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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Dec 05. 2023

그냥 너를 보고만 와도 좋겠다

그냥 빈 몸인 널 데려오고 싶다

그냥 너를 보고만 와도 좋겠다          




감사(監査)가 끝났다.

몹시 부담스러운 짐이었는데, 주님 보살핌으로 무사히 마치게 됨을 감사하며 보고 싶은 너에게 이 글을 쓴다.

     

네가 수학여행 못 간 줄 알고 토요일 늦게 상광(上光)했다가, 주일 아침 서둘러 암천리로 내려왔다. 네가 수학여행을 떠나고 없어서 얼마나 휑했는지 모른다. 텅 빈 공허함과 고적(孤寂)함을 감당해 내기 힘들었다. 고작 3박 4일인데. 이게 사랑이겠지? 너와 나의 사랑은 주님이 주신 사랑,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싶다.           


무사히 다녀왔겠지? 承弟야!

지금 바로 광주에 가고 싶어 죽겠다. 그냥 너를 보고만 와도 좋겠다. 전화를 해서 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감도(感度)도 좋지 않고 시간도 없어서 그만 포기했다. 엽서는 안 왔다. 설악산에서 암천리로 찾아드는 반가운 사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걸 오다가 산속에 빠뜨렸는지 무소식이란다.           



承弟야!

굳건한 믿음을 갖고서 살아야겠지. 세상과 연합하지 않고 세상 위에 서서 의연히 주님을 만나고 싶다. 너랑 빨리 결혼해서 서로 의지하며, 기도하며, 찬양하며, 주님과 의논하며 지내고 싶다. 그냥 빈 몸인 널 데려오고 싶다. 承弟, 네가 필요하지, 다른 것은 필요 없거든.     


1주일 후 만날 날을 손꼽으련다. 아이고 보고 싶어. 빨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같이 지내자. 절대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을 것이고, 건실한 사람이 될 자신이 있으니 承弟야, 날 어여쁘게 보아주지 않을래.      


우리 내년을 고대하자.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결단을 하자.
너랑 같이 지낼 생각만 하다 보니, 두서없는 글 막 쓴다.
지금 내 마음은 몹시 산만하단다. 하하하.     


날씨 변동이 심한 요즈음, 연탄불 꺼뜨리지 말아라. 두툼하게 옷 입으렴.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건강해라. 밥, 반찬 잘 먹고.          



1981.10.27.(화) 浩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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