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새처럼 행복할 뿐입니다
정말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보내는 이 편지는
浩兄 씨에게 조금도 불쾌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서 아주 천천히 쓰고 싶어요.
오늘은 주일이라서 아침을 준비해 오빠・동생(2)을 깨워서 식사하게 하고, 물론 설거지까지 했죠. 교회 가서 찬양 연습을 하고, 점심도 먹고, 浩兄 씨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죠. 어제는 12~14시 사이에 걸었는데도, 순전히 전화 수화기를 들고 사는지 ‘the line is busying’. 불타는 정열로 뛰어가려 했는데, 오빠에게 NO, 그리고 토요일 차표는 전혀 없었고, 택시(?)는 3만 원 이상을 줘야 가거든요. 그 큰돈은 나에게는 없어요. 월급봉투째 오라버님에게 바치는 효녀니까요. 용돈은 학생처럼 달라고 합니다.
浩兄 씨가 시골 갔다 온 후에 쓴 2통의 편지로 承弟는 많은 갈등을 했답니다. 밤 예배 시간이 되기 전까지 허공에 빈 미소를 던지면서, 어느새 눈가에 짜가운 맛을 맛보았고, 외롭고 너무 쓸쓸함에 承弟는 막 어디론가 가서 마음껏 폭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답니다.
아주 순수한 감정을 가진 것이죠. 길지 않아 다행이죠. 온 심령으로 주님께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온전히 평안함을 간직하고 충만한 성령으로 외로움 또한, 浩兄 씨를 향한 충족한 사랑으로 변해갔죠. 얌체이지만 하나님께 ‘주여, 주님만 사랑하려 했는데, 용서해 주세요.' 정말 처음으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 후에는 마음이 평온해지니, 주님도 반대는 안 하나 보죠. 발끝에서 다섯 손가락에까지 짜릿한 전율 속에 두 손은 주먹을 쥐게 했고, 창백한 마스크는 어느새 붉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浩兄 씨 진실을 알고자 한다든가, 사랑하고 싶으면 각오하세요’ 이런 질문에 承弟는 지금 어떠한 각오인지는 모르겠지만 浩兄 씨! 무슨 결심을 했답니다. 각오도 했고요. 이미 각오하신 浩兄 씨는 어떠한 의미로서의 각오인지는 광주에 가서 듣기로 해요.
온전히 사랑하고픈 浩兄 씨!
承弟는 ‘浩兄 씨를 용서하겠다’라는 말은 못 해요. 그럴만한 잘못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시겠어요. 굳이 그러시다면 용서해 드리죠. 주객전도(主客顚倒)? 인지는 몰라도 承弟는 浩兄 씨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는데, 전화에서까지 그러시더군요. 정말 죄송해요. 큰 잘못을 OO, OOO 빕니다.
承弟는 믿음이 아주 약해요. 이제 처음 시작하는 겁니다. 浩兄 씨의 고귀한 신앙을 무시할 수 있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미치도록 편지를 썼는지도 承弟가 아니니까 이해 못 하죠.
浩兄 씨, 우리는 약하니까 서로 격려하면서 굳건한 믿음을 간직하기로 해요. 요 며칠간은 나 자신에게 많은 시험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을 지금 이기고 말았어요. 浩兄 씨에게 시험을 해본다는 것은 承弟는 너무 힘이 들어요. 자신이 없다기보다 너무 약해서죠.
浩兄 씨, 내 마음은 바람이 세게 불어도 흔들려 흩어져버릴 것 같은 여린 마음이랍니다. 반면 인내심이 많은 냉정한 여자이기도 합니다. 내 모든 것으로 상대를 사랑하려면 무섭고 두려워요.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으면 두려움이 없듯이, 浩兄 씨가 내 손을 꼭 잡아준다면 난 마음이 포근할 겁니다. 안일무사주의가 아니라 내가 浩兄 씨 손을 잡기엔 심히 약할 것만 같아서. 지금 마음은 浩兄 씨가 진실로 지금의 承弟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浩兄 씨는 모든 면에 솔직해서 좋아요. 만나고 싶다는 건 당연한 겁니다. 못 보며 사랑을 하기란 보통 정신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사랑한다면 承弟는 감사 이외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답니다. 정말 보고 싶을 땐 承弟는 어찌해야 합니까? 정말 기쁠 때는 울어버릴 겁니다.
