. 너의 반 주일 학생들에게 공과를 가르쳐 달라했는데, 정말 대단히 미안해. 너에게, 너의 반 학생들에게.
承弟야!
현재 암천리는 아주 시끄럽다. 보리타작하느라 탈곡기 소리가 밤늦은 시간까지 요란해. 오랜만에 제대로 만난 농번기, 소박하고 따뜻한 인정미가 철철 넘친다. 그런데 이게 뭐야? 스멀스멀 너를 향한 연모(戀慕)의 정이 가슴 저 아래에서 서서히 기어 나오네, 아, 이런 때에는 네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 못 말리겠어. 사랑은 시시때때로, 크고 작은 그리움을 가져오는 것을.
문득 나의 모든 생각들의 시작은 너에게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오늘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표정은? 기분은?’ 어쩜너는 요동치는 거대한 폭풍우야.나의 감정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있거든.
承弟야!
나는 나의 모든 영육의 힘을 하나씩 하나씩 너에게 전이시키고 있다. 서로에게 갖은 희생과 헌신 행위를 과감히 요구하거나 행하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기묘하다’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보니, 너와의 만남이 나를 모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동력(動力)이 되었던 것 같아. 물론 마음이 몹시 불안정해서 뒤죽박죽이었던 적도 있었다.
푸시킨은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고 역설했지. 생활 자체는 인간의 들러리이고, 중요한 것은 진실과 인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갖가지 허상 속에 매몰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참 신앙을 본받아 진실되게 살아야 할 거야.
그러고 보니, 나의 신앙생활이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많이 나태해져서 부끄러워. 더 잘해 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직장 생활이 때때로 방해되기도 했다. 이렇게 변명하면 투철하고 강한 신앙을 지니지 못한 증거이지. 핑계는 사탄의 조정에 불과할 것이니 더 확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련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을 실로 묶는다면,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으로 꽁꽁 묶어져 있어야 할 거야. 오직 신앙 안에서 모든 걸 설계하고 운영하겠다. 이게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처세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