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연인들의 숱한 밀어(蜜語)와 정담(情談)은 고요한 밤기운을 물리치고, 내일의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의 시공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안타깝기만하다. 하루빨리 우리, 서로 곁에 너와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도 수많은 밀어와 정담을 고이고이 나눌 수 있게.
문득, 오늘 밤에는 예수님을 많이 생각해 본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고생한다고 말하곤 하지. 하지만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옆구리에 창 찔려 붉은 피 흐르고, 갖은 모욕과 냉대, 고초를 겪으면서까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일 거야. 진정 우리의 생이 가혹(苛酷)하고 가시밭길이라도, 결코 주님의 고초에 비할 바는 못되지. 크리스천(christian)이 환경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법. 사도 바울은 갖은 환경의 핍박을 받으며 비참하게 돌아가시기까지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환경을 탓하며 주님 사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축복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기억하자.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어. 무한한 것은 아닐 거야. 언제, 어느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죽음)을 받을지 몰라. 우리 인생 언제 끝날지 모르니, 젊다고 자신만만하지 말자. 당장 주님의 부르심을 받더라도 기꺼이 떳떳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가 되자. 그러니 우리 주님을 위해 살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깊이 신뢰하는 마음만 있다면, 삶의 어려움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니, 우리 꼭 남 보이기 위해 살지 말고 주님 보시기에 떳떳하게 살자. 나 자신을 죽이고 주님을 존귀하게 해 드리자.
금주에는 광주에 못 가니, 박 집사님께 토요일 오후 5시 성가 연습을 부탁드리렴.
아! 보고 싶다.
承弟야, 너는 나의 소중한 애인(愛人)!
늘 기억해라. 너는 나에게 커다란 기대와 꽉 찬 희망을 주고 있음을, 그래서 언제나 너를 내 가슴속에 꼭 품고 살고 있음을. 그러니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