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별일 없는지, 혹 아프진 않았는지, 또는 타격받는 일은 없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하지만 내 사랑 承弟는 무사, 무탈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란다.
지금 암천리는 완전히 교통이 두절되어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어디가 길이고, 들이고, 산인지 온통 눈 속이라 알 수 없다. 아, 널 보러 광주가고 싶은데... 못 간다.
承弟야!
浩兄이는 너만을 생각하고 있다. 엊저녁에는 새벽 1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며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의 실루엣만 드리워지더구나. 하지만 나는 가파른 벼랑길을 정복(征服)의 야망을 안고 오르려 한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Jonathan Livingston Seagull’에서 오직 높이 비상하려는 조나단 갈매기처럼 말이다. 혹독한 현실의 가시밭길을 동행하고 있는 너, 때로는 우울과 권태의 늪을 헤매면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네 곁을 떠난다면)”라는 고언(苦言)을 남기기도 했지. 이 모든 것 모르는 浩兄이가 아냐. 어련히 짐작하고 있지.
承弟야!
원하던, 원치 않던 수두룩한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 가는 浩兄이를 내조(內助)하려면, 네가 갖은 헌신과 희생을 치러야 함을 잘 알고 있겠지. 항상 고마운 마음 갖고 있다. 우리 어려운 삶 속에서 오직 신앙을 벗 삼으면 좋을 거야. 수두룩한 세상의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자.
너를 순전히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깡그리 네게 주고 싶다.
내일은 주일(主日), 성수하는 네가 부럽구나. 나는 하는 수 없어 12월 20일 토요일 오후에 가마. 12월 31일부터 81년 1월 9일까지 숙직이라서 다시 내려와야 해. 22돌 네 생일 축하 건과 네 사랑의 밀도(?), 일상사 등 너의 얘기를 듣고 싶다.
우리말이야. 환희의 송가 부를 내일을 기다리며, 차가운 오늘은 저 눈 속에 파묻어 버리자. 너의 건강을 빈다.
1980.12.13.(토) midnight 浩兄
(덧붙이는 글)
1980.12.14. 주일 저녁
그리움의 화살이 또 이처럼 볼펜을 굴리게 한다.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라고 했고, 쉴러는 "강한 사람이란 가장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 낸 사람이다"라고 했으며, 페스탈로치는 "근심하지 말라. 근심은 인생을 그늘지게 한다"라고 말했다. 종일 TV 시청하다 사무정리하는 걸로 소일하는 浩兄이의 주일은 이처럼 봄을 벌써 생각하고 고독을 극복하며, 시름없이 하얀 눈의 포근함 속에 빠져 들려는 노력을 못하고 말았단다.
承弟야!
봄볕을 받으며 화사하게 웃고 있는 네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까닭 모를 생기(生氣)가 솟구친다. 그리고 "많은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결심한다. 성혜, 연합고사 무사히 잘 치르게 도와주길 바라고, 암천리·두암동에서 1주일 동안 슬기롭게, 성실하게 서로 잘 지내자.
내가 광주 가는 날, 생일 케이크를 사가지고 가야 하는지 그냥 몸만 가는지 알려주고, 예쁜 사연을 듬뿍 보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