소유 양식의 사랑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재 양식에서 온전히 사랑해야 할 겁니다. 사랑은 하나의 소유화 현상이 농후해져 버린 지금의 우리 감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안타까운 거리감 때문이죠. 承弟는 애초부터 그런 사랑으로서 浩兄 씨와 만나게 된 게 분명하지요.
浩兄 씨!
처음보다 지금이 더 미워지죠? ‘처음보다 더 호기심이 사라져 버린 承弟가 되지 않았나?’ 하고 조바심 갖고 있어요. 承弟는 크게 원하는 대학을 못 갔으니까 작게 원하는 모든 걸 이루고 말겠다고 지금은 사정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나를 필요로 느낄 때 열심히 충성하고, 주님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모든 걸 주 안에서 해결합니다. 1년간을 방황하는 꼴이 처량했는지, 우리 오빠는 네가 원하는 모든 걸 하라고 합니다. 단지 대학에 집착하지 말길 바란다며(씁쓸한 표현).
늘 기도했죠. 피아노를 배우게 해달라고. 그런데 백만 원 정도인 피아노를 내 복에 갖고 칠 수야 없죠. 복이 많은지 새언니가 가져온대요. 그래서 承弟를 도와준대요. 교습 선생부터 새언니 노릇까지 다 해준다고 마음을 평안하게 갖도록 하래요.
浩兄 씨!
承弟는 항상 스스로 살길 원해요. 그래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항상 권장한 사람입니다. 교사(?)는 틀렸고 공무원은 어쩜 가능하지만, 承弟는 육체적 고통을 못 이기거든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피아노를 치려고 해요. 알아봤는데, 음대생들이 하도 많아 음악에 지식이 없는데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의 지혜로 해내고 말겠어요. 여기에 대한 도움은 浩兄 씨에게 받고 싶어요. 浩兄 씨도 공부한다면….
오빠와 새언니가 지금 承弟를 동양적인 여자로 만들려고 해요. 취미 없는데, 하는 수 없이 그곳에 정신을 쏟아버리고 싶어요. (수예, 병풍, 족자,….)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거든요. 한(恨)이 맺힌 공부인데, 팽개치지는 못하죠. 쓸데없는 게나 고동이나 잡동사니를 뇌까리고 말았군요.
어젯밤은 10장을 써서 일기장에 붙였죠. 내 동생은 죄우지간 미쳤구나. ‘끌끌’이랍니다. 날마다 자기는 생각 안 해주고 浩兄 씨만 생각하니까 샘이 안다는 거죠.
浩兄 씨!
요즈음 심려 끼쳐 드린 것 다시 사과드립니다. 어떠한 면에도 미워하지는 마세요. 동생이 언니 집에 가서 떡, 과일을 가져왔어요. 그래서 지금 먹고 있어요. 承弟는 우리 집에서 ‘떡보’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또 ‘허수아비’로 이것은 내용은 없어요. 그냥 기운 없다는 뜻, 일을 못 해서 말괄량이 동생이 지었죠.
졸업식 때 못 가서 서운하군요. 카메라 두른 사람이 되어 가고 싶었는데…. 표현 못할 정도로 축하합니다. 그날 울지는 마세요. 저도 학교에서는 안 울었으니까요. 그리고 굳은 의지로 사회에 발을 딛도록 하세요. 열심히 기도드릴게요. 浩兄 씨를 위해서.
정의에 불타는, 낭만, 희망, 야망, 투지, 의지, 사랑. 이 모든 걸 지닌 젊음의 특권을 마음대로 펼쳐보세요.
2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시청 앞?
어휴, 동생들이 편지를 보려고 안달이니 그만 쓰죠. 끽!
浩兄 씨의 앞날에 주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있길 기원하면서. 안녕.
1979년 2월 11일 일요일 밤 10시 20분
ps 지금의 承弟는 창공을 나는 새처럼 행복할 뿐입니다